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카하타 이사오가 만들 예정이었던 환상의 영화 국경 애니


미야자키 하야오 프로듀서X오시이 마모루 감독 조합으로 만들 예정이었던 지브리 영화 <앵커>

 『국경』은 아동문학작가 겸 극작가 시카타 신이 1986년부터 1989년에 걸쳐 발표한 소설 삼부작. 1권으로 망라한 1995년판은 총 600페이지가 넘는 장편이다.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 당시의 조선,중국,만주,몽골을 무대로 서울에서 태어난 일본인 청년이, 죽었을 터인 소꿉친구를 찾는 과정에서 반만항일(反満抗日)이나 조선독립을 위한 지하 독립운동에 참가하는 스토리다.

이 작품에는 아마카스 사건의 아마카스 아사히코나 육군대장 토죠 히데키, 조선독립운동가 시절의 김일성, 혹은 모리시게 히사야 등 실존 인물이 다수 등장하는데 논픽션이 아니라, '모험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한편으로 이야기에 작가 본인의 전쟁체험이 농도 짙게 반영되어 있다는 사실 또한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저자 시카타 신은 1928년 일본 통치하의 조선・경성(현재의 서울)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경성제국대학의 교수, 모친은 서양화가였고 당시로서는 리버럴한 가풍 속에서 자랐다. 경성제국대학 예과 재적중에 종전을 맞이한 저자는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 민방 라디오국에서 디렉터로 일하다 1974년부터 전업작가 인생에 투신, 2003년에 사망했다. 시카타 신에게 국경은 '라이프 워크 중 하나'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었다고 한다.

1부 '대륙을 누비다'의 시대배경은 노구교 사건이 발생한지 2년이 지난 1939년. 주인공 아키오는 경성제국대학의 예과생이다. 학우들과 언젠가 전쟁터로 착출당할 것을 의식하면서 술자리를 가졌던 초여름 밤, 남몰래 호의를 뭄었던 카즈에를 통해 만주에서 훈련중에 사고사를 당했다던 카즈에의 오빠이자 소꿉친구 노부히코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전해듣는다.

일본이 1932년에 수립한 만주국. 아키오는 문뜩 노부히코가 만주의 군관학교 입학을 결심했을 적에 '천황각하를 위해서는 죽지 못하겠지만, 만주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죽을 수 있다'고 말했던 걸 떠올린다. 아키오는 그 의미를 곱씹으며(약간의 흑심도 가지고) 만주까지 노부히코를 찾는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그 배후를 '시로메'라 불리는 냉혹하고 잔학한 만주공안국의 첩보원이 마크하고 있었다.

사실 노부히코는 관동군이 유괴한 몽골 장군의 자손으로, 군관학교를 탈주해 지하공작운동에 가담하고 있었던 것이다. 노보히코의 '귀로'를 더듬어가는 과정에서 첩보원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은 아키오는 지하운동에 관련된 몽골인 나무루마의 도움으로 만주국이 「오족협화五族協和」라는 미사여구를 내세운 침략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또 시라메한테 붙잡혀 고문을 받는 과정에서 일본인에 의한 차별, 폭력, 착취, 성적폭행, 전쟁범죄의 실태를 몸소 체험하고, 여행을 마치고 경성으로 돌아간다.

이어지는 2부는 태평양 전쟁 당시인 1943년. 군에 속한 기술자로서 독립을 바라는 조선인과 교류를 하며 무기제조에 관여한 아키오는 일본군인의 비열한 폭력지배, 대본영 발표의 기만을 목격하고 조선독립운동에 몸을 던질 것을 결의, 노부히코나 나무루마와 재회를 하게 된다. 그리고 3부는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며 1945년 8월 15일을 자신이 태어난 땅 경성에서 맞이하고, 시라메와의 결전에 종지부를 찍는 대목에서 이야기의 막을 내린다.

이것이 국경의 줄거리다. 예과생 아키오가 막연하게 받아들였던 조선,중국,만주,몽골의 「국경」이란 침략자 일본이 그은 강요에 의한 것이었다.

아키오가 그 사실을 깨달은 것은 일본인에 의한 폭력이나 차별을 목격한 것이 유일한 계기가 아니다. 오히려 지배를 받는 당자사들과 허심탄회하게 교류를 하게 되면서 '조국'과 '민족'이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면서 독립운동에 참가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작중에서 기관사로 분장하고 몽골 국경을 향하는 도중 아키오는 협력자인 몽골인이나 조선인과 이같은 대화를 나눈다.

아키오는 다시 한번 운전실 안을 둘러봤다. 석탄으로 시커매진 노부히코의 얼굴을 상상하니 우스워졌다. 도르지는 말을 이었다.

"일본인으로 태어났다가, 나중에 내 나라를 다시 선택했으니 말이지. 나라를 다시 선택한다는 건 아주 힘든 일이야. 나로말할 것 같으면 만주는 나라가 아냐. 내 나라는 몽골이다. 그것 외엔 있을 수 없었지만. 그 녀석은 그렇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고를 수 있는 나라가 있는 놈은 행복한 거야."

불쑥 목소리가 들렸다. 이 씨였다.

"우리는 나라가 없거든"

조심스럽게 아키오 얼굴을 살핀다음 말을 이었다.

"일본인이 나라에서 쫓아내서, 만주 여기저기를 돌아다녔지만 어딜 가든 외지인이었어. 다른 나라의 대지, 그 나라의 하늘을 헤매이는 인생이 어떤건지 알아? 이렇게 일하고 생각하고 말해도 전부 그 나라의 하늘과 땅 속으로 사라져버려. 그 역사를 물려받는 이 하나 없이 말이지. 허전해. 정말로 허전한 일이야."

또한 이 작품의 특징 중 하나로 관동대지진 당시의 조선인 학살, 위안부나 징용공 강제연행, 인체실험을 했던 731부대, 식민지 해방을 주장한 괴뢰정권 수립, 조선인 창씨개명 등 일본에 의한 가해사실 에피소드가 군데군데 삽입되어 있는 사실을 들 수 있다. 그 모든 게 작가의 실제 체험은 아니었다곤하나, 적어도 일본군에 의한 강제연행만큼은 당시 작가가 직접 목격한 광경이 여실히 반영되어 있는 듯 하다. 시카타 신은 어느 강연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한번은 어느 조그만 역에서 조선인이 강제연행되는 현장을 본적이 있어요. 이것도 굉장했습니다. 나는 인간이 운다는 게 어떤 것인지 이날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어머니(オモニ)가 오열합니다. 오열하는 어머니를 밀치고, 두드려패고, 떼어낸 다음 아들이나 남편들을 화물칸에 밀어넣는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습니다. 그 흐느낌은 강렬하게 남아있습니다. 나는 그 순간, 내가 조선인이란 사실을 알고 있다고 떠들었던 주제에,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일본인의 한계를, 느끼고 말았죠.(아동문학과 조선 神戸学生青年センター出版部、1989年)

또 3부에서 자세히 묘사된 종전일 당시의 서울 시내 모습 또한 시카타 신 씨 본인의 체험이 바탕이다. 시카타 신을 포함한 경성제국대학 예과생은 8월 15일 정오무렵까지 소련의 침공을 대비해 폭탄을 품에 안고 전차에 뛰어드는 훈련을 했다. 그 직후에 들려온 옥음방송. 머리가 새하얘져서 그대로 경성을 산책했다. 그렇게 시카타 신은 처음으로 조선인의 데모진행을 보고 그 밝은 모습에 감동했다고 한다. 앞서 인용한 강연의 일부를 다시 인용해본다.

참으로 부끄러운 얘기지만, 그 때까지 침략자라는 죄의식이 없었어요. 문뜩 정신을 차리고보니 그 길모퉁이에 예과생이 한명 우두커니 서있었어요. 눈이 마주치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무것도 모른채 그대로 만세, 만세를 외치며 아마 경성역까지 갔을 겁니다.(웃음)

그런데 그녀석이 잠깐 일로 오라는 시늉을 하는 겁니다. '뭐땀시'라고 생각하며 갔죠. 녀석이 엄청 심각한 얼굴로 '여기는 네가 있을 자리가 아냐'라고 말하지 뭡니까. 그건 정말 가슴이 철렁했죠. '여기는 네가 있을 자리가 아냐'라는 말을 들은 순간 깨달았습니다.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지만, 그게 저 자신이 조선에서 태어난 사실을 다시한면 되짚어보는, 돌이켜 보는, 중요한 계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억측이지만, 아마도,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이 묻고 싶었던 '가해책임'이란 전쟁하의 폭력이나 범죄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실 국경이라는 이야기는 침략자에 의한 가해가 결코 몸에만 새겨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태어난 나라나 이름을 빼앗기는 것. 자신의 역사를 빼앗기는 것. 그것은 폭력이나 침략의 당사자들이 귀적에 오른뒤에도 영원히 치유할 수 없는 가해일 것이다.

하지만 국경은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 손으로 영화화되는 것이 실현되지 못했다. 타카하타 감독은 국공노신문 인터뷰를 통해 '천안문 사건의 영향으로 기획이 엎어졌다'고 짧게 말했지만, 조사를 해보니 시카타 신 씨가 그 내막을 잡지 『아이들과 독서』 1989년 12월호에 밝혀놓았던 걸 찾을 수 있었다.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을 애니메이션 영화계 인물중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거론한 시카타 신 씨는 작품 제공을 흔쾌히 수락하고 완성을 기대했다. 타카하타 감독도 전력을 다해 만들고 싶다고 의욕이 가득했다고 한다. 하지만 국경 3부가 완결된 1989년에 천안문사건이 일어나고 배급사는 '그 사건 때문에 일본인의 중국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져서 영화를 흥행시킬 자신이 없어졌다'는 이유로 제작 취소를 타진했다고 한다. 시카타 씨는 그 당시의 충격을 이렇게 표현했다.

참으로 안타까웠던 점은 그같은 시장조사를 통해 당시의 평균적인 일본인의 반응을 상상해버렸기 때문입니다. 

'인민해방군도 저렇게 지독한 짓을 하잖아. 우리 일본이 저지른 일도, 이걸로 쎔쎔이지. 이제 면죄인거야. 앞으로 침략자의 죄니 역사니 그런 귀찮은 것들을 생각하는건 그만두자. 좀 더 가볍고 편하게 살자'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아베 정권 아래 전쟁 당시 일본의 가해사실을 말소,왜소화하고자 드는 역사수정주의가 발호하고 있다. 아베 수상은 전후 70년 담화에서 '그 전쟁에 아무 연관도 없는 우리들의 아이, 자손, 그리고 그 다음 세대의 아이들한테 사죄를 거듭하게 할 숙명을 짊어지게 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밝혔다.

이런 시대이기에, 역시, 영화판 『국경』은 환상의 작품이 되어서는 안 되었다. 필시 타카하타 감독도 그렇게 생각하며 영면에 들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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