
Q.이 잡지 발매일에는 9화까지 방송이 됐습니다. 아마 팬들은 '학원을 무대로 삼은 건담'이라고 생각했을텐데 주식회사 건담이 됐어!?라고 놀랐을 무렵입니다. 이 의외의 전개는 처음부터 의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떤 건담을 만들겠다는 발상으로 출발했나요?
처음에 반다이 남코 필름 웍스의 오카모토 프로듀서가 '새로운 TV시리즈 건담을 만드니까 (각본을) 써주지 않겠습니까'라는 제의를 해주셨습니다. 그 때 감독이 코바야시 씨라는 얘길 들었죠. 오카모토 씨는 내가 코드기아스를 만든 무렵에 현장에 계셨던 분으로 오랜만에 같이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게 기뻤습니다. 코바야시 감독님의 작품도 키즈나이버나 히소네와 마소땅을 전부 봤기 때문에 꼭 함께 작업하고 싶다고 생각하고서, 제의를 받아들였습니다.
그 후 기획의 설명을 받고 '이번에는 여성 주인공으로 가고 싶다' '젊은이나 새로운 팬들이 건담을 보면 좋겠다' '그러니까 우주세기물이 아닌 건담 시리즈로'라는 부분까지는 프로듀서를 통해서 들었습니다.
그런 조건 아래서 코바야시 감독님과 함께 기획을 짰는데...1화 각본을 다 쓰고 2화 구성도 거의 완성된 무렵에 코바야시 감독님이 '이 건담, 학원물이 될 순 없을까요?'라고 갑자기 말을 꺼냈어요. 그 무렵 만들던 내용은 학원은 전혀 나오지 않는 작품이었죠.
Q.즉 각본도 쓰기 시작한 기획내용을 근본부터 변경하는 아이디어가?
그렇죠. 학원물에 심지어 전쟁이 아니라 '결투'로 건담을 쓰면 어떨까요?라고. 그런 말을 꺼냈더니 그 자리에 있던 프로듀서나 젊은 제작 스탭이 '학교면 이런 느낌이 좋지 않을까요?' '결투는 이런 룰이면 재밌지 않을까요?'라며 다양한 아이디어가 팍팍 나왔어요.
Q.코바야시 감독은 왜 갑자기 학원을 무대로 삼고 싶다고 생각하신 걸까요?
딱히 코바야시 감독님한테 물어보진 않았지만...그 아이디어는 아주 좋다고 생각했고 연이어 내는 아이디어를 들으면서 점점 더 '이건 재밌어지지 않을까'라고 느꼈습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살린 기획으로) 해봅시다,하고 그 자리에서 결정하고 기존의 각본이나 구성을 전부 일단 폐기하고 다시 만들게 됐는데...말하자면 그게 학원물의 스타트입니다.
Q.그 시점에서 쓴 1화 각본은 예를들어 전일담 PROLOGUE에 쓰인 각본이 아니라...
전혀 관계없이, 기획 자체가 다른 물건입니다.
Q.즉 완전히 1화 분량의 각본을 폐기!
그 1화 분량을 만드는 것으로 코바야시 감독님과 커뮤니케이션을 나눌 수 있었다는 의미는 있습니다. 감독은 이런 걸 좋아하고 이건 싫어하는군, 이런 기법으로 만드는구나처럼 함께 이야기를 만드는 운동은 됐어요.
Q.참고로 그 폐기한 기획은 어떤 내용이었나요?
간략하게 말하면 지금보다 훨씬 건담 같았어요. 우주세기물은 아니지만, 전쟁색이 짙은 소위 건담다운 기획입니다.
Q.그리고 학원이 무대가 되고 모두가 낸 아이디어를 정리하면서 현재의 수성의 마녀 세계가 만들어진 셈이군요.
그 후에 모두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내가 '이런 느낌일까요?'하고 이야기의 얼개를 요약해서 제출했습니다. 기숙사가 있고, 결투를 하고, 슬레타가 편입을 해서 결투에 이기고...와 같은 가이드라인은 그때 만들었는데 구체적인 캐릭터의 변경은 다소 있었습니다. 예를들어 처음 단계에서 미오리네는 없었어요.
Q.그랬군요!
슬레타와 대비를 이루는 포지션의 소녀는 학원이 아니라 회사 측에 있었습니다. 학원 쪽에 있는 히로인이 슬레타고 회사 쪽에 또 하나의 히로인이 있다. 처음에는 그런 배치였죠.
Q.'회사'라는 요소가 그 무렵부터 들어가 있었군요.
맞습니다. 학원이 무대고 모빌슈트로 결투한다고 한들 평범한 학교에 모빌슈트는 없잖아요?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모빌슈트 메이커의 입김이 닿는 학교라면 모빌슈트가 있을지도 모른다. 학원의 결투가 각 회사의 모빌슈트 품평회가 된다고 할까 서로간의 모빌슈트의 성능을 경쟁하는 식이면 되지 않을까 싶었죠. 거기에 기숙사 같은 아이디어가 합체해서 지금과 같은 형태가 됐습니다.
추가로 이야기의 무대를 학교 만으로 끝내지 않고, 학교의 바깥, 어른의 사회를 그리고자 했을 때 '학교와 전쟁'이라는 도식은 적당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초의 건담 때는 시청자는 어찌 됐건 만드는 사람이나 사회에 전쟁의 잔향 같은 것이 있어서, 전쟁이 요즘만큼 멀지가 않았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전쟁은 먼 존재로 실감을 갖기 힘들죠.
그러나 회사는 이 일본에도 있다. 회사에서 일하는 것, 회의에 불려나가는 것, 파워 해러스먼트를 당하는 것...전쟁은 상상할 수 없더라도, 이런 건 상상할 수 있겠죠. 그쪽이 현대의 시청자들한테는 친근한 싸움이 아닐까 싶었어요. 그런 의미에서도 회사라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였다고 생각했습니다.
Q.슬레타라는 소녀는 초기부터 주인공으로 설정되어 있었나요?
슬레타는 처음부터 있었어요. 그녀의 성격도 코바야시 감독님의 당초 아이디어입니다. 수성의 마녀라는 제목은 내가 제의를 받았을 무렵부터 있었던 거고, 폐기가 된 각본도 '수성에서 건담을 탄 소녀가 지구에 찾아온다'는 이야기이기는 했기 때문에 그 이미지는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Q.오코우치 씨 본인은 슬레타를 묘사할 때 어떤 이미지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그녀와 겹치는 점이 있다고 한다면...나는 센다이 출신에 대학에 입학하면서 토쿄로 상경했습니다. 처음으로 겪는 대도시, 처음으로 경험하는 자취, 남학교 출신이라서 동급생에 여자가 있다, 처음 겪는 일들로 가득해서 어질어질했습니다. 평범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만 해도 '이런 말을 하면 바보 취급 당하지 않을까'라고 고민하게 되고, 하나하나 고민했죠.
처음 가는 장소는 무섭고 불안하고, 헛돌기도 하고, 조금 잘 풀리면 적응했다고 생각하고 우쭐거리다가 실패도 하고...그건 시골에서 토쿄에 상경한 것만이 아니라, 처음으로 회사에 들어갔을 때나 처음으로 다른 친구의 그룹에 들어갔을 때나,매사가 그렇다고 생각해요. 그런 감정이 슬레타한테는 담겨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물론 애니메이션이라서 살짝 만화적으로 양념을 치긴 했지만 그런 감정은 너희들 안에 조금은 있지? 부모가 살해당하고 지온군에 맞서는 기분보다는 훨씬 친근하게 느낄 수 있잖아?라는 뜻이죠.
Q.슬레타는 엄마랑 말할 때는 활기차고 씩씩하게 말합니다.
부모 앞이랑 집밖에서의 태도가 다르다는 것은 누구한테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완전 똑같은 경우가 드물지 않을까요?
Q.그런 슬레타가 에어리얼을 타면 강하고 늠름합니다. 처음 3화 분량은 슬레타의 '실은 멋있다'는 면이 그려졌습니다. 그런데 4화의 실습 이야기는 역으로 평범하게 약한 소리를 하는 모습도 선보이고...무척 리얼해서 깊이가 있는 캐릭터가 되었다는 느낌입니다.
원래 4화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구상했었어요. 근데 3화까지를 다시 보니 이야기를 전개할 것이 아니라 슬레타가 어떤 인간인지를 묘사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녀는 '나아가면 두개'라고 말하지만 그 말을 체현하는 것 같은 정신을 겸비한 '강철의 여인'인가 하면, 결코 그렇지 않죠.
실제로는 그 말로 스스로를 고무시키고 무리를 해서 노력하는 인간이다.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라고 해서 항상 오들오들 떨거나, 항상 늠름하기만 한 것은 아니죠. 그녀의 내면을 그리는 것으로 시청자가 그녀를 이해하고 더 좋아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도 슬레타라는 주인공을 다시 한번 제대로 묘사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Q.또 하나의 히로인 미오리네의 묘사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가요?
미오리네는 1화부터 계속 학원에 있는데 슬레타와는 다른 의미로 격변했죠. 미오리네는 줄곧 혼자였는데 어느새 지구 기숙사 아이들과 소통을 하게 됐고 마침내 회사까지 차렸습니다. 1화 이전의 그녀였다면 회사는 차리지 않았겠죠. 그건 즉 장소는 달라지지 않았지만 슬레타가 온 덕분에 그녀가 변했다는 것 아닐까 합니다.
Q.성장과 변화라는 의미에서는 슬레타보다 미오리네가 더 큰 것 같아요.
8~9화까지의 전개만 보면 그렇게 느낄지도 모르죠. 그래도 수성의 마녀는 슬레타와 미오리네 두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므로 성장하는 스피드나 단계는 저마다 다르지만, 두 사람 다 변화할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구엘도 변화하고 있고 츄츄도 변화할 것이고요. 학원의 아이들은 틀림없이 다들 변해갈 것입니다. 그런 나이대이기도 하고, 학생이기도 하니까요. 어른과는 다르게 앞으로 그들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세계를 접하게 될 것이므로, 변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Q.참고로 미오리네의 방이 지저분한 방이었던 것은 오코우치 씨 아이디어입니까?
아뇨 각본에는 쓰지 않았어요. 연출 쪽의 아이디어가 아닐까요? 완성되는 과정에서 여러 부서가 매력을 추가하는 점이 애니메이션이라는 집단 작업의 재미입니다.
Q.로미오와 줄리엣 해버리면 용서하지 않을거야!는 어떤 의도로? 의미는 대충 알겠습니다만(웃음)
들은대로의 의미 이상의 것은 없습니다. 코바야시 감독님이 에어리얼 등 세익스피어를 모티브로 의식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미오리네는 입은 험하지만 실은 출신은 엄청 좋아서 교양도 상당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Q.과연. 시대를 감안하면 로미오와 줄리엣은 아주 오래전 시대의 고전이죠. 상당한 교양이 없이는 떠오르지 않는.
맞아요. 그래서 욕도 지적인 느낌으로.
딱히 명대사로 만들자고 생각하고 쓴 건 아닙니다. 미오리네다운 대사로 만들었을 뿐이지. 인상에 남기고 싶다고 생각한 건 슬레타의 '도망치면 하나, 나아가면 두개' 쪽입니다. 그 대사는 많이 고민했습니다. 어느 캐릭터의 정신성, 이 사람이 어떤 철학이나 인생관으로 살고 있는가 하는 점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이 있으면 아주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어 코드기아스의 쏴도 되는 건 총에 맞을 각오가 있는 놈 뿐이다라는 식으로 보는 사람한테 강하게 인상을 주는 것으로 그 캐릭터가 이해하기 쉬워지는 대사. 그 대사대로의 삶을 보여주느냐, 아니면 배신을 하느냐 하는 점도 포함해서 캐릭터를 의식하고 좇게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Q.그 대사는 도망치는 걸 반드시 부정하지는 않는다는 게 인상적입니다.
쇼와 시대라면 '도망치지마!'였을지도 모르겠으나 요즘 시대 도망치는 게 꼭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합니다. 도망쳐도 된다. 도망치지 않고 전진하면 두개 손에 들어오지만, 도망쳐도 확실하게 하나는 손에 들어온다. 슬레타 자신의 정신성은 물론 이 작품 전체의 현대성도 포함해서 상징할 수 있는 좋은 대사가 없을까, 많이 고민한 기억이 납니다.
Q.미오리네가 결투의 상품입니다. 홀더가 그녀의 혼약자가 된다는 설정은 어떻게 생겨났나요?
미오리네를 이야기의 핵심에 얽히게 만들기 위해서는 결투와 관계를 시킬 필요가 있죠. 파일럿으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러면 슬레타와 역할이 겹칩니다. 그래서 트로피라는 형태로 결투 게임에 참가시키게 됐습니다.
Q.결투로 신부를 놓고 겨룬다는 건 알기 쉽지만...그 결투를 이겨나가는 주인공 또한 소녀라는 점이 과감한 설정이죠.
그런가요? 세계관이 미래니까 지금보다 가치관이 다양성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과감한 시도를 했다는 생각은 없어요.
미래를 그린다고 해도 작품을 보는 것은 현대의 시청자라서 동성 결혼이 당연하다는 설정은 확실히 좀 께름칙한 분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께름칙함을 주인공 슬레타가 당혹해 하는 모습으로 체현한다. 극중에서는 수성에서 왔기 때문이지만 이야기로서는 시청자의 '엑!?'하는 감정을 대변해준다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이번 작품은 캐릭터들의 감정을 '먼 존재'로 만들지 않게 의식하고 있습니다. 부모와 사이가 나쁘다거나, 그 아이가 좋다거나, 처음 편입한 반에서 두근두근하다거나, 묘사하고 있는 감정은 현대를 사는 사람과 크게 멀지 않은 것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Q.작품 내에서 '가족'이라는 관계에 스포트라이트를 맞추는 점도 그 때문인가요?
현대 일본에서 이해하기 쉬운, 또한 힁미가 있는 소재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에는 '가족' 뿐만 아니라 '연애' '회사' '친구' 그리고 '분단' '대립' '차별' 등, 그런 걸 의식적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어시언과 스페시언의 차별문제도 극중에서는 스쿨 카스트의 연장선 같은 형태로 출발해서 입구를 만들고 있습니다.
Q.3대 가문은 각각 어떤 역할로 캐릭터를 묘사하고 있나요?
샤디크는 현시점에서는 밝히기 힘듭니다. 앞으로 여러모로 드러날 겁니다. 엘란은 슬레타와 마찬가지로 건담을 타는 캐릭터에, 또한 동시에 슬레타의 첫 연심을 그릴 수 있는 캐릭터입니다. 구엘은 최초의 적으로. 다만 1화로 쓰고 버리는 캐릭터로 만들면 아깝기 때문에 거기서 끝나지 않고 나중에 다시 얽힐 수 있게. 착상은 그런 느낌입니다.
Q.초반은 학원을 무대로 화사한 느낌이 있었는데 6화 엘란의 에피소드로 불온함을 느끼는 사람도 많은 것 같습니다. 심지어 오코우치 씨가 시리즈 구성/각본이니까요...(웃음)
아니 내가 쓰는 작품은 그런 내용만 있는 게 아닙니다.(쓴웃음) 최근에만 해도 SK∞ 에스케이 에이트도 아이의 노랫소리를 들려줘도 아무도 죽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즐겁기만 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제시는 이미 했어요. 프롤로그는 가슴 아픈 이야기였고, 4화도 지구 뉴스로 구체적으로 불온한 내용을 묘사하고 있죠.
Q.앞으로는 역시 그런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하게 될까요?
학원이라는 두꺼운 축과 지금까지 가늘게 보였던 회사, 어른의 축이 서서히 뒤섞이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학원의 축이 사라지는 일은 없고 그 점은 기대해주세요.
Q.전일담 프롤로그 말이 나와서 말인데 그 각본은 본편 1화보다 먼저 쓴 내용인가요?
아뇨 본편 1화를 먼저 썼어요. 처음에는 프롤로그를 쓸 예정은 없었어요. 작품을 전개하면서 프로듀스 쪽에서 시리즈와는 별개로 한편 만들어 달라는 말이 나와서요. 그럴거면 8화와 9화 사이의 이야기 같은 게 아니라 0화를 만드는 게 낫겠다 싶었죠. 소설 요람의 별도 마찬가지입니다. 본편의 각본을 쓴 단계에서는 소설을 쓰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의뢰를 받고나서 '그러면 이런 내용으로 쓰면 본편도 재밌게 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썼습니다.
Q.요람의 별은 에어리얼의 시선으로 쓰였습니다. '저주' '마녀' 같은 단어에서 상상이 가듯, 에어리얼이라는 건담은 종래의 건담과는 어딘지 이질적인 분위기가 느꼈습니다.
앞으로 에어리얼의 비밀도 한꺼풀 씩 벗겨지는 느낌으로 서서히 밝혀질 겁니다. 코바야시 감독님은 '종래의 건담은 이렇지만 이번에는 이렇게 만들고 싶다'고 말씀하셔서요. 그게 어떤 내용인지는...모쪼록 최종화가 끝나고나서 다시 물어봐주세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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