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 글로리아나 <쿠로모리미네 여학원까지 가는 여정> 1-1 ㄴ걸판


고요한 학원함의 숲속에 베드포드 트윈 식스 엔진의 중저음이 울려퍼진다. 직렬 6기통 엔진을 두개 짜맞춰 수평대향 엔진으로 만든 영국 특유의 별물인데, 여기서 뿜어져 나오는 대출력은 진짜배기였다.

그 뒤를 따르는 것은 빨갛게 물들인 이층버스로 유명한 런던 버스, 거기에 탑재된 AEC제 직렬 6기통 엔진에서 울리는, 베드포드와 견주면 경쾌한 소리. 무엇보다 무한궤도가 지면을 두들기는 소리나 금속이 비벼지는 소리 쪽이 엔진음보다 훨씬 크긴 했으나.

영국이 자랑하는 보병전차들이 오늘도 우아하게, 그리고 화려하게 학원함의 숲을 질주한다. 마치 관열식(觀閱式)을 하는 함대처럼 대열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탑승원의 생명줄인 홍차를 흘리지 않도록, 보병전차에서 쥐어짤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달리는 게 영국식.

아무리 급하더라도, 설령 포탄세례가 쏟아지는 한복판이더라도, 공포에 굴복해 앞다투어 돌격하는 어느 학교마냥 꼴사나운 짓을 하는 학생은 단 한명도 없다.

세인트 글로리아나 여학원.

영국의 제휴고교를 통해 전승받은, 오랜 전통과 격식이 있는 전차도 명문교 중 하나. 국내 유수의 아가씨 학교로 유명하며, 과거에는 황족이나 외국의 귀족도 수학했을 정도이다. 

안타깝게도 전국대회에서의 우승은, 우승 단골인 쿠로모리미네 여학원에 저지된 적이 많아 아직도 없다. 그럼에도 결승까지 진출한 적도 있으며, 쿠로모리미네, 프라우다 고교에 이어 선더스와 대학부속고교와 나란히 국내 고교 전차도 사강의 한축으로 꼽힌다.

학원측도 예의 바르고, 우아하며 기품있는 자녀를 육성하기 위해서, 소녀의 소양이기도 한 전차도에 힘을 쏟고 있기 때문에 꼭 우승이 목표인 것은 아니다. 어떻게 싸우느냐는 점이 중요하다,는 방침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판사판으로 우승하기보다는, 아름다운 싸움을 중시하라는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애시당초 '전쟁과 연애에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역사는 승자가 기록한다.'는 영국식 교육인터라, 진심은 외부에서는 보이지 않는 법이지만.


세인트 글로리아나 여학원의 거대한 학원함 함수부에는 광대한 숲이 있으며, 그 숲의 일등지에 영국 명문 호텔을 베이스로 다소 콜로니얼 양식(colonial style)이 가미된 소쇄한 양풍건축이 있다.

전차들이 향하는 곳은 그 건물.

차종도 속도도 다른 전차임에도 마치 오케스트라처럼 조화롭고 완벽한 움직임으로 종일렬의 선두에 있는 처칠의 좌우로 마틸다2가 늘어섰고, 아름다운 횡일렬 전열로 시프트한다. 진열을 유지한 채로 건물 앞에 이동하여, 일제히 정차하는 전차.

무한궤도가 지면을 두드리는 소리나 금속이 삐걱이는 소리가 잦아들고 아이들링 상태의 엔진음만이 숲속에 울렸다.

중앙의 처칠 보병전차 차장용 해치가 열리고, 안에서 연한 금발을 목덜미 언저리에서 묶은 귀족 같은 소녀가 고개를 내민다.

'엔진 정지!'

소녀의 호령과 함께 일제히 정지되는 각차의 엔진.

한대만 다소 늦었는데, 그 가느다란 눈썹을 우아하게 찌푸리며 걱정스럽다는 어조로 손에 쥔 마이크에 말을 건다.

'닐기리 양, 괜찮아요?'

엔진 정지가 늦은 마틸다2의 해치가 열리고, 황급히 얌전해 보이는 소녀가 얼굴을 내민다.

'ㅇ, 옛, 죄송합니다, 다질링 님!'

그 모습을 보며 방긋 미소짓는 다질링.

'괜찮단다. 다음에는 타이밍을 맞출 수 있게 엔진 정지까지 걸리는 시간을 확실하게 기억해두렴.'

'넷!'

다질링은 그 대답을 듣고 더 선명하게 미소를 짓고는, 총원 해산을 명령했다. 각 차량은 재차 엔진에 시동을 걸고, 정비용 차고로 향하여, 전속 정비반 학생들에게 차량을 맡겼다.

그대로 자신의 차량의 버릇이나 문제점을 정비반에게 말하는 사람이나, 샤워룸으로 향하는 사람, 그 자리에서 음료를 마시는 사람까지 각자 생각대로 자유행동으로 이행한다.

다질링은 땀 한방울 얼굴에 흘리지 않은 채로, 처칠에서 내려 담당정비사에게 간단한 차량 상태를 알리고, 그 어깨를 한번 두드리고 차량을 맡겼다. 이에 기쁜 기색으로 답하는 담당자.

홍차의 화원.

방금전 전차가 정지한 앞에 있었던, 건물의 통칭이다. 본래는 빅토리안 호텔이라는 이름이었는데, 언젠가부터 그 이름은 잊혀지고, 학원 내의 안내도조차 통칭이 기재되어 버렸다. 그것은 이곳이 세인트 글로리아나 전차도의 중심이자, 여기에 모이는 학생들이 홍차의 이름을 애칭으로 삼기 때문이다. 

호화롭고 빈티지한 세간물품으로 가득한 방. 현 전차도 대장인 다질링과 간부 아삼, 오렌지페코가 하연 천을 덮은 테이블 앞에 놓인 의자에 우아하게 앉아있다. 

가벼운 노크음과 함께 앞서 닐기리라고 불렸던 소녀가 카트에 실은 티세트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

그 티스탠드의 샌드위치를 보자마자, 입을 여는 다질링.

'알고 있니? 애프터눈 티의 샌드위치는 하얀 식빵의 귀퉁이를 자르고, 거기에 오이를 끼워넣는 법이란다.'

그 말을 듣고 창백해진 닐기리.

'죄, 죄송합니다. 다시 만들어 오겠습니다.'

'괜찮아. 하지만, 기억해두는 편이 좋겠구나.'

안심시키듯, 닐기리가 들고 있는 샌드위치나 스콘이 담긴 티스탠드를 받아들고, 테이블 정가운데 놓는 오렌지페코.

'다질링, 신입생을 놀리지 말아요.'

'어머, 아삼 놀리는 게 아니야.'

'그럼 뭐죠?'

'교양은 사람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것. 실수했을 때 곧바로 지적해주면, 확실히 기억할 수 있는 법이잖아?'

'아직 익숙하지 않으니까...'

'어, 으, 그게'

동경하는 선배들 사이에 끼인채, 곤혹스러워 하는 닐기리.

그 때 구조선처럼 울려는 전화벨. 서둘러 전화를 받고 다질링에게 넘기는 닐기리.

'다질링 님, 오아라이 여자학원 학생회장 카도타니 님의 전화입니다.'

'어머, 무슨 용건일까?'

전화를 건네받고 무슨 말인가를 주고받는 다질링. 그 사이에 오렌지페코의 눈짓으로 안심한 표정의 닐기리가 방을 나섰다.

고개를 살짝 기웃거리는 아삼.

'오아라이 여학원? 그런 학교가 있었던가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지금 조사해볼게요.'

아삼의 의문에 손에 든 파일을 여는 오렌지페코. 조사하는 사이에 통화를 마친 다질링이 두사람에게 말했다.

'오아라이 여학원은 말이지, 과거에는 상당히 유명했어. 독립교 중에서는 그런대로 강하고, 다채로운 전차를 운용하는 점으로.'

'독립교라는 말은...'

'제휴학교가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크게 놀라는 두사람.

대다수의 학원함은 각 나라에 제휴학교가 있으며, 거기서 다양한 지원을 받는다. 이는 인재나 자금 측면만이 아니라, 전차나 전차용 소모품 입수나 정비에 이르기까지 지원을 받는 수준이었다. 따라서 각 학교는 제휴학교의 색이 강하게 드러나며, 사용하는 전차도 그 나라에서 입수하기 쉬운 물건이 대부분이었다.

그야 일본에도 전차 딜러가 많이 있으며, 수입차량이나 각종부품의 조달도 가능하다. 또 큰 도시라면, 여기저기에 중고전차 판매점이나 전차부품을 취급하는 가게도 있다. 특히 전차 구락부는 유명하고, 대부분의 부품은 다소 시간과 돈이 들더라도, 어디선가 구해다준다. 때때로 가게 입구에서 파낸 파츠가 파격가로 판매되기도 한다. 오픈톱 차량의 특수개조 킷 같은 것도 이 계통 가게에서 입수 가능하다.

하지만 미국이나 일본의 차량은 둘째치고 유럽 차량이나 부품은 본국에서 사는 것과 비교하면 비싸고 수송비도 무시할 수 없다. 또 시합에서 부품이 소모되었을 때처럼 필요한 물건을 급하게 발주하더라도, 구하는데 몇 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간단한 부품이라면 자작가능한 우수한 정비반을 보유하지 않은 이상에야, 독립 학교는 소수의 차량을 운용하는 게 고작. 가령 운용은 가능하더라도, 콩전차가 한계였다. 

그런 탓에 독립 학교가 전국대회에 출장은 할 수 있어도, 남에게 부끄럽지 않은 성능을 지닌 차량을 필요한 숫자만큼 운용하기란 어렵다. 결과적으로 차량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면 전국대회에 참가할 수 없다는 게 암묵의 룰로 정착했다.

그런 학교가 무슨 목적으로 연락을 한 건지, 아삼과 오렌지페코는 의문스럽게 여겼다. 그 의문에 미소를 지은채로 답하는 다질링.

'그래, 그래서 언젠가부터 전차도도 하지 않게 되었다는 모양인데, 이번에 부활한 모양이야.'

'그런 급조팀이 뭘 할 수 있을까요?'

'신입생들한테 경험을 쌓게 할까요?'

오렌지페코의 의문을 뒤로하고 아삼이 파일을 넘기며 가볍게 웃었다. 살짝 고개를 옆으로 흔드는 다질링.

'아니, 그쪽의 희망은 5대5. 우리도 포함해 베스트 멤버로 상대해주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멤버를 선정해두겠습니다.'

'부탁해.'

신속히 멤버 후보 파일을 골라내는 오렌지페코. 멤버를 슬쩍 보곤 훈련계획을 제안하는 아삼.

'그럼 저는 모의전 당일까지 5대로 가능한 대열을 착실하게 수행하는 연습을 하도록 하지요.'

'그게 좋겠군요. 잘 부탁드려요.'

'대책은?'

'어떤 상대라도 전력을 다한다, 그게 바로 예의잖니?'

우아한 미소를 머금으며 티컵을 입가로 가져가는 다질링. 물흐르듯 정해진 방침에 세사람은 미소를 교환했다.


후임이 박자 못맞췄다고 바로 면박주고, 샌드위치 레시피가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쫑코 먹이는 매우 안정적인 중세잽랜드 글로리아나 맛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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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존다리안 2016/11/28 22:36 # 답글

    브리티시 그레네이디어가 울려퍼질 것 같은 분위기군요.
    근데 순항전차대는 별도로 훈련하나 봅니다.
  • NRPU 2016/11/28 23:16 # 답글

    역사와 전통의 갈굼
  • 미르미돈 2016/11/29 03:24 # 답글

    가만히 있던 치하탄 의문의 1패.
  • 무지개빛 미카 2016/12/01 12:00 # 답글

    "그야 일본에도 전차 딜러가 많이 있으며, 수입차량이나 각종부품의 조달도 가능하다. 또 큰 도시라면, 여기저기에 중고전차 판매점이나 전차부품을 취급하는 가게도 있다. 특히 전차 구락부는 유명하고, 대부분의 부품은 다소 시간과 돈이 들더라도, 어디선가 구해다준다. 때때로 가게 입구에서 파낸 파츠가 파격가로 판매되기도 한다. 오픈톱 차량의 특수개조 킷 같은 것도 이 계통 가게에서 입수 가능하다.

    하지만 미국이나 일본의 차량은 둘째치고 유럽 차량이나 부품은 본국에서 사는 것과 비교하면 비싸고 수송비도 무시할 수 없다. 또 시합에서 부품이 소모되었을 때처럼 필요한 물건을 급하게 발주하더라도, 구하는데 몇 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간단한 부품이라면 자작가능한 우수한 정비반을 보유하지 않은 이상에야, 독립 학교는 소수의 차량을 운용하는 게 고작. 가령 운용은 가능하더라도, 콩전차가 한계였다.

    그런 탓에 독립 학교가 전국대회에 출장은 할 수 있어도, 남에게 부끄럽지 않은 성능을 지닌 차량을 필요한 숫자만큼 운용하기란 어렵다. 결과적으로 차량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면 전국대회에 참가할 수 없다는 게 암묵의 룰로 정착했다."

    ...결국 여기도 자본주의 사회, 빈익빈 부익부 라는 거냐....OTL...

    PS: 예전에 걸판이 한창 철일 때 적은 덧글이지만 생각이 나서 적습니다. 오아라이 고교는 있는 전차들 다 팔고 단일 기종으로 통일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단일 기종으로 통일되면 탄약,부품도 더 싸게 많이 발주할 수 있고 고장나도 동종차량 것 빼 쓰고, 전차운용전술도 훨씬 간편해지고.... 4호전차 H/J형으로 다 통일해 버리는게 오아라이의 밝은 미래를 보장할 껍니다.
  • Admiral 2016/12/01 02:30 # 삭제 답글

    결과적으로 간단한 부품이라면 자작가능한 우수한 정비반을 보유하지 않은 이상에야, 독립 학교는 소수의 차량을 운용하는 게 고작. 가령 운용은 가능하더라도, 콩전차가 한계였다.

    그러고보니 오오아라이의 정비반 넷 중 셋이 고3이었지... (홍차)
    극장판으로 어떻게든 폐교를 막았으니 그 셋이 졸업하기 전에 정비반 후임 양성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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