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지마 사토시-부기팝 오버드라이브 왜곡왕 라노베



내맘대로 부기팝 특집도 후반전 돌입
이번에는 네번째 <부기팝 오버드라이브 왜곡왕>이다.

카도노 코우헤이에 의하면 당초에 부기팝 시리즈의 완결편이 될 가능성도 상정하고 썼다는 본작. 전작 부기팝 인 더 미러 판도라가 감동적인 청춘 액션 소설이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본작은 한마디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카도노답다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소설이다. 카도노답다는 게 뭔데라고 물으면 설명하기 난감하지만…일단 줄거리부터 살펴보자.

요절한 천재경영자가 생전에 건조한 문템플. 그러나 그 설계가 지나치게 전위적인 나머지 활용할 용도를 알 수 없었고 하다못해 해체전에 관광객한테 입장료를 받아 비용으로 쓸 목적으로 일반 공개된다. 하지만 공개 당일 갑자기 나타난 '왜곡왕'이라 이름을 댄 존재로 인해 문템플은 폐쇄된다. '모든 것을 황금으로 바꾼다'는 뜻모를 목적을 말하는 왜곡왕으로 인해 문전성시를 이룬 관객들은 내부에 갇히게 되는데, 왜곡왕은 딱히,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인질로 잡아 협박하는 행동은 일체 하지 않는다. 그러면 무엇을 하느냐…하면, 갇힌 인간들이 후회로 남겨둔채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된 상대방의 모습을 취해 저마다의 앞에 나타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어떤 인물 앞에는, 과거에 죽은 친구의 모습으로. 그리고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의 등장인물이기도 했던 니이토키 케이 앞에는 그 식인귀의 협력자였던 남학생의 모습으로

'악역'의 재등장이 가리키듯 본작은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의 직접적인 속편이라 불러도 될 작품이다.―그렇다곤 해도 물리쳤을 터인 그녀석이 한층 더 강해져서 리벤지 매치…란 식의 전개는 아니고, 시작되는 것은 일련의 사건에 조우한 등장인물들을 향한 왜곡왕 씨의 카운셀링이랄지 토론이랄지…그 사건은 그녀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그녀한테 무슨 의미였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뭔 소리냐는 말을 들을 것 같은데, 정말로 그런 이야기니까 어쩔 수가 없다.

물론 문템플에는 우리들의 히어로, 최강 데우스 엑스 마키나 부기팝 씨도 잠입해 있어서, 원작 사상 최강후보로 명망 높은 대괴수 조라기 씨와의 장절한 배틀 같은 화려한 장면도 있지만, 그게 이 소설의 메인인가…?라고 묻는다면 답하기 다소 난처하다.

오히려 인상적인 것은 첫번째 시리즈의 세계의 적이란 사실 식인괴물이 아니었다,는 부기팝 씨의 충격고백에서 비롯된다. 그러면 세계의 적이란 무엇을 말하는가?에 관한 스릴 넘치는 논의 쪽인 것이다.

본작품이 주는 신기한 독서체험은 키리마 세이이치란 캐릭터를 연상케 한다.
'불꽃의 마녀' 키리마 나기의 부친이자,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 시점에서 이미 사망했지만, 평론가이기도 했던 그가 남긴 경구는, 종종 등장인물에 의해 인용되어, 작중의 중요한 키워드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이러한 것들이다.

인간의 가능성은  선에게도 악에게도 열려있다. 2류의 사회생활에 억압받고 있는 가능성이 독립하여 존재를 주장하는 것이 다중인격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것이 아무리 병적이고 본인이나 주위에 있어서 파괴성이 있는 것이라 해도 가능성에 선악의 구별은 없다.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


……분명히 무언가가 있다. 인간에게 '이렇게 되어야만 한다'고 믿게 만드는 누군가가. 그것은 인간들 사이에 숨어 들어와 어느새 세계를 삐걱거리게 만든다.

……인간의 생애에 무언가 가치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 누군가와 싸우는 것 밖에 없다. 자기 대신 무언가를 생각해주는 이미지네이터와 대결하는 VS이미지네이터―그것이야말로 인간이 가장 최초로 서야만 할 위치일 것이다.

「부기팝 리턴즈 VS이미지네이터 Part I」


이 키리마 세이이치 씨, 사실은 소설가 지망이었다는 것 같다.
그러나 창작쪽은 전혀 뜻대로 되지 않고, 결국, 저명한 평론가로 그 생애를 다했다.
그 시원찮았던 그의 소설이, 대체, 어떤 내용이었일지, 우리들은 알 길이 없지만…아마 카도노 코우헤이가 가장 카도노 같을 때처럼―즉 이 왜곡왕 같은 소설을 쓰지는 않았을까.

카도노 코우헤이의 소설은 철학같다고 해야할지, 뭐라고 해야할지, 한명의 사상가가 논문이 아니라 소설형식으로 자신의 물음을 전개해나가, 그 사고의 과정을 이야기로 출력하는 것 같은 경향이 있다. '산다는 것은' '죽는다는 것은' 그리고 '사람 마음속에 있는 일그러짐은 치유할 수 있을까, 치유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세계의 적이란 무엇을 말하는가?'란 식의 사상을 소설 형식으로 심화시킨 끝에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된다…고 해야할까.

'카도노스럽다'는 말로 내가 표현하고자 했던 바는, 대충, 그런 느낌을 말한다.

만약 키리마 세이이치의 소설이 그런 내용의 소설인지 사상서인지 모를 내용이었다면 매상이 시원치 않았던 것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키리마 세이이치의 소설은 잘 팔리지 않았지만, 카도노 코우헤이의 소설은 엄청 '카도노스러운' 소설도 포함해 팔렸다. 라이트 노벨의 역사를 바꿀 정도로 팔렸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나로서는 여전히 알 수 없다.

단 한가지 할 수 있는 말은 '소설의 재미'란 실은 독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해서, 도저히 장르를 나눌수도 없고, 읽고나서 어디가 재밌는지 스스로도 전혀 모르겠지만, 아무튼 푹 빠지게 되는 소설도 존재하는 법이다. 나한테 그 사실을 처음으로 가르쳐준 것이 카도노 코우헤이였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사변성만이 왜곡왕의 모든 것은 아니다.

그같은 시리즈 근간에 관계된 거대한 테마를 그리는 한편, 이 작품은 실은 '실연당한 소녀가, 그 짝사랑의 마침표를 찍는 이야기'이자 혹은 '여자를 찬 아픔을 가지고 있는 소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청춘소설의 측면도 갖추고 있다. 그처럼 완전히 상이한 차원의 이야기를 하나의 작품으로 정리하는 카도노의 수완은 역시 대단하다. 어쩌면 키리마 세이이치 소설이 안 팔린 이유는 사변성은 있어도, 이같은 수완이 빠져 있기 때문은 아닐까...싶지만 더 해봤자 완벽한 망상이니 이쯤해두자.

이미 몇번이고 언급한대로, 카도노 코우헤이의 데뷔와 부기팝 시리즈의 히트는 라이트노벨의 메인스트림이 판타지에서 현대물로 이행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카도노 코우헤이 같은 소설, 부기팝 같은 소설…즉 현대가 무대고, 학원 러브코미디도 있고, 다양한 능력자가 나와서 싸우고…이런 작풍은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서 타카하타 야시치로 <작안의 샤나>(2002년)등의 대히트작으로 인해 '현대학원이능'이란 장르로 형식화 되었다.

'남학생이 이능 히로인과 만나, 학원 러브코미디 풍의 일상과, 이능배틀 풍의 비일상을 번갈아 반복하는' 플롯은 00년대의 라이트노벨 기본 포맷 중 하나로 자리잡았고 예를들아 <어떤 과학의 금서목록>등 무수한 히트작을 배출했다. 최근에는 판타지의 인기의 재림이 현저한 라이트노벨이지만, 여전히 왕도의 장르 중 하나다.

하지만 '부기팝 같은 소설'이 '현대학원이능'으로 장르화 되어가는 와중에, 거기서 떨어져나가버린 것도 역시나 존재한다. 다소 과장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다른 형태로 자리잡을수도 있었던 라이트노벨의 가능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만약 라이트노벨 작가를 꿈꾸는 십대, 이십대가 이 연재를 읽어주었다면, 모쪼록 부기팝 시리즈를―특히나 왜곡왕을 읽어봤으면 한다.

미래의 가능성이란, 현재가 물려받지 않았던 과거에 잠들어있지 않을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대의 시점으로 본 카도노 코우헤이 작품의 모습을, 나에게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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