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 말의 속뜻에는 또 속뜻이 있다 1/2 ㄴ내청춘/역내청


이 부실에서 보는 벚꽃도 이게 마지막이군.

창밖을 바라보며 결코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입안으로만 중얼거렸다.

이미 4월도 후반에 접어들었고 훈풍이 부는 계절이 다가왔다.


그렇게나 현란호화롭게 피었던 꽃들은 눈보라처럼 지고 그대신 파릇파릇한 새싹이 자라나고 있었다. 몇 송이 정도가 가지 끝에 남아 있었으나 이제는 하자쿠라(葉桜 꽃이 지고 어린잎이 난 벚나무.)라고 불러도 된다.


옅은 복숭아색의 하얀 꽃잎은 화사하게 피었던 사실과 시간의 변화를 나타내듯이 중앙 정원의 한구석에 쓸어모아져 있어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뭉쳐져 있었다.


마치 초봄까지 남아있는 눈이다.


내년에는 이 광경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해보면 살짝 쓸쓸하기도 했는데, 알게 모르게 이 부실에 있는 것이 나에게는 아주 당연한 것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새로운 봉사부의 체제가 발족한 당초에는 당혹스러움이나 위화감이 들었으나 하루하루 지남에 따라 아주 익숙해진 것 같다.


소부 고교의 교복을 몸에 감싼 내 여동생 히키가야 코마치가 콧노래 섞어가며 책상 위를 치우는 모습도 무척 익숙해진 느낌이다. 그러나 여전히 봐도 질리지 않는 점에서 내 여동생, 너무 귀여운 것이 아닐까. 평생 바라보고 싶기까지 하다.


무엇보다 봐도 질리지 않는다는 점으로 따지면 다른 부원도 그렇다.


청초한 손놀림으로 홍차를 타는 유키노시타 유키노는 그 몸짓이 한결 진보해서 우아함이 늘어난 것처럼 보인다.


'여기'


미소를 지으며 유키노시타가 머그컵을 내밀었다. 전보다도 부드러워진 인상을 동반하게 되면서 그 미소의 파괴력이 상승했다. 뭐 이따금 전보다도 무서운 순간도 있기 때문에 어떤 의미 오히려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이다만.


'어, 고마워~!'


홍차를 받아든 유이가하마 유이의 음성은 전보다도 훨씬 활기차게, 터질듯이 상큼하게 웃는 얼굴은 그 광채가 늘어났다.


'....나도, 뭘 좀 가져왔는데.'


그러면서 가방 옆에 놓인 종이봉투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들어 유키노시타한테 건네는 동작에는 단아함이 배어나와서 아주 얼마전이라면 느낄 수 없었던 신비로움이 있다.


그리고 두사람의 맞은편에 앉아 턱을 괴고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부원도 아닌데 어째선지 부실에 있는 잇시키 이로하.

지금까지와 똑같지만 아주 살짝 다르다.


하루하루의 변화는 너무나도 사소해서 못알아보고 넘어가서 놓치기가 쉽다. 모든 것을 지켜보고 싶다고 바라는 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하다못해 남은 한정된 시간을 지켜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보다 이로하스, 예전이랑 완전 똑같네요! 한글자 한구 달라지지 않았구만.


오히려 안심이 되는 지경이기까지 하다. 아니 근데 너 왜 여기 있어? 왠지 요즘 늘 여기 있지 않냐? 아니 딱히 여기 있는 건 상관 없지만. 학생회나 축구부 쪽은 괜찮은 걸까...


걱정반 의아함반의 시선으로 보자 잇시키가 내 시선을 알아차리고 흘끗 이쪽을 바라봤다.


나랑 눈이 마주치자 잇시키는 방긋 미소지으며 목을 갸웃거린다. 순간 부드럽게 말려있던 아마색 머리카락이 흔들리며 그녀의 입가에 닿았다. 그걸 천천히 손가락으로 쓸어올리는 겸 '뭔가요?'라고 입술만 움직인다.


희미하게 구부린 하얀 목구멍, 건져 올리듯 빤히 올려다 보는 시선, 그리고 목소리 없는 속삭임.


그것이 마치 비밀얘기를 하는 것 같아서 누군가에게 감춰야만 하는 짓을 하는 기분을 들게 했다. 죄악감인지 배덕감인지 모를 조마조마한 감각이 등줄기를 스쳤다. 그걸 떨쳐내듯이 아무것도 아니라며 미세하게 고개를 저었다.


내가 무언의 대답을 하자 잇시키는 쿡쿡 웃으며 작게 끄덕였다.


목소리를 내지 않는 의사소통을 한 바람에 또다시 조마조마한 감각이 등줄기로 느껴질 것만 같아서 나는 오들오들 몸을 떨었다.


'히키가야 군'


느닷없이 유키노시타가 성을 불러서 나는 움찔하고 등을 뻗었다.


'네, 아, 네'


뭐, 뭔가요!라고 말하듯 내 대답은 유달리 저자세가 되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보고 유키노시타는 아리송하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시선은 의아하다는 듯이 가늘게 눈을 뜨고 있었는데 차츰 부드럽게 바뀌어 간다.


'이상한 사람...아, 원래부터 이상한 사람이긴 했구나'


그렇게 말하며 끄덕이곤 아무래도 알아서 납득을 하고 유키노시타는 슥하고 찻잔을 내밀었다.


'홍차, 탔는데.'

'어, 어어...고맙다.'


나는 홍차를 받아들면서 휴하고 남몰래 조용히 작게 숨을 토했다. 시야의 끝자락에는 잇시키가 씩하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


왜냐...아무것도 잘못은 하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지치는 거냐고...


일단 한숨 돌릴까 싶어 나는 찻잔에 입을 갖다댔다.

딱 좋은 온도의 홍차는 몸안에 퍼지듯 식도를 지나서 짙은 향기가 코를 빠져나왔다. 으음, 차분해지는군...


역시 이 부실에는 홍차의 향기가 잘 어울리는군...따위의 태평한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문뜩 다른 향기가 감돌고 있는 사실을 깨달았다. 킁킁 코소리를 내보자 상쾌하고 싱싱한 달콤한 향기가 느껴졌다.


뭘까...향기의 근원을 찾아보니 테이블 위로 도달했다.


그곳에 있는 것은 종이그릇에 담긴 애플파이 같은 것이었다. 유키노시타가 정성들여 자를 때마다 향긋한 향기가 감돌았다.


'와, 이건 뭐예요? 직접 만드신 건가요?'


코마치가 기쁘다는 듯이 손뼉을 치며 호들갑을 떨었다. 듣고보니 확실히 살짝 울퉁불퉁해서 볼썽사납다. 하지만 그런 까닭에 수제라는 느낌이 넘쳐나서 따뜻한 인상이었다.


코마치의 물음에 유키노시타는 미소 짓는다.


'그래, 그런 모양이야.'


'모양...? 어라...?'


살짝 이상한 표현에 코마치가 고개를 갸웃했다. 덤으로 나도 목을 구부렸다. 그러자 살짝 비스듬해진 시야 끝자락에서 우물쭈물 살짝 손을 든 사람이 있었다. 이윽고 그 손은 머리 위의 경단머리까지 뻗어졌다.


'....내, 내가, 일단, 만들었는데'


부끄럽다는 듯이 말하면서 유이가하마는 경단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말에 나는 가벼운 놀라움을 동반한 목소리를 냈고 코마치는 '호오...'라며 흥미진진하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한편 잇시키는 '헤에~'라며 털끝만큼도 관심 없다는 느낌의 목소리로 적당하기 짝이 없는 대답을 했다.


'일단은 맛있게 먹어보자'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유키노시타가 식기를 늘어놓고, 바로 시식...

홍차와 함께 저마다가 포크에 손을 뻗었다.


긴장한 기색으로 그걸 지켜보는 유이가하마 앞에 최초의 감상을 입에 담은 것은 잇시키였다. 오물오물 먹으면서 오호라하고 감탄한 듯한 목소리를 냈다.


'꽤 맛있지 않나요?'


'그래, 그렇구나...정말로 맛있어.'


이어서 유키노시타가 끄덕 수긍하곤 차분하게 음미하는 듯이 눈을 감았다. 단순한 미각 이외의 부분마저도 만족하는 듯한 깊은 끄덕임이었다.


한편 마찬가지로 깊이 끄덕이는 녀석이 있다.

코마치는 한입 먹을 때마다 흐음하고 신음하며 그릇을 들어올리고는 꼼꼼하게 그 완성도를 확인했다.


'후냐냥한 겉모습은 언뜻 못생겼고 맛이 고르지 않다는 느낌은 들지만 그것 또한 수제의 재미가...갓 구은 향기와 와삭와삭한 식감을 고려해서 넣엇따지만 그래도 살짝 너무 달짝지근한 경향은 있지만...'


오물오물 우물우물 곱씹으면서 무언가를 중얼중얼 시끄럽게 해설을 했는데 제대로 완식을 하고는 이윽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고요해지는 부실.


괜한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유이가하마가 긴장으로 고인 침을 삼키며 코마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평온한 시간이 흘렀고 잡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다만 '무슨 소리하는 거야 이녀석...'이라고 말하는 잇시키의 탁한 음성만이 울려퍼졌다.


그 소리가 그치자마자 코마치가 번뜩 눈을 떴다.


'달콤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이정도가 딱 좋아...! 합격! 합격입니다!'


'해냈어!'


딱하고 섬즈업을 하는 코마치를 향해 유이가하마가 덥썩 안겼다. 그리고 둘이서 하이터치. 그런 모습을 보며 유키노시타가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유이가하마 양, 정말로 능숙해졌구나. 예전 솜씨로는 생각도 못할 진보야'

'그래두, 아직 마마랑 같이 만들구 있지만'


에헤헤...라고 겸연쩍어 하면서 유이가하마는 경단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서,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거든...'


그렇게 말하며 유이가하마는 힐끔 나를 봤다.

그렇군, 마마가하마랑 같이 만들었구나. 그러면 황당한 어레인지나 참신한 숨은 맛은 첨가하지 않았을 테지. 무엇보다 코마치랑 유키노시타의 보증이 딸려있다.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잘 먹겠습니다...'


나는 포크를 손에 쥐고 파이를 한입 베어 물었다.

순간 아삭아삭 사박사박한 향기로운 파이생지가 입안에서 스르륵 무너져내렸다. 그 여파로 쥬르륵 싱싱한 복숭아 향기와 녹아내릴 듯한 달콤함이 퍼져나갔다. 애플파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먹어보니 예상도 못한 그 정체는 피치 파이였다. 신선한 놀라움이 맞물려서 무심코 솔직한 감상이 흘러나왔다.


'...맛있어'

'정말?!'


유이가하마가 상체를 쑥 내밀어 되물었다. 그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나는 한번 더 피치파이를 입에 옮기고 우물우물 씹으며 끄덕여 보였다.


과연, 이건 확실히 그렇다. 유키노시타가 만족스럽게 끄덕이고 음미했을만 하다.


단순한 맛이나 스위트로서의 완성도를 논하자면 아마도 제과점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녀가 쌓아올린 노력과 여기에 다다르기까지의 드라마가 이 피치 파이를 몇 배나, 몇 십배나 맛있게 만들고 있다.


예전에는 심플한 쿠키를 만드는데도 고전하고 레시피를 완전 무시하고 쓸데없는 어레인지나 토핑을 해댔었는데...


아마 이 피치파이 쪽이 쿠키보다도 난이도가 높을 것이다. 복숭아를 쓴 파이는 그리 익숙함이 없는데, 그런만큼 만드는 쪽도 고생을 했을 것이다. 그것을 바로 그 요리가 서투른 가하마 양이...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지는데 그것과는 정반대로 피치 파이를 먹는 손은 멈추질 않았고, 나는 우물우물 계속 먹었다. 그걸 유이가하마가 지긋하게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한그릇 뚝딱 비우고 홍차를 마시자 충족감에서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표현은 좀 그렇지만 정말 맛있어...아니 대단한데 진짜로...'


'칭찬히 과하거든'


유이가하마는 쑥쓰러움을 감추듯 내 어깨를 토닥토닥 두들겼다. 거기에 밀려 내 상반신은 흔들거렸는데, 갑자기 그 손이 멈췄다.


'그래두, 다행이야....또 만들어올게'


이번에는 경단 머리가 아니라 살짝 자기 가슴께에 손을 올리고 유이가하마는 불쑥 그렇게 말을 했다. 말투는 천진난만 했는데 미소는 평소보다도 훨씬 어른스러웠고 달콤함과 씁쓸함이 뒤섞여, 나는 어질어질 현기증이 날 것 같았다. 희미하게 나는 럼주향에 취한 것 같았다.


알콜은 진작에 증발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나는 취기를 떨치는 대신해서 찻잔에 손을 뻗어 홍차를 한모금.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눈을 감았다.


그러자 완전한 어둠속에 불쑥 조그만 목소리가 떠올랐다.


'나도 만들어볼까...'


홍차에 포함된 카페인의 각성작용 덕분인지, 아니면, 토라진듯한 어린아이의 목소리를 들은 덕분인지 나는 번뜩 눈을 떴다. 살펴보니 유키노시타는 살짝 시선을 돌리고 입술을 내밀고 따분하다는 듯이 긴 흑발의 끝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은 아주 한순간 뿐이었고, 바로 고개를 들어올리고 언제나와 같은 여유있는 미소를 지었다.


'차에 곁드리는 디저트는 유이가하마 양한테 맡기는 경우가 많았지. 다음에는 내가 준비해올게.'


'됐어 됐어! 내가 만들래! 늘 차를 준비해주는데 미안하구. 그리고 디저트를 반겨주는 것도 기쁘거든...내가 만들고 싶은데'


에헤헤 웃으면서 유이가하마가 경단머리를 만지작거리자 유키노시타는 휙하고 어깨에 걸쳐있는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아니, 홍차는 별로 수고스럽지도 않거니와, 수제에는 수제로 응해야겠지. 그렇다면 나도 수제 과자로 보답하는 게 도리 아니겠니?'


'보답 같은 거 신경 쓰지 않아두 괜찮은데. 그보다 나도 제대로 보답을 하구 싶다구 생각했었어'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는 서로를 바라보며 후훗하고 떠들썩하게 웃었다.


아니 참 평화로운 분위기군요. 참 좋죠 여자들끼리 수제 과자를 주고받는다니. 무척 훈훈해지는 광경이네요.


...그러한데 왜 이로하스는 씩하고 불쾌한 느낌의 미소를 지으며 내 소매를 꾹꾹 잡아당기는 걸까요. 그렇게 신이나서 잡아당기면서 소근소근 귓속말을 해본들 곤란한데요.


'선배, 지금 이거 번역해드리는 편이 나을까요?'


'번역 따위 필요 없다. 얕보지마라, 나는 여자어 검정 3급이라고'


'뭔가요 그 검정...'


적당하게 대답하자, 잇시키는 마음속 깊이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거기에 코마치가 파박하고 끼어들었다.


'설명하지! 여자어 검정이란 여자 특유의 의미심장한 말, 즉 여자어의 검정으로...뭐 요컨대 영어검정 같은 것입니다. 여자어 검정 3급이라면 대체로 중학교 3학년 레벨의 여자어는 이해할 수 있다는 느낌입니다. 잘은 모르지만'


코마치는 처음에야 기세좋게 적당한 소리를 해댔지만 얼마안가 귀찮아졌는지 어처구니 없을만큼 막 던졌다. 하지만 잇시키도 처음부터 진지하게 들을 생각은 제로였는지 노대미지다.


'쓸모없어...아니 근데 선배랑 오코메쨩 평소에 그런 소리나 하고 살아요? 사이 참 좋네요. 극혐이지만'


'그, 극혐...코, 코마치는 극혐이 아니라고 보는데요...오빠한테 맞춰주는 것 뿐이고...'


160킬로 돌직구인 매도에 코마치는 충격을 받았다. 하하하 아직 수행이 부족하구나 코마치. 이로하스의 극혐은 그거거든, 애정의 표출이나 츤데레가 츤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의외로 진심으로 정색했을 때 하는 소리니까 말이지. 더 확실하게 쇼크를 받는 편이 낫다. 바로 나처럼.


...그렇군 이로하스 나를 극혐이라고 생각했었구나! 알고 있었지만 좀 괴롭구나!


남매가 나란히 시무룩해 있자 잇시키는 추격타를 가했다.


'아니 선배랑 어울리는 것 자체가 상식적으로 위험하잖아. 애초에 누가 인정하는건데 그거...'


'물론 코마치입니다.'


'오코메쨩 기준이구나. 절대 못써먹겠네'


'뭐라고요!? 코마치, 굉장해! 여자력 높아! 여자어 잘 써! 아이 캔 스피쿠 여자어!'


'아니 일본어조차 수상하거든...그보다 선배의 여자어에 대한 이해도는 오코메쨩이 기준이란 말씀이시네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보는 잇시키에게 나는 끄덕이며 답했다.


'뭐 그렇게 되겠지.'


'예스 예스'


코마치가 완전 일본어 발음으로 쓰레기 영어를 반복하자 잇시키는 팔짱을 끼고 흐음하고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한동안 무슨 생각을 하고는 팍하고 고개를 들었다.


'....선배의 성벽이 왜곡된 것도 오코메쨩 탓인 거 아니에요?'


'아니 성벽이라니...그보다 왜곡되지 않았거든 나는. 보통이거든?'


왠지 무례한 소리를 직구로 해서 나는 즉석에서 부정했다. 하지만 건너편의 코마치는 짐작되는 구석이 있는지 어깨를 축 떨구고 침울해 했다.


'으윽...그건...부정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


거짓말, 내 성벽, 왜곡되어 있어? 진짜?


그보다 두사람이 내 성벽을 알고 있다는 전제라는 게 좀 무섭달까 섬뜩하달까...살짝 흥분되는데요. 으음, 이건 성벽이 왜곡되어 있군. 틀림없이.


그렇게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사이에도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의 여자어 응수는 계속되고 있었다.

두사람은 '내가 만들게' '내가 만들거야'라고 옥신각신하고 있다.

이대로는 수습이 되지 않는 것도 명백.


하지만 언제까고 무익한 언쟁을 해봤자 소용없다. 그것은 두사람 다 알고 있는 모양인지 한숨을 내쉬고는 서로 홍차를 마시고 재정비를 했다.


'일단은...다음번에는 누가 만들어올지 정해보자.'

'응. 어떻게 결정할까?'


그렇게 말하고 힐끔 두사람이 나를 쳐다봤다.

그 시선이 네가 정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어, 내가 결정하는 거야...?


잠시만 기다려다오. 이런 상황 위장은 물론이지만 두피에도 장난아닌 부담이 엄습하는데요~ 최근에 정수리가 살짝 넓어진 것은 아닐까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구 나는. 벗겨진다고요 진짜로.


그래도 이 대목에서 적당한 얼버무리기를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얼마나 내 두피가 대미지를 입고 머리가 대머리 수도사가 되건 상관없다. 모근 반드시 죽인다맨인 나에게 가마는 필요없다.


나는 홀짝 홍차를 한모금 마시고 우리들에게 수라장은 없다는 정신으로 아무튼 생각나는대로의 말을 늘어놓아, 적당히가 아니라, 전신전령 전력전개의 얼버무리기를 입에 담았다.


'으음, 맛있어. 너무 맛있어. 바람이 속삭이고 있습니다...딱 마시기 좋게 식은 홍차와의 상성이 또 최고야...고양이 혀에 단맛 덕후인 인간에게는 베스트한 조합...파이와 홍차가 손을 맞잡은 마리앙주가 서로를 끌어올려 조화를 이루고 있어...사람과 사람의 관계 또한 이랬으면 좋겠구나...'


'또 엄청난 얼버무리기네요...'


잇시키는 어이가 없다못해 정색하는 기색으로 말했는데 나는 그걸 무시하고 아주 유별나게 아련한 눈으로 감각에 젖은 느낌을 가장하고 코마치를 지긋하게 바라봤다.


그러자 그 아련한 시선 너머, 코마치가 피콩하고 바보털을 흔들거리며서 즉석에서 반응했다. 역시 세계의 여동생! 지원이 빨라! 빠르다고 코마치 양! 코마치는 우물우물 파이를 먹고 홍차를 마신다음 으윽하고 울며 쓰러졌다.


'대체 무슨 음식을 먹게 해준 건가...대체 무슨 음식을...이렇게 맛있는 홍차와 파이는 먹어본 일이 없네...이거랑 비교하면 이로하 선배는 쓰레기야...'


'하? 어? 아앙? 오코메쨩 지금 뭐랬니?'


쿄고쿠 만타로급으로 감동에 젖은 음성으로 억수같은 눈물을 흘리는 코마치를 잇시키가 노려봤다. 그 날카로운 안광으로 말할 것 같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오코메쨩의 알갱이를 한번에 모아 밥을 지어버릴 기세다. 실제로 쌀은 알갱이 사이즈를 가지런하게 다듬어서 밥을 지으면 맛있다고 한다. 맛의 달인은 언제나 옳다. 나는 빠삭하다구.


코마치와 잇시키의 티격거림에 독기가 빠졌는지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가 탈력했다.


'....그러면 같이 만들겠니?'

'응! 그럼 다음에 우리집 올래?'

'그래. 언제가 좋겠니?'


두사람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의자를 가까이 붙여 앞으로의 예정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으음 사이가 좋다는 건 아름다운 일일까. 이걸로 한건 낙착...이라 생각하는 요시무네였다.

그렇게 내멋대로 종결낸 기분이었는데 딱 한사람, 아무래도 납득이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무읏. 나도 과자 만들기는 특기인데요, 요리 잘 하는데요'


잇시키는 뿌우하고 볼을 부플리고 발을 동동 굴리며 불만을 표현하고 있다. 실제로 밸런타인 데이 이벤트 때는 어려움 없이 초콜릿을 만들어 보였겠다, 나름대로 자신감도 있을 것이다. 쓰레기 취급은 아무리 그래도 불쌍하다. 뭔가 옹호를 해줘야겠다고 생각한 찰나 다시한번 코마치가 스슥하고 끼어들었다.


'아니아니 요리는 애정이니까요. 사랑이 있다면 러브 이즈 오케이! 반대로 사랑이 없으면 쓰레기예요. 쓰레기. 요리가 아니라 먹이일 지경이기까지 하죠.'


'하아~ 나왔다 정신론. 선배 같은 말투 열받는데...뭐 닮았으니까 어쩔 수 없지만.'


'안 닮았지만요.'


잇시키가 후우하고 불만스러운 숨을 한번 내쉬자 코마치도 후우하고 콧김을 내뿜었다. 두사람은 거의 동시에 흥하고 고개를 돌렸다.


으음 코마치 쨩도 참 완고하기는...아니 근데 이로하스는 내 말투에 항상 열받는다는 소리가 되지 않나요? 미안하구나?


마음속으로 사과하는 내 옆에서 잇시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오코메쨩 요리할 줄 아나요?'


'코마치는 요리 무지 잘하거든. 평소부터 집안일을 하고 있고, 내 밥도 만들어준다.'


'어 진짜로?'


잇시키가 다소 놀란 태도로 돌아보자 코마치는 딱히 뽐내는 것도 아니고, 덤덤하게 극히 당연한 일이라며 끄덕였다.


'네에, 뭐. 그렇죠. 요리라고 해야할까 오빠 먹이를 만드는 건 꽤 잘해요.'


'사랑이 없구나...'


그건 이미 러브 이즈 오버잖냐...슬프지만 이 얘기는 그만하자. 자 끝. 울지마 사나이잖아라고 스스로를 질타하면서 나는 코마치와 잇시키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눈앞에서는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가 세세한 일정 조정에 들어간 참이었다.


'나 다음달부터 맨션으로 돌아가니까, 그때도 괜찮겠구나.'

'글쿠나! 그럼 매일 갈게!'

'아, 아니 매일은 좀...'


확하고 앞으로 들이댄 유이가하마의 기세에 유키노시타가 딱 그만큼 슥하고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유이가하마는 다시 한번 스스슥하고 앞으로 나왔다.


'그치만 걱정도 되구!'

'어, 걱정? ....어? 무, 무슨 소리니?'


방긋 미소짓는 유이가하마를 상대로 유키노시타가 쩔쩔매고 있었다. 평소는 영리한 광채가 깃든 늠름한 시선도 지금은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헤엄치고 있었다.


암만 그래도 눈동자가 너무 헤엄치는 거 아니냐...라고 걱정하고 있자니 옆에서 꾸욱하고 팔을 잡아당겼다.

그쪽으로 몸이 기울자 즉각 잇시키가 귓속말을 했다.


'선배, 지금 저 말 번역해주는 편이 나을까요?'

'됐어. 필요없어. 오히려 하지말라고?'


번역해봤자 내 여자어 능력으로는 그게 맞는지 어떤지 알 수 없다. 여자어는 깊이가 너무 깊다. 영어를 보다 깊이 배우기 위해서 영영사전 같은 게 있는데 슬슬 여여사전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여자어 진짜 너무 어렵다.


이건은 한번 어학유학을 위해 집에 귀가해 욕조에 몸을 담근다음 한숨 자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저녁을 먹은 다음에 맨투맨으로 코마치한테 배우도록 하자. 그래 그렇게 하자.


자 집에 가볼까...하고 일어서려 했는데 잇시키가 소매를 꽉 쥐고 있는 상태 그대로라서 그것도 이루지 못했고...뿌리치는 것도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순간.


갑자기 잇시키가 팍하고 손을 놨다. 그리고 블레이저의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들고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 표정이 묘하게 어두운 것이 마음에 걸렸다.


'왜 그러냐?'


말을 걸어도 잇시키는 휙휙 고개를 가로젓고 체념한듯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저 슬슬 가볼게요.'

'오, 오냐.'


잇시키가 슥하고 일어섰다. 아니 근데 진짜 뭐하러 온거래 얘는...그런 생각을 했는데 자리를 뜨면서 잇시키가 유키노시타한테 말을 걸었다.


'아, 유키노 선배.'

'무, 무슨 일이니!'


유이가하마한테 내몰렸던 유키노시타가 살았다!고 말하는 기세로 초고속으로 반응한다. 이런 기민한 유키농 처음 봤다...


'합동 프롬의 자료 한벌 받아갈 수 있을까요?'


'그, 그래. 그건 상관없지만...'


살짝 동요하는 기미의 유키노시타 말은 거기서 그쳤는데 그 다음은 묻지 않더라도 알 수 있다. 어디에 쓸거냐는 무언의 질문을 앞질러서 잇시키가 대답했다.


'앞으로도 합동 프롬을 할 거라면 학생회에 보관해두는 편이 낫겠다 싶어서요.'


'그건 그렇겠구나'


애초에 그 합동 프롬은 표면상으로는 우리들이 뜻이 있어 한 일로 되어 있다. 물론 잇시키를 비롯한 학생회 멤버의 힘도 빌리기는 했으나 주최자는 우리들 봉사부와 타마나와를 포함한 카이힌 종합 고교다. 어디까지나 단발 기획으로 실행할 생각이었는데 레귤로화할 거라면 학생회로 이관하는 편이 여러모로 좋을 것이다.


'....그렇구나. 그러면 우선 급한대로 이걸'


흐음하고 생각에 잠긴 유키노시타는 캐비넷에서 꺼내든 파일을 내밀었다.


'자잘한 내용은 하루이틀 사이에 정리할테니까 그걸로 괜찮겠니?'


'아, 자잘한 내용은 바로 필요한 게 아니라 언제든지 상관없어요. 우선은 개요만 있으면 충분하거든요.'


'그러니? 하지만 어찌됐건 정리할 생각이었고, 지금은 한가하니까 되도록 빨리 처리해둘게.'


말하기 무섭게 유키노시타는 책상위를 깨끗히 치우고 서류를 펼치기 시작했다. 등은 꼿꼿하게 세운 팍하고 기합이 들어간 모습은 방금전까지 완전 궁지에 몰려서 우물쭈물하던 인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뭐 어느쪽 모습도 유키노시타다워서 좋지만. 응, 좋다...(한계 오타쿠급 감상)


'나두 뭔가 도울게'


그렇게 유이가하마도 계산기 한쪽에 척척 서류를 분류했다. 두사람이 재빨리 작업을 처리하는 모습을 코마치가 감동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오오 프롬...좋아요....이런 이벤트 같은 작업을 하는 건 봉사부같아요.'


그러자 잇시키가 살짝 허리를 구부리고 내 어깨에 얼굴을 가져다댔다.


'선배 때문에 오코메쨩의 봉사부 이미지 망가져 있어요.'


'어어...내 잘못...'


예상치 못하게 접근해온 반사작용으로 나는 몸을 뒤로 젖히면서, 그걸 얼버무리듯이 콜록콜록하고 헛기침을 하곤 코마치를 슬짝 바라봤다.


'코마치 원래 이런 이벤트는 학생회가 하는 일이야. 우리들은 대체로 하청이나 제작협력으로 들어가있을 뿐이라고.'


예를 들자면 애니메이션의 제작(製作)과 제작(制)의 차이겠군,이라며 일반인도 이해하기 쉬운 예를 들어 설명해줄까 했는데 그것은 잇시키의 한숨으로 차단되었다.


'딱히 이벤트만 하는 건 아니지만요...'


피곤한 것인지 어이없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음성으로 그렇게 말하고는 잇시키는 무언가 떠올랐는지 흐음하고 턱에 손을 갖다대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코마치를 힐끔 보고는 평상시보다도 부드러운 미소로 어느 정도 언니 같은 분위기로 말했다.


'...관심이 있다면 오코메쨩도 학생회실 올래요? 분위기 정도는 파악할 수 있을 거라고 보는데요.'


'코마치, 안 가요. 그런 건 됐어요.'


그렇다고 하건만, 이 여동생, 즉답으로 소금대응. 휙휙 고개를 젓고 덤으로 그건 아니라며 손까지 흔들고 있다. 그렇게나 관심이 있어 보였는데...


'뭐야 이녀석...오코메쨩 진심 의미를 모르겠네...'


'그런 측면, 가끔씩 무지 힛키랑 닮았어...'


불쾌하다는 듯이 그렇게 말하는 잇시키 뿐만 아니라, 그 유이가하마도 살짝 깬 모양이었다. 뭣하면 나도 살짝 깼다.


'아니 가도 괜찮아...학생회 활동 관심 있잖냐?'


'그치만 코마치 봉사부도 있으니까...'


어떡하지...라고 코마치가 나랑 잇시키 그리고 유이가하마, 유키노시타의 얼굴을 순서대로 힐끔 엿보았다. 다소는 망설이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자 유키노시타가 필기 작업을 멈추고 펜을 뺨에 대고서 미소지었다.


'이쪽 일은 해놓을테니까 걱정마렴. 만약 상담자가 오면 코마치 양한테 연락하도록 할게'


'그, 그러신가요? 그, 그럼 조금만...'


유키노시타한테 떠밀려 코마치는 부랴부랴 일어났다. 잇시키는 코마치를 빨리 오라고 손짓하여 슥하고 복도로 밀어내고는 우리들을 향해 빙글 돌아봤다.


'그러면 오코메쨩 빌려갈게요☆'


그리고 요망하게 경례, 덤으로 윙크 찡끗☆하고서 문을 탁하고 닫았다.

하지만 자리를 뜨는 그 한순간, 문이 닫히는 그 찰나, 잇시키가 히죽하고 웃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핑백

덧글

  • ㅇㅇ 2020/07/01 20:52 # 삭제 답글

    뭘 생명체한 건지 정도는 설명을 해주새우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