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 말의 속뜻에는 또 속뜻이 있다 2/2 ㄴ내청춘/역내청

그러나 그 말의 속뜻에는 또 속뜻이 있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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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마치와 잇시키가 학생회실로 향한 다음부터 잠시간.

모처럼 셋만 남은 봉사부는 홍차와 피치파이의 향기에 감싸여 포근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흥겹게 계산기를 두들기는 유이가하마의 콧노래에, 유키노시타가 움직이는 펜소리가 기분 좋았고 내가 서류를 정리하며 탁탁 두들기며 정리하는 앙상블이 울려퍼진다.


그러자 드르륵하고 내 스마트폰이 울리는 불협화음이 섞여들었다.

뭔가 소셜게임의 공지라도 왔나 싶어 스마트폰을 보니 그곳에 있는 것은 코마치가 보낸 문자였다. 문자를 확인해보니 거기에는 딱 한마디 짧은 한마디가 담겨있었다.


"살려줘..."


당연하지!(두둥!)


마음속의 기세 그대로 나는 아무 말도 안하고 일어났다. 그것이 너무나도 서둘렀던 탓인지 유이가하마와 유키노시타가 깜짝 놀란 얼굴로 움찔했다.


'뭐, 뭐야...'


오들오들 머뭇머뭇 유이가하마의 질문에 나는 대답도 대충하고 슥하고 출구로 향했다. 드르륵 문을 열고 반쯤만 돌아봤다.


'코마치가 좀 위험한가봐. 다녀오마'


두사람은 어리둥절해하며 두,세번 깜빡거렸지만 바로 후훗하고 미소지었다.


'다녀오렴'

'잘 갔다와!'


따뜻한 배웅의 말을 뒤로하고 나는 학생회실로 서둘러 갔다.

늦지마라...늦지마라...


마치 원고 마감 데드라인을 4일정도 남겨놓았을 때와 같은 초조함으로 나는 복도를 달렸다. 원고는 쓸 수 없다.

얼마되지 않아 학생회실에 도착하자 노크도 대충하고 기세 좋게 문을 열었다.


'코마치!'


덜컹하고 큰소리로 연 문 너머에 책상 위에 산처럼 쌓인 서류의 그늘에 코마치가 있다.

힝힝 눈물어린 눈으로 무언가 필기 작업 같은 것과 씨름하고 있었다. 헤어핀으로 앞머리를 끌어올리고 이마에는 냉각시트, 그리고 좌라락 늘어선 에너지 드링크가 참으로 가슴 아프다.


'아니야...이건 코마치가 생각했던 봉사부랑 달라...학생회랑도 달라...이럴리가...'


투덜투덜 저주 같은 문구를 토해내고 있었는데 문소리를 알아차리고 확하고 고개를 들었다. 나랑 눈이 마주치자 다 죽어가던 눈에 빛이 돌아오고 동시에 글썽글썽 울먹였다.


'오, 오빠...'

'뭐야 건강해 보이는구나'

'어디가...뭘 어떻게 보면 그래...그 썩은 눈, 필요해? 필요 없는 거 아냐?'


유난히 낮은 목소리로 토해내듯 말했다.

하지만 일이 정말로 위험할 때는 그런 걸로 그칠리 없다고 나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진짜로 위급할 때는 갑자기 큰소리로 소리치는가 싶으면 후두부를 쾅쾅 벽에 부딪혀대고, 정말로 위험할 때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자기 시작하니까 말이지. 진짜 정말로 위험할 때는 그야말로 무야. 무. 이틀 정도 밥을 먹지 않은 사실도 깨닫지 못할 레벨의 무. 허무.


그에 비하면 건강해 건강해!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괴로울 때는 나보다 아래를 보고 기분을 끌어올리자꾸나?


등등의 적당한 어드바이스를 하고 돌아가려는 순간 내 배후에서 철컥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휙 돌아보자 살짝 어두운 미소를 짓고 있는 잇시키가 있다.


'후후후, 올거라고 생각했어요. 선배...'


'잇시키...너, 무슨 짓을...'


'오코메쨩을 계속 몰아붙이면 틀림없이 선배한테 도움을 청할 테니까 말이죠. 그러면 선배는 반드시 와요...왜냐면 선배는 오코메쨩의 부탁은 거절하지 못하니까요!'


'아니, 네가 부탁해도 거절하지 않는다만'


'그, 그러신가요...헤에...'


내밀었던 손가락을 둘 곳이 곤란하다는 듯이 잇시키는 뺨에 내려앉은 머리카락을 만지작 거리며, 슥하고 눈을 외면하고 웅얼웅얼 중얼거렸다. 좀전의 기세는 어딘가로 사라지고 '그러신가요...'라는 말을 작은 목소리로 반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동작이 딱하고 멈춘다.


그리고 끈적끈적한 습도 높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러신가요? 꽤 많이 거절하지 않았나요?'


알아차리고 말았나. 하지만 이로하스가 온갖 수단을 구사하는 바람에 매번 이러쿵 저러쿵 불평을 하면서도 도와주게 된단 말이죠. 내가 가르쳐준 것으로 되어 있는 '의지하는 연하 여자는 귀엽다'를 평범하게 실천해버리면 이쪽은 당해낼 재간이 없다.


이제는 이 제자는 협박도 해오질 않나, 여동생을 인질로 잡은 점은 상식적으로 범죄이기까지 하다.


'이런 방법을 쓰지 않더라도 솔직하게 말하면 다소는 돕는다. 어디까지나 다소다만'


'아뇨, 왠지 좀...방해하는 것도 그래서요. 최소한의 변명 정도는 드리는 편이 나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앞으로도 코마치를 여동생 인질로 잡히면 당해낼 수 없기 때문에 가볍게 못을 박았는데 잇시키는 의미심장하게 후훗 미소짓고는 뺨에 손을 갖다대고 꺄힝하고 귀엽고 새침한 표정을 할 뿐이었다. 그 마음 씀씀이는 고맙지만 말이죠...


뭐 됐어. 어찌됐건 내가 하지 않으면 코마치가 해방되지 않는 것이다.

나는 툭하고 코마치의 어깨를 두들기고, 그 노고를 치하했다.


'코마치 많이 애썼어. 조금 쉬고 내 업무처리 능력을 거기서 지켜보렴. 나머진 맡겨'


'으으....부탁드립니다...뒷일은 맡길게요...'


갸륵하게 말하고는 코마치는 비틀비틀 일어서서 나한테 자리를 양보했다. 많이 피곤한 모양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코마치는 영차하고 크게 기지개를 하고는 냉각 시트를 떼어내고 룰루랄라 깡총걸음으로 잇시키 개인 냉장고로 향했다.


'오빠 뭐 마실래? 여기 되게 많아'


'...뭐든 상관없다.'


그래, 코마치가 건강하다면 뭐든지 좋다...만약 혹시 이 촌극의 스토리를 쓴 것이 코마치라고 하더라도 코마치가 건강하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코마치가 콧노래를 부르며 가져다준 커피를 받아들고서 나는 눈앞에 쌓여 있는 서류를 슬쩍 둘러봤다.


'그래서 이거 무슨 일이야?'


'앞으로의 행사예정이랑 이벤트 예정 조사겠네요. 얼마전의 프롬으로 상당히 꼬여버렸거든요.'


그렇게 대답하면서 내 옆에 잇시키가 앉고는 좀전에 유키노시타한테 건네받은 프롬의 자료를 늘어놓았다.


'흐음...'


프롬에 관해서는 이쪽도 꽤나 민폐를 끼치고 말았고 그 구멍을 채우는 일을 떠맡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인데, 그러나, 그럼에도 살짝 이해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다른 학생회 멤버는?'


이레귤러 이벤트였던 프롬은 이쪽이 맡는 게 도리지만, 본래의 행사예정은 학생회측의 태스크다. 그걸 처리해야 할 무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잇시키는 에휴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고 슥 방의 구석을 가리켰다.


그러자 그곳에는 다정한 미소로 행복하다는 듯이 서있는 부회장. 그리고 길다란 흑발을 하나로 묶어 가슴 앞에 늘어뜨린 미소녀가 있다. 어이쿠 전혀 몰랐다.


'저번에 간 카페도 좋았지만, 이번에는 다른 곳을 가지 않겠어? 신나라시노에 슈퍼 대중탕을 발견했거든, 암반욕이 엄청 좋을 것 같았어...'


'아이참 마사토 군은 맨날 그것만. 부끄러워서 싫다니깐!'


두사람은 뭔가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오, 뭐야, 사우나? 사우나 얘기하는 거야? 거기 말이지? 신나라시노의 유~네루. 거기 괜찮지 암반욕이 세종류나 있고. 등등의 사우나 연설에 끼고 싶어서 두근두근 했는데 잇시키의 언짢아 하는 헛기침으로 현실로 도로 끌려가고 말았다.


'일단 부회장도 서기쨩도 일은 하는데요, 현저하게 효율이 떨어져서...'


'그렇구만...'


너무나도 노닥노닥 행복한 공간이라서 나는 무의식중으로 보이지 않는 것으로 치부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쪽도 그쪽대로 둘만의 세계에 몰입하고 있어서 우리들 따위는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깔보지마 진심으로 일을 하라고 일을. 정말이지 아무리 그래도 여기는 신성한 학생회실이고 학생회장 앞이라고. 최근의 젊은 것들은 모랄이 없군, 인륜은 쇠퇴했습니다. 텄다 텄어 해산! 아니 진짜 무시하지말라고? 일하라고? 그렇게 부회장을 노려보고 있다가 문뜩 위화감을 깨달았다.


'어? 서기쨩? 저거 서기쨩이야?'


내 질문에 잇시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실화냐...다시한번 부회장 옆에 있는 미소녀를 잘 살펴봤다. 댕기머리가 아니고, 안경도 쓰지 않았지만 듣고보니 확실히 닮았다. 소라미미 아워의 시간이 찾아왔다. 아무래도 부회장은 시원찮은 그녀를 육성해버린 모양이다...흐아~ 쩐다.


감탄하는 내 한켠에서 잇시키가 투덜거렸다.


'딱히 사귀건 말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진짜 연애에 정신이 팔리면 쓸모가 없다구요...학생회실에 있기도 껄끄럽고....'


'뭐 그렇겠지.'


'그렇다구요. 진짜 연애에 정신이 팔리면 쓸모가 없다구요.'


'그렇구나. 왜 두번이나 말했니?'


중요한 얘기였니? 무지하게 숨은 뜻이 있을 것 같아서 신경 쓰이니까 그러지 말았으면 한다.

그렇다고 굳이 추궁하는 것도 긁어부스럼이 될 것만 같아서 나는 냉큼 서류 뭉치를 펼쳐서 주위를 돌리기로 했다.


자, 일에 집중집중! 친구 가격으로 노개런티인 것은 큰일이지만, 맡은 이상은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정은 보답을 바라지 않는다. 뭐 친구인가는 의심스럽지만, 적어도 선배이기는 하니까.


우선은 연간예정과 개개의 안건을 대조해서 불안한 사항을 픽업이다.


대충 자료를 흘려 읽어보건대 학생회의 업무는 어느 것이나 시간은 빠듯빠듯, 예산은 팍팍하다는 사실이 보였다. 쓸데없는 이벤트나 지뢰 안건도 여기저기 깔려 있었다. 이런 종류의 재난 같은 아이디어는 하나가 무너지면 연쇄추돌의 영향이 생기는 법이다.


'....일단은 지뢰 안건을 찾아내볼까.'


'하아....네? 그냥 찾는 것 뿐? 그게 의미가 있나요?'


'그럼. 지뢰 안건에 표시를 해두는 것만으로도 편해진다고.'


그렇게 말했지만 잇시키도 코마치도 어리둥절하게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후후후 두 사람 다 아직 사축 경험이 부족하군.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사축 경험 제로다만. 제로일 거란 말이지....뭐 그건 됐어. 우선은 두사람한테 간략하게 설명하도록 하자.


'쓰레기 안건이라고 알게 되면 각오를 다지거나, 혹은 포기하거나 해서 마음이 편해지잖냐'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는데요...'


'으음~....멘탈도 중요하지만...'


잇시키가 어이없다는 듯이 어깨를 떨구고 코마치는 곤혹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니 실무면에서 작업 리소스를 확보하기 위한 트리아지(triage)란 측면이 있는 거란다. 따위의 적당한 소리를 해둘까도 생각했는데 내가 말해봤자 설득력이 없을 것 같았다. 언제나 빠듯하게 일을 하고 있으니 말이지...


하지만 지금까지 몇 번이고 막바지에 후다닥 일처리를 해왔던 덕분인지 지뢰 안건에 대한 감이 키워졌던 것이다. 즉시 찾아버릴거야~ 나, 마인 스위퍼가 될래요!


그렇게 의욕을 담아서 바로 한건 발견하고 말았다.


'다음달에 구기대회가 있구만...'


'매년 하는 일이지만, 어떤 구기를 할지 생각해야 한단 말이죠.'


씁쓸한 마음으로 서류를 보고 있으려니 잇시키가 불쑥 얼굴을 들여다 봤다. 갑자기 다가온 아마색 머리카락에서 플로럴한 향기가 나서 나는 무심코 몸을 뒤로 젖히고 말았다. 그러자 딱 젖힌 만큼, 잇시키가 몸을 앞으로 쑥 내밀어 프린트 구석을 가리켰다.


'여기에 후보를 적어놨는데요, 전부 이것저것 조정이 필요하거든요~ 이게 성가셔서~'


잇시키는 투덜투덜 무슨 불평을 했는데 좀전부터 머리카락이 닿질 않나, 어깨에 손을 올리질 않나 솔직히 이야기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두 팔을 만지지 말아주세요! 하지마, 교복과 교복이 마찰해서 철렁하거든! 직접 닿지 않아서 오히려 더 신경 쓰인다고!


나는 뒤로 젖힌 상반신을 한층 더 젖혀서 코마치 쪽으로 체중을 이동시켰다. 아아, 코마치의 향기는 마음이 안정되는구나...그래서 코마치가 불쑥 얼굴을 들여다보건, 손이 닿건 간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코마치도 코마치대로 이녀석 방해되는군 정도의 느낌으로 나를 밀어냈다.


'헤에~ 이런 게 있었군요.'


'입학이나 반편성 직후니까. 친목의 의미도 있지 않겠니?'


하에~라고 감탄한 기색의 코마치를 향해 잇시키가 후훗하고 살짝 선배티를 내는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나는 훨씬 선배티를 내는 표정을 지어야겠지.


'뭐 사이가 좋아질거라는 보장은 없다만 말이다. 아예 이게 마지막 참가행사가 될 가능성도 있지'


그렇게 말하자 두사람 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이녀석이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상하네, 선배를 향한 존경의 눈빛을 기대했건만...


나는 크흠하고 헛기침을 하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가기로 했다.


'아직 인간관계가 확실하게 구축되지 않은 시기니까, 여기서 저질러버리면 그후의 학교생활이 상당히 괴로워진다고. 그렇게 되면 남몰래 숨을 죽이고 여름방학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지.'


신학기는 누구나 마음이 들떠있는 신선한 시기인데, 그런 까닭에, 무심코 눈에 띄려고 행동하고 만다. 자기소개에서 잘난척을 하거나, 딴죽을 기대하며 입을 잘못 놀리곤 하는 법이다. 그렇게 신선함에 신이나서 저질러 버리면 여름의 문을 열기는 커녕, 여름으로 가는 터널을 파버리는 레벨. 작별의 출구를 찾는 경지이기까지 하다.


따위의 적당한 설명을 하자 두사람은 긴장한 얼굴로 수긍했다.


'확실히...'

'경험자의 말은 무게가 달라...'


훗, 뭐 그렇지. 초등학교, 중학교 내내 따돌림을 당한 결과 그야말로 따돌림 명인. 아니 명인에 그치지 않고 칠관왕 독점을 목표로 우선은 용왕이 하는 일을 목표로 삼을까 합니다. 그렇게 자랑스럽게 행동하는 나에게 이번에야 말로, 선배를 향한 눈빛으로 바라봤지만 그 눈빛에는 경의는 한줌도 존재하지 않았고, 아예 연민이 담겨 있었다. 이상하네...인생의 선배는 좋은 의미만 있는 게 아닌 거군요! 인생은 괴로워! 그 시선을 떨쳐내듯이 나는 서류에 고개를 향했다.


지금 현재 후보로 거론되어 있는 것은 축구, 농구, 소프트볼, 배구, 탁구, 테니스, 럭비 정도군. 대충 학교에 있는 부활동들이다. 시설이나 도구를 감안하면 이정도 경기가 되는 것은 타당할 것이다.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면 테니스 하자 테니스. 토츠카랑 테니스를 치고 싶다. 그것 말고 다른 것도 하고 싶어'


'공사 혼동이 너무 심한 것 아닐까요...'


'이로하스한테 그런 소리 듣고 싶지는 않은데 말이지...'


너도 상당히 직권남용해서 이벤트를 추진하곤 했잖니...라고 쓴소리를 할 의도였는데 잇시키는 네루리한테 귀라도 베였는지 전혀 듣고 있지 않았다. 어디 그뿐일까 여전히 투덜거리고 있다.


'그치만 꼭 있죠. 이벤트마다 폼잡으며 여자랑 친해지려고 드는 사람. 그전에는 전혀 대화해본 적도 없구, 아예 말을 걸어주길 기다리고 있어서 좀 비호감이다 생각하고 있는데, 유난히 쫑파티는 같이 즐기자고 꼬셔대는 느낌의. 딱 한번 다같이 식사를 한 것 정도로 친해졌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하지마 잇시키. 그 말은 나한테 너무 아프다.'


구체적으로 경험을 한 것은 아닐텐데도 멘탈리티는 확실하게 그런 타입이라서 나는 정신적으로 쫙쫙 깎여나갔다.


'저기 이로하 선배, 그쯤에서...'


코마치가 난처하다는 듯이 웃으며, 내 등을 가볍게 어루만졌다. 그것이 너무나도 연민을 불렀는지 잇시키도 실수했다며 입가를 양손의 손끝으로 누르고 있었다. 그 포즈 그대로 잇시키는 미안하다고 말하듯이 요망하고 귀엽게 고개를 꺾었다. 여기에는 나도 코마치도 방긋. 덕분에 코마치의 음성도 부드럽게 바뀌었다.


'아니 아시면 그걸로 됐어요. 오빠도 자기가 개같이 허당에 원찬스를 노리는 쓰레기란 사실은 자각하고 있으니까 앞으로는 너무 막 몰아붙이지 말아주세요.'


'아니 잠깐? 왜 다시 한번 몰아붙이는거냐? 추가타는 그만두렴? 오빠 올리브 오일이 아니거든?'


코마치한테 마구 매도당한 나머지 충격으로 뇌내 BGM은 서스펜스 느낌의 피아노가 울려퍼지고, 덤으로 다이나믹 피아노의 한장면이 뒤늦게 울렸다.


'오빠 테니스를 치고 싶으면 코마치랑 치자. 얼마전에 타이시 군이 치자고 하길래 다같이 가겠다고 말해뒀거든!'


'....그거 오코메쨩만 꼬신 게 아닐까'


잇시키는 어딘지 동정어린 목소리로 말했는데 나는 그럴 정신이 아니다.


그 쓰레기 자식, 토츠카가 있는 테니스부에 가입한 걸로도 만족하지 못하고, 테니스를 미끼로 내 여동생한테 수작질을 걸다니 좋은 배짱이다. 쓰레기랑 천사가 테니스부 생활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용서할 수 없는데. 손가락 꺾어주마. 아예 목을 꺾어버리고 싶기까지 하다.


'오냐 알았다. 테니스는 제외하자...애초에 플레이 인원이 너무 적고, 플레이 시간을 가늠할 수 없어. 코트 문제도 있어서 동시에 진행하기도 어렵고 말이지.'


'뭐 그렇겠네요...아니 근데 문제를 알고 있었으면 후보로 거론하질 말라구요'


잇시키가 도끼눈으로 쳐다봤다. 꽤 나쁘지 않다. 덕분에 컨디션이 좋아졌다구.


'경기는 메이저한 종목이 낫지 않겠냐. 축구, 농구, 배구, 탁구 정도의 익숙함이 있는 종목이면 불만도 없을테지. 오히려 문제는 레귤레이션이겠군'


'아...그 부분이죠...'


잇시키가 성가시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코마치는 흐음흐음 끄덕이면서 레규레이숀? 과연 전혀 모르겠다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내 얼굴을 보고 빨리 설명해달라고 눈빛만으로 말했다. 오케이 마이 리틀 시스터. 맡겨달라고.


'예를들어 현역 축구부원이 구기대회에서 축구로 무쌍을 해버리면 왠지 불공평한 느낌이 들거 아니냐. 그렇다고 이상한 핸디캡을 추가하면 그건 그것대로 불만이 생겨. 그래서 개최측이 그 부분에 관한 규칙을 만들 필요가 있는 거야.'


'핸디캡, 추가하면 추가하는대로 씨끄러울 것 같거든요~ 토베 선배라거나...'


'레귤레이션에 관해선 부장회의에 던져버리자고. 자기들이 만든 룰이라면 불평하지 않겠지. 실제로 모든 걸 학생회 측에서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아무리 애써도 이쪽의 힘만으로는 자잘한 부분까지 채워넣을 수 없는 것이다.

부활동에 소속되지 않은 클럽 유스 소속은 어떻게 할거라느니 디테일한 소리를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만약 클레임을 피하고자 한다면 반단위 참가가 아니라 자유참가로 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그러면 희망자를 정리하는 게 번잡해진다. 무엇보다 친목목적의 학교행사로는 조금 힘들겠지.


그런 소리를 하는 사이에 잇시키가 끄덕하고 수긍했다.


'하야마 선배랑 의논해볼게요.'


'오냐. 아니 그보다 나한테 일을 떠맡기기 전에 하야마한테 상담하라고. 뭐 상담해봤자 그건 네가 할 일이잖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어라고 말할거라고 본다만.'


'안 닮았어! 네? 그거 하야마 선배를 흉내내신 건가요? 어? 안 닮았어!'


나로서는 상당히 하야마랑 비슷하게, 누가 봐도 그녀석이 할 법한 말을 초이스 했는데 잇시키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아니 그렇다 뿐일까 깔보고 있는 건가요?라며 반쯤 빡친 기색이다.


거기에 압도당해 내 손은 자연히 목덜미를 향해 뻗어 싹뚝싹뚝 저지르고 말았다.


'여 이로하스~ 그건 아니지~'

'아 그건 비슷하네요. 엄청 닮았어. 웃긴다'


후훗하고 명백하게 조소 섞인 반응...


'....그, 그러냐. 비슷하지 않다고 본다만. 아마 네가 토베한테 관심이 너무 없어서 그녀석을 잘 기억 못하기 때문 아닐까?'


'그렇지 않아! 비슷했어! 오빠 좀 더 자신을 가져!'


핀트 어긋난 위로가 코마치에게서 날라왔다.

씁쓸한 기분으로 썸즈업을 하는 코마치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옆에서 지친 기색의 한숨이 흘러나았다. 보니깐 잇시키가 팔짱을 끼고 신음하고 있었다.


'뭐야. 왜 그러냐'


'아뇨 축구부에 가는 게 좀 성가셔서요....'


'호오...무슨 일이라도 있었냐'


평소라면 하야마 곁으로 쌩하고 날아갈 것 같은데 말이다...조금 걱정이 되어 물어보자 잇시키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신입부원이 들어와서 이래저래 짜증나거든요. 1학년 남자도 여자 매니저도 귀찮게 굴고요. 저 연하는 어색한 타입이잖아요?'


'아, 그거 알겠어요~ 연하인 사람은 이로하 선배를 어색해 하는 것 같아요'


'그 반대라고 했지? 내가 연하 상대로 어색한 거랍니다.'


웨히히하고 코마치가 웃자 잇시키는 입가를 일자로 만들어 위협했다. 아니 참 내 후배랑 여동생이 완전 수라장인데요?


두사람은 한동안 노려봤는데 갑자기 잇시키가 코로 웃었다.


'그보다 오코메쨩도 연하인 애들한테 별로 호감을 못살 것 같은데?'


'윽, 무례하긴!'


분개하는 코마치에게 나도 동의하며 끄덕였다.

맞아맞아, 코마치는 남들을 잘 보살핀다구. 카와 뭐시기 양의 여동생, 케이카도 제대로 보살펴줬고, 어엿한 언니의 부분도 있다. 그렇게 내가 지원사격을 하기 전에 코마치가 가슴을 펴고 무언가를 덧붙였다.


'코마치는 그렇게까지 남들한테 관심이 없기 때문에 꽤나 피상적으로 지낼 수 있는 타입입니다!'


'핫하 이녀석 장난 아니네. 선배 얘 좀 위험해요'


잇시키가 코마치를 손가락질하고 호소해왔지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으니까 괜찮다. 코마치는 꽤나 드라이한 구석이 있으니까. 아무래도 상관없는 사이라면 피상적인 부분만 보여주면 되는데, 잇시키한테는 제대로 위험한 부분을 보여주고 있는 걸. 이거 진짜 장난 아니잖냐. 어휘력까지 장난 아니게 될 위험함.


그렇게 혼자서 슬며시 웃고 있는 걸 들키지 않게 나는 한층 더 일을 하고 있다는 어필에 나섰다.


'구기대회는 대충 이정도면 충분하겠지. 나머지는...'


그렇게 서류를 둘러보고 있으려니 똑똑 학생회실의 문을 조심스럽게 노크했다. '들어오세요'라는 잇시키의 대답에 문이 조용히 열린다.


'잇시키 양 프롬의 나머지 자료, 정리가 끝났거든'

'그리고 간식'


들어온 것은 클리어파일을 손에 든 유키노시타와 종이봉투를 들고 있는 유이가하마였다.


'급한 일도 아닌데 재촉한 것 같아서 죄송해요. 일부러 가져다 주시고 고마워요!'


잇시키는 타닥타닥 걸어서 문까지 가고는 꾸벅 머리를 숙이고 파일과 종이봉투를 건네 받았다.


'아니야. 언젠가는 정리하려고 생각했던 일이니까 마침 타이밍이 좋았어'


'맞아맞아. 그리구 코마치쨩도 걱정됐구'


그렇게 말하고 유이가하마가 코마치를 향해서 손을 흔들었다. 코마치도 거기에 호응해 붕붕 손을 흔들었다. 아무리대 이녀석 자기가 구조를 요청했던 사실조차 완전히 잊어버렸구만...


'문제를 키워서 죄송해요. 여러모로 도움이 됐어요'


잇시키는 에헤헤 웃고는 꾸벅 머리를 숙이고 자연스럽게 문고리를 만졌다. 그걸 알아차리고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는 한걸음 물러났다.


'어, 그래. 그러면 나는 이쯤에서...'

'다음에 또 봐!'


자리를 뜨면서 두사람이 힐끔 이쪽에 시선을 던졌기 때문에 나도 오냐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했다. 두사람도 끄덕이고는 문은 천천히 닫혔다.


'기왕이니까 간식 먹으면서 계속할까요.'


타닥타닥 책상에 돌아온 잇시키가 간식인 피치파이를 자르기 시작하자 코마치도 재빨리 움직여 커피를 탔다.


그, 그러냐 한숨 돌리는 게 아니라 일은 계속 하는 거냐...보통은 잠시 휴식하자는 흐름 아닐까 싶다만...그렇게 옆을 쳐다봤지만 잇시키는 흥흥 콧노래 섞어가며 서류뭉치를 넘기고 있다.


'다음은...학생총회일까요~'


피치파이를 오물오물 씹으면서 잇시키가 자료를 넘긴 그 순간 다시한번 학생회실 문을 노크해왔다.


우물우물거리면서 이시키가 으음!하고 말로 성립하지 않은 대답을 한다.

그러자 거기에 호응해서 문이 열리고 좀전에 돌아갔을터인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가 얼굴을 내밀었다.


'....괜찮다면, 우리도 도울까 하는데'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보인 유키노시타와 그 뒤에서 응응!하고 연신 끄덕이는 유이가하마.

잇시키는 다급하게 차로 파이를 넘겨낸 다음 일어서 두사람이 있는 곳으로 곧장 달려간 다음 엎드려 고개를 숙이고, 송구스럽다는 태도를 취했다.


'아뇨아뇨아뇨! 수험생 분들한테 이런 일을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거든요!'


이상한 걸, 나도 수험생인데 말이지...어? 지금 이런 일이라고 말했어?

지긋이 의혹의 시선을 향하자 잇시키는 두사람을 향헤 두손을 맞대고 빌고 있는 참이었다.


'오히려, 달리 훨씬 급한 일이 있을 때 부탁드리고 싶으니까 오늘은 괜찮아요. 정말로. 아니 진짜 위험할 때는 엄청 부탁드릴 거니까요'


그 표현은 좀 그렇지 않냐...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입씨름 끝에 두사람도 마지못해 수긍하고 문은 다시 닫혔다.


잇시키는 휴우하고 지친 기색의 한숨을 내쉬고는 얼굴의 땀을 쓰윽 닦아내고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쿠션을 고치고 또 고친다음 오도카니 앉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노크하지도 않고 갑자기 철컥하고 문이 열렸다.


'계속 귀찮게 해서 미안해'


미안하다는 듯이 말하면서 얼굴을 내민 것은 물론 이 분들, 매번 또 보는 유키노시타 양과 유이가하마 양입니다.


'코마치 양, 늦을 거 같으면 내가 열쇠를 반납할까 하는데'

'가방도 가져다 줄까?'


이제 잇시키는 일어나지도 않고, 축 늘어진 모습으로 천장을 올려다봤다.


'그런 말은 라인으로 해도 되잖아요...'


지친 기색의 음성이 하늘에 떠올랐다. 그리고 찌릿하고 나를 노려봤다. 네가 어떻게든 처리해라는 뜻인 것 같았다. 아니, 그렇게 말씀하신들...


하지만 나도 이렇게 정신없는 상태로는 일을 하기가 힘들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잡무로 유키노시타랑 유이가하마의 손을 번거롭게 하는 것도 마음 아프다. 그렇다면 최속으로 정리하고 돌아가는 게 정답이라는 뜻이다.


크흠하고 나는 두세번 헛기침을 하고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에게 말을 던졌다.


'바로 끝마치고 그쪽으로 돌아갈테니까...알았지?'


'네! 초속으로 끝낼게요!'


코마치가 활기차게 찬동하자 문 앞에 있는 두사람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러니? 그럼 기다리고 있을게.'

'늦으면 마중갈게!'


온화한 미소와 밝은 웃음. 유키노시타가 아쉽다는 듯이 천천히 문을 닫는다. 완전히 닫히는 그 순간까지 유이가하마는 손을 흔들고 있었다.


두사람이 학생회실을 떠나자 잇시키가 드디어 몸을 일으킨다.


'이래서 사랑꾼은...'


성대한 한숨을 내쉬고 잇시키는 찌릿하고 학생회실 구석을 예리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 모습에 이끌려 그쪽을 봤더니 부회장과 서기쨩의 모습이 있다. 자네들 계속 거기에 있었구나...


두사람은 방금전의 자초지종을 목격했는지 멍하니 입을 벌린 그 표정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것처럼도 당혹스러워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아이 참 다 보고 있었다니 왠지 무척이나 창피하다...


'아시겠어요? 거기 두사람. 남들한테는 저런 식으로 보여요.'


말의 창끝으로 겨누자 부회장과 서기쨩이 움찔하고 등을 튕겼다.


'....무,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는데?'

'조심할게요...'


부회장은 꼴사납게 시치미를 뗐지만 서기쨩은 의외로 선선히 사과를 했다. 나도 무슨 소린지는 잘 모르겠으나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자, 자아!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일을 해볼까요! 네?! 부회장이랑 서기쨩도 반성하는 거 같구! 더 이상 다그치지 말아주렴!


그렇게 기합을 고쳐넣고 서류를 펄럭펄럭 검사해서 분류하고 있었는데 이로하스는 아직도 투덜투덜 거리는 모양...


'굳이 그렇게 몇 번이고 찾아오지 않아도 괜찮은데 말이죠.'

'뭐 오지말라고 하면 오고 싶어지는 법이잖냐. 칼리굴라 효과란 거겠지.'


잇시키가 직결로 오지말라고 말한 것은 아니지만, 정중한 거절은 때로 강한 금지의 의미를 지닌다. 그렇게 받아들이는 일도 흔히 있다.


내가 수박 겉핥기 수준의 지식을 입에 담자 코마치가 탁하고 손을 쳤다.


'오오 바로 그! 그러고보면 들어본 적이 있어...'

'알고 있는 거니 오코메쨩'


잇시키가 크윽하고 반응하자 코마치는 자못 심각한 태도로 대답했다.


'네. 그 그림책을 읽으면 팬케이크를 먹고 싶어지는 효과....'


'그건 구리와 구라잖냐. 아니 좋은 그림책이다만...'


뭐냐고 진짜로 알고 있나 싶었잖아. 폼잡고 무슨 소릴를 하는거람 이녀석...어이가 없어 어깨를 늘어트린 나를 향해 코마치가 쌜쭉 입술을 내밀었다.


'그럼 무슨 효과인데'


'칼리굴라 효과는 알기쉽게 말하면 안된다는 말을 들을수록 하고싶어지는 일을 말해. 비상벨은 누르지 말라고 적혀있는데, 왠지 좀 눌러보고 싶어지잖아? 영화 광고 같은데서 절대로, 보아서는 안 된다...같은 캐치카피를 써서 도발하는 것도 뭐 그런 거지.'


'호에~ 그렇구나'


코마치는 붕붕 끄덕이고 납득했습니다~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잇시키는 살짝 팔짱을 끼고 혼자서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윽고 스윽하고 입술을 매만지고는 불쑥 중얼거렸다.


'뭐 확실히...안돼라는 말을 들으면 오히려 더 하고 싶어지기는 하네요...남의 것일수록 갖고 싶어지는 느낌?'


살짝 익살스럽게 말한 그 웃는 얼굴은 귀여워야 했는데 묘하게 요염하게 보여서 나는 등줄기에 살짝 한기가 돌았다.


'아, 아니 그건 좀 다르지 않을까...'


당황해서 시선을 피하며 서류작업에 의식을 집중시키는 내 한켠에서.


'그런가요?'


시야 끝자락에서 잇시키 이로하는 즐겁다는 듯이 속삭였다.


X


조급하게 서류작업이니 기탄없는 논의의 연간행사 조사니 지뢰안건 트리아지니를 끝마친 다음날은 그 반동에선지 그야말로 느긋하게 있었다.

언제나처럼 홍차 향기가 감도는 부실에는 익숙한 광경이 펼쳐져 있다.


다만 최근 자주 찾아볼 수 있던 잇시키의 모습만이 없다. 뭐 학생회실에 있기 불편한 원인이었을 부회장과 서기쨩도 이제는 성실하게 일을 하고 있을테고 학생회실의 업무도 본격화됐을테니까 한동안 이쪽에 들릴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그녀석도 어엿한 학생회장이 됐구만...그렇게 툇마루의 영감 기분으로 찻잔을 후루룩 마시는 그 순간, 난데없이 봉사부의 문이 철컥하고 열렸다.


'수고하셨습니다~'


끝모를 명랑함에 달콤한 목소리의 울림. 굳이 그쪽을 보지 않아도 잇시키 이로하가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잇시키는 자기 집인가 싶을 정도로 거리낌 없이 터벅터벅 걸어와서 슬슬 정위치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장소, 나랑 코마치 사이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오늘의 과자는 뭔가요?'

'이 부실은 카페가 아닌데...'


유키노시타는 곤혹스러워 하면서도 착실하게 차를 꺼내들었고 유이가하마는 가방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그냥 사온 거긴 한데'

'아, 그러신가요. 마침 잘됐네요.'


그 말에 우리들은 나란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마침 잘됐다는 건지...하고 시선을 향하자 잇시키가 손에 들고 있던 종이봉투를 책상위에 올려놓았다.


'유키노 선배랑 유이 선배한테 매번 얻어먹기만 했으니까...'


그렇게 말하고 꺼내든 것은 구운 과자 모음이었다. 피난셰에 마들렌, 플로렌타인에 다쿠아즈, 귀엽게 래핑된 봉지를 열자 버터 향기가 확 올라왔다.


'제가 드리는, 답례,예요♪'


잇시키는 종이그릇을 빌려서 거기다 예쁘게 담아내고는 책상 중앙에 올려놓았다.

순간 유키노시타는 슥하고 눈을 가늘게 떴고, 유이가하마는 뺨이 씰룩 굳어졌다. 생긋생긋 웃는 얼굴의 잇시키와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그래...고맙구나'

'헤에...맛있겠다.'


두사람 다 반갑게 말하는 것치고는 음성이 묘하게 날카롭고, 딱딱하다.

아이 참, 왠지 한기가 들기 시작했어...올해는 냉하(冷夏)인가보다 하고 으스스한 기분으로 시치미를 떼면서 창밖으로 시선을 피했다.

소리란 소리는 다 끊긴 것 같은 오랜 침묵에 귀가 따갑다.

그 정적에 유난히 얼빠진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호에~ 이로하 선배 진짜로 과자 만드는 게 특기셨군요. 실제로 그럭저럭 맛있어서 코마치 조금 놀랐어요'


'뭐 그렇지...왠지 유이 선배 때보다 반응이 약하지 않니?'


에헴하고 가슴을 내밀며 자랑스럽게 말한 잇시키였는데 코마치의 건성건성한 리액션은 살짝 불만인 듯 했다. 그러나 코마치도 코마치대로 적당한 발언을 한 것치고는 과자로 뻗는 손길이 멈추지 않았다.


으음~ 사이가 좋아서 치유되는군.


또 다시 툇마루 영감 스타일로 코마치와 잇시키를 바라보며 차를 홀짝이고 있으려니 슥하고 눈앞에 종이그릇을 내밀었다.


힐끔 곁눈질로 바라보자 잇시키가 싱긋 미소지으며 말없이 맛의 감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나오면 먹지 않을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 그럼 잘먹겠습니다라며 조심스럽게 인사를 하고 나는 피난셰에 손을 뻗었다.


한입 베어물자 버터 향기가 입안 가득 퍼지고 덤으로 방순한 달콤함이 내달렸다. 촉촉한 식감은 삼킬 때마저 부드러워서 홍차와의 상성도 좋다.


'와 맛있어'


확실히 코마치가 칭찬할만 하다. 의식할 것도 없이 그런 감상이 튀어나왔다. 그러자 잇시키가 입가를 손끝으로 감추고 웃었다.


'말했잖아요. 요리, 잘한다고.'

'아니 그건 알고 있다.'


전에도 잇시키가 과자를 만드는 모습은 본적이 있고, 맛도 봤기 때문에 실력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단적으로 그렇게 대답했는데 내 대답이 불만이었는지 잇시키는 살짝 어이없다는 듯이 어깨가 처졌다.


그리고 옆에서 손을 뻗어 내 소매를 꽉 쥐고는 그대로 꾹하고 끌어당긴다. 기울어진 내 귓가에 소근소근 작게 귓속말을 했다.


'지금거 번역해드리는 편이 나을까요?'


다른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남몰래 장난스러운 속삭임은 아주 한순간 귓볼을 쌀짝 깨물고 바로 떨어졌다. 남은 것은 죄악감인지 배덕감인지 모를 간지러움 뿐.


그것을 떨쳐내듯이 나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됐어. 필요 없어'


어차피 아무리 말의 속뜻을 읽어본들, 도출해낸 말조차, 또 속뜻이 있다. 여자어는 그런 법이다. 하물며 상대는 잇시키 이로하. 당대 일류의 거물 소악마다. 나 같은 게 당해낼 도리가 없다.


쓴웃음 밖에 지을 수 없는 나를 보고 오직 잇시키만이 쿡쿡하고 미소지었다.

그렇다, 오직 잇시키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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