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연에는 손대지 마! 오오와라 스미토의 반생 애니

학생시절 애니메이터를 지망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옛날부터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하셨나요?
유소년기에는 꼭 그렇지만도 않았고, 가끔 낙서를 하는 정도였습니다. 제대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중학생이 된 다음부터죠.
무엇이 계기였나요?
으음,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자기방위의 수단이 필요했으니까'입니다.
자기방위의 수단인가요?
네. 왜냐면 나는 초등학생 무렵부터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했어요. 공부도 못했고, 운동으로 스타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죠. 숙제도 자주 까먹었고, 그래서 친구들도 괴롭혔어요. 나를 괴롭히는 놈들을 '친구'라고 부르는 것도 이상하지만요(웃음) 어찌됐건 그러한 환경이었겠다, 스스로도 열등감을 품게 된 점도 있고해서 점점 정신적으로 내몰렸죠.
학교에 가지 않게 된 거군요.
초등학교 1학년 무렵에는 이미 학교에 가는 게 싫었고, 고학년이 된 무렵에는 가다 안가다를 반복하게 됐습니다.
그림이 '자기방위의 수단'이라는 것은 주위의 인정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갈고닦았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등교거부자이긴 했지만 '사회복귀를 해야한다'는 마음은 계속 가지고 있었어요. 부모님도 협력을 해주셔서 환경을 바꾸기 위한 전학도 두번 경험했습니다. 그 때, 누가 보더라도 알아볼 수 있는 특기를 익혀두면 모두와 어울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래서 그림을 그리게 됐습니다.
그 나이에 '사회복귀를 해야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니 상당히 강하다고 할까 긍정적이네요.

아마 '분함'도 있었을 겁니다. 초등학교 무렵부터 '언변'이나 '문장'같은 언어능력으로는 동년배 아이들을 앞서고 있다는 기분은 들었어요. 나를 괴롭히는 아이들만 해도 '말이 유치하군'이라고 어렴풋 생각했는데, 하지만 결국 전혀 받아치지 못했죠. 그건 다시말해서 자신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소리잖아요? 그런 스스로에 대한 분함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옛날부터 영화나 애니메이션은 자주 봤고, 부모님도 누나도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 영향도 있고해서 자연스럽게 그림을 선택했다고 봅니다.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무렵에는 인터넷에서 플래시 애니메이션이 전성기를 맞이하였고, 거기에 러키☆스타나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같은 심야 애니메이션이 활기를 띠던 시대였거든요.

가족이 전부 그림을 그릴 수 있다니...혹시 예술가 집안인가요?
아뇨 전혀 그렇지는 않지만, 가족 전원이 초 문과계라고 할까요, 언어능력이 뛰어났다고는 생각합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예를들어 '아저씨 개그는 무엇인가?' 같은 주제로 다같이 몇 시간이고 얘기를 했었죠(웃음)
무슨 말씀이긴가요?
아저씨 개그나 말장난은 기본적으로 시시하고 썰렁하다고 여겨지잖아요? 그럼 왜 그런 드립을 치는가. 썰렁하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치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것인가. 아니 오히려 그 썰렁함이 재밌다고 느껴지는 타이밍이나 문맥이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한 것들을 부모님과 누나 셋이서 토론했어요.
오오와라 씨는 참가하지 않으셨나요?
나는 막내고, 가족 중에서는 언어능력도 최약이라서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중학생 정도가 됐더니 점점 맞설 수 있게 됐죠. 우리 가족은 개그센스도 엄격한데요(웃음) 어느 날 곰곰이 '치비토(오오누마 스미토의 애칭)도 재밌어졌네'라고 해서 '아싸 인정받았다'고 마음속으로 승리 포즈를 취했습니다.。
참고로 그림의 길을 걷는 것에 대해서 가족의 반응은 어땠나요?
뭘 그려도 칭찬해줘서 개인적으로는 '아니 너무 오냐오냐 해주는 거 아냐?'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계속 칭찬을 해주었기에 기분 좋게 계속 그릴 수 있었던 걸지도 모릅니다. 우리집은 부자도 아닌데, 내가 그림을 그리기 위한 지원은 아끼지 않으셨으니까요. 부모님한테는 무척 감사한 마음입니다.
오오누마 씨는 트위터에 '발달장애 진단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등교거부를 반복했던 것은 그것도 관계가 있나요?
있다고 생각해요. 내 경우에는 언어나 도형, 공간에 관한 능력은 상당히 높지만, 반면 계산을 하거나 한자를 외우는 건 괴멸적으로 서툴러요. 덧셈이나 뺄셈처럼 동년배 아이들이 당연하게 할 수 있는 일을 전혀 못하는 것은 역시 정신적으로 낙담하게 되는 일이고, 따돌림의 대상이 되기도 쉬운 일이었겠죠.
과연. 오오누마 씨한테 있어서 '사회'나 '세간'은 조금 살아가기 힘든 것이로군요.
최소한 넋놓고 있어서는 살아갈 수 없죠. 하지만 그런 이유도 있고해서 어릴 때부터 스스로를 평가하거나, 사회와의 절충선을 고려하는 기회가 많았어요. 핸디캡이 있으면 여하튼간에 사회에서 살아남는 것에 관해서 자각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장애자 수첩을 제시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의 면죄부는 받을 수 있고, 그걸로 도움을 받는 측면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만으로 세간을 넘나들 수 있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으니까요.
그림은 자기방위의 수단인 동시에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다.
나한테 '그림'은 좋고 싫고 이전에 단순한 기술. 이 기술을 살려서 누군가에게 필요한 인재가 될 수 있다면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 해답이 애니메이터나 만화가라는 직업이었군요.
하지만 처음부터 그걸 목표로 했던 것은 아닙니다. 미술 계통 전문학교에 진학했을 때는 예를 들어 잡화점에 취직해서 그곳에서 POP를 그리는 사람이 필요로 해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

다만 '어쩌면 나는 무언가가 되는 걸 목표로 했던 게 아닐까?'라는 어렴풋한 예감은 있었어요. 그게 영화인지 애니메이션인지 일러스트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걸 목표로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감각입니다. 그래도 당시에는 만화라는 수법은 고려하지 않았고 완전히 애니메이터 지향이었습니다.
실제로 혼자서 애니메이션 제작에 도전하셨죠.
네. 전문학교를 졸업한 다음 약 2년간 혼자서 애니메이션을 만든 시기가 있습니다. 완성하면 공모전에 출품할 생각으로. 어쩌면 그렇게 무언가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2년을 공들여도 2분 정도밖에 만들지 못해서 '아 이건 완성 못한다'고 포기했습니다.(웃음) 그 애니메이션을 완성시키고 싶은 마음은 지금도 있지만 아직은 이루지 못했어요.
그리고 그 다음, 처음으로 만화를 그리게 됐습니다.
뭐라도 좋으니 완성된 것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펜이 느린 이유도 있었지만, 전문학교 시절에도 대부분의 과제 제작을 완성시켜 본 적이 없었기에, 진짜 위험하다고 생각했죠. 만화라면 완성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걸 코미티아(자주제작 만화전시 즉매회)에 냈습니다.
그것도 완결은 하지 않았으니 엄밀하게 따져서 완성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요(웃음) 하지만 마지막의 마지막에 제대로된 틀을 갖춘 점은 좋았습니다.
마지막의 마지막은 무슨 의미인가요?
취직을 하려고 했거든요. 전문학교를 졸업한 다음부터만 해도 약 2년이나 방에 틀어박혀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를 만들었으니 무언가가 되기 위한 도전은 일단 포기할 때라고 생각했죠. 물론 이게 인생의 마지막 찬스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고 일을 하면서 그림을 그려 재도전하는 것도 가능하니까요.
일단 매듭을 지으려 했던 거군요.
맞습니다. 실제로 발달장애자를 위한 직업 훈련 학교에도 다니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취직활동을 시작하기 직전이었습니다. 코미티아에서 소학관 편집자의 제의를 받는 것은. 그렇게 이 세계에 뛰어들자고 결심했습니다.
정말 아슬아슬한 타이밍이었네요.
아슬아슬하게 인생이 격변했습니다. 하지만 영상연이 히트해줘서 정말 다행입니다. 그 때의 결단은 틀리지 않았다고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습니다.
코미티아에 출품한 만화는 영상연의 프로토 타입 같은 작품인가요?
SF였기 때문에 직접적인 프로토 타입은 아니지만, 캐릭터의 말투가 ○○씨/氏라거나 라멘가게가 나오는 등 비슷한 구석은 있습니다. 말풍선에 원근법을 적용하는 것도 이 당시부터 했던 일이고요.
그러셨군요. 영상연은 좋은 의미로 만화답지 않은데, 그 점은 학생시절부터 애니메이터를 꿈꾸셨던 영향이 있을까요?
그보다는 지금까지 만화를 그린 적이 없었던 쪽이 더 크다고 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을 만화라는 필드에 때려박아 그릴 수밖에 없었고, 애초에 '만화를 그리자!'고 의식한 적도 없기 때문에, 그야 뭐 만화같지 않은 만화가 될만도 하죠(웃음)
2018년에는 가혹한 제작 스케줄로 컨디션이 무너져서 트위터를 통해 격월 연재를 호소했는데 역시 지금도 월간연재는 힘이 드시나요?
지금은 그정도는 아닙니다. 연재를 반복하면서 점점 감을 잡게 됐는데 펜의 스피드는 '내가 그리고 싶은 걸 그리고 있느냐'에 엄청 영향을 받아요. 조금이라도 그리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작업을 하면 정말 펜이 진전이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는 지금은 정말로 그리고 싶은 걸 마음껏 그리고 있기 때문에 떫음을 느끼지도 않고, 펜도 일정한 스피드로 나아가게 됐습니다. 지금은 월간이라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웃음)
영상연은 상당히 정보 밀도가 높은 작품이죠. 작중에 등장하는 설정화만으로도 1화분량에 필적할 만크므이 칼로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칼로리로 따지만 설정화는 꽤나 높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그 스타일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타협을 할 수 없는 설정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인가요?

아뇨 사실 나는 그런 설정화는 연재 전에는 거의 그려본 적이 없어요. 애초에 비행기나 메카도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요.


네!? 정말인가요?
정말입니다. 설정화에 집착하는 것은 영상연을 만들면서 '오타쿠는 무엇일까?'라고 새삼 분석한 결과입니다. 아메토크!나 타모리 구락부처럼 무언가를 좋아하는 사람을 감상하는 방송을 체크해서 '오타쿠'라는 장르에 대해 이런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설정화를 그리는 방식도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에, 남은건 직접 철저하게 조사해서 그리고 있습니다.
의외입니다. 원래부터 탈 것이나 메카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닙니다. 하지만 공부를 하다보니 점점 재밌어져서 지금은 저도 아주 좋아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애초에 저도 상당히 오타쿠 기질이 있으니까, 자세하게, 올바르게 기술하는데는 집착하기 마련이고, 그런 사가(SAGA)는 가지고 있습니다.
과연. 오타쿠이긴 한 거군요.
네. 설정화에는 내 취미도 넣어가면서, 정리해서 간추린 것을 아웃풋하고 있습니다.
취미가 드러나는 부분이라 하시면?
영상연 설정화에 반영되어 있는 장르로 따지자면 동식물 같은 자연계가 그렇습니다. 옛날부터 TV 퀴즈 방송에 출제되는 동식물계통 문제는 매우 간단하다고 느꼈습니다. '무의 잎사귀는 무엇일까?'나 '이 중에 콩과 식물은?'처럼 웃음이 터질만큼 수준 낮은 문제였죠.
동식물 매니아신가요?

전문적으로 공부한 것은 아니라서 제대로 공부하신 분과 비교하면 아마추어 레벨입니다만....가족의 정원일을 돕거나, 아버지가 농대 출신에 보이스카웃도 하신 분이라서, 모닥불 피우는 걸 가르쳐주시거나, 숲으로 놀러가곤 했는데 그런 체험의 영향으로 좋아하게 됐습니다.

아마 대다수의 사람은 전국무장의 이름은 기억해도 토마토 잎사귀 모양은 모를 거예요(웃음) 하지만 나는 그런 쪽에 흥미가 들끓습니다.

매우 뛰어난 기억력과 관찰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어떨까요. 기억력이라기보다는 '출력'이라고 할까요, 떠올리는 쪽의 힘일까나?

예를들어 자전거를 못그리는 사람이 많잖아요? 일상적으로 보는 물건인데 그림으로 그리고자 들면 '페달은 어디에 달려 있더라?'라는 식으로. 나는 그림을 그리게 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출력하는 힘을 단련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현재 영상연 애니메이션이 방송중입니다. 솔직한 심정은 어떠신가요?
애니화는 몇 백만부라는 판매량이 받쳐주지 않으면 실현되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제의를 받았을 때는 놀랐습니다.
시청한 감상은요?
내 작품이 애니메이션이 되어 움직인다기보다는, 정말 일개 시청자 입장에서 즐기는 마음이 앞서고 있습니다.
원래부터 애니메이터 지망이었던 만큼, 작화나 연출 등 여러모로 주문하고 싶지 않으신가요?

아뇨 아뇨. 도무지 그런 마음은 들지 않습니다. 제가 배운 애니메이션의 발상이나 기술을 아득히 초월하고 있으니까요. 지금은 '과연, 작품은 이렇게 전개시켜야 하는구나'라고 거시적이라고 할까요, 프로듀서의 관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과연. 지금의 '프로듀서 관점'도 그렇지만 학생시절의 자기분석 등 오오와라 선생님은 언제나 본인을 객관적으로 보고 계시네요.
그건 역시 내 성장과정에서 기인한 점이 클 겁니다. 그리고 고등학생 무렵부터 너무 많은 것들을 끌어안아서 결과적으로 우울증에 걸렸던 경험을 했거든요(웃음) 그래서 어느새 자신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나 같은 것이 생겨났어요. '나는 지금, 실은 조금 우울한 상태다. 조심해야해'라는 식으로.
또 하나의 내가 충고를 해준다?
네. 그래서 그때마다 원인을 분석하는데요 대부분 심플하게 캐퍼 오버입니다.

나는 멀티 태스크 능력이 낮은데 남들 부탁을 거절 못하는 성격입니다. 거절하는 건 마음이 아프고, 상대방도 '뭐야. 못하는거냐'고 여길지 모른다 싶어 조마조마한 마음이 드는데, 그때 메타 시점의 내가 '하지만 여기서 거절하지 않으면 나중에 괜히 더 폐를 끼칠지도 모르고 내 마음도 꺾이게 된다'고 말하죠. '....좋아, 거절하자'고요.
그런 자문자답을 하면 객관적인 판단이 가능한 거군요. 그런 대목은 작중에서도 아사쿠사의 대사 '로봇 애니는 그만두자!!' 등을 통해 묘사됩니다.
내가 '인정받고 싶은 것'이나 '좋아하는 것'과 작품의 '세일즈 전략'은 별개입니다. 하지만 정말로 좋아하는 것이라면, 딱히 누군가에게 인정받을 필요도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는 내키는대로 그리고, 팔 때, 즉 작품으로 완성시키는 단계에서 세일즈 전략에 신경을 쓰면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하면서 그리고 있습니다.
화제를 애니메이션으로 다시 돌아와서, 엔딩 애니메이션에 애니메이터로 참가하셨죠. 구체적으로 어느 파트를 담당하셨나요?
배경을 제외하고 움직이는 것은 거의 전부 그렸습니다. 처음부터 열거하자면 '걷는 세사람' '작은 전차' '손을 흔드는 토끼' '상공에 캐논포를 쏘는 아사쿠사 씨' '비행정' '달리는 세사람' '너구리 로켓' '소파에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는 아사쿠사 씨'
듬뿍이네요. 그리는데 얼마나 걸렸나요?
꼬박 삼일 정도입니다. 토끼는 2코마였고 비행정도 복붙인데 그럼에도 100장 가까이 그렸던 것 같아요.
오랜만에 한 애니메이션 제작은 어떠셔싼요?
간신히 애니메이션을 그리는 비결을 떠올렸다 싶은 차에 끝이 났습니다(웃음)
다시 누군가한테 배우기도 하셨나요?
애니메이터 분한테 여러모로 지도를 받았습니다. 독학이긴 하지만 애니메이션 제작 감각은 알고 있었기에 동작이 아니라 시간으로 구분지어 동화를 나누는 방식 등은, 일방적인 신인보다 습득이 빠르지 않았을까 저 혼자 생각 중입니다.
그러면 앞으로는 애니메엍로 살아갈 수도 있겠네요.

아뇨 애니메이터는 노동이 너무 가혹해서 아마 나한테는 무리일 겁니다. 나는 몸도 약하고 컨디션도 망가지기 십상인데다가, 스트레스 내성도 낮아서요. 체력이나 정신면에서 따져봤을 때 만화를 그리는 편이 더 맞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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