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작품을 완벽히 통제할 것이라는 오해 감상


무언가를 감상할 때 항상 유념해야 할 사실이 있다. 감상자가 의미를 부여하거나 감동을 받게 된 특정한 지점이 반드시 작가의 의도대로만 만들어졌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는 점이다. 완벽하게 작가의 통제 아래서 작업을 한 결과물일거라는 믿음과는 다르게 그저 우연의 산물에 불과할 때도 얼마든지 있기 마련이다.

종종 작가의 의도 찾기로 혼동하는 작품 분석은 작가의 생각을 참고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작가가 미처 자각하지 못한 것을 발견하고 언어로 체계화시켜 다수의 설득력을 얻게 되는 상호작용도 거친 끝에 비로소 정설로 자리잡는 것이라 보는 게 옳다. 이러한 비평 작업까지 합쳐서 작품이 완성된다고 할 수 있겠다.

이를테면 퍼스트 건담도 그렇다. 악질 토미노빠들은 오직 퍼스트 건담만이 우리 토미노 감독니뮤ㅠㅠ의 작가주의가 지켜진 마스터피스라고 선을 긋지만, 애니메이션=완구판촉용 광고 영상이었던 시절인데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린가. 적어도 TV판은 외압에서 자유롭지 못했다고 보는게 맞다. 장난감 장사의 바리에이션을 늘리기 위해 얼토당토 않은 신메카를 계속 등장시켰지만, 바로 그 판매 실적이 신통치 못해서 끝내 조기종영까지 당한 작품 아니던가.

건담을 만든 사람들과, 건담 팬덤의 시각차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쿠쿠르스 도안의 섬'편이다. 퍼스트 건담을 후대의 건담과 다르게 토미노 작가성이 완벽히 지켜진 걸작으로 추종하고 싶은 사람은 여기에도 숭고한 의도가 있었을 것이라고 권위를 부여한다.(물론 그에 못지 않게 이런건 리얼하지 않다며 부정하는 목소리도 있기야 하지만.)

'지온군을 탈영한 쿠쿠르스 도안을 통해 전쟁의 다양성을 조명했고, 평화를 갈구한 도안이 커뮤니티에 속하지 못하고 혼자 사는 모습은 ptsd를 다룬 선진적인 시각이 어쩌고 저쩌고..' 뭐 이런 논지다. 이 분석대로 이데올로기 싸움에 지쳐 병사이길 포기하는 도안의 모습이 작품의 컨텍스트를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로써 제작진이 처음부터 의도한 것이라면 이후의 푸대접은 설명할 길이 없다. 

극장판 3부작에서 삭제, 북미판 광매체에서 삭제, 건담 오리진에서 삭제...이같은 일관된 흑역사 취급은 쿠쿠르스 도안편에도 토미노 요시유키의 작가성이 반영되어 있다고 해석하는 쪽과 건담에는 어울리지 않는 좆망 에피로 해석하는 쪽 중 후자쪽에 손을 들어줬다고 보는게 옳다. 

그렇다고 쿠쿠르스 도안에서 의의를 찾으려는 시도가 전부 잘못된 것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비평은 얼마나 논리 체계를 잘 구성했느냐가 중요하지, '작가한테 물어보니까 아니라는디요?'라는 반론은 걔가 내 내신성적/학점/승진에 대한 결정권이라도 갖고있는 게 아닌 이상에야 강제력이 없다. 무엇보다 퍼스트 건담의 가치가 전쟁의 참상을 통해 피폐해지는 인간성을 보여주는 것에 있다면, 쿠쿠르스 도안을 그렇게 끼워맞추려는 방향설정이 잘못된 것도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전쟁의 비극을 담아낸 진수는 여기에 있건만 자기가 뭐 만든지도 모르는 머머리 수듄 ㅉㅉ'이라 권위와 신화를 해체하는 어그레시브한 자세...그 자세가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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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MEPI 2016/04/28 15:38 # 답글

    마치 수능 국어문제를 살아있는 작가분들한테 줬더니 되려 못풀었던 사례랑 똑같은 증거~!!!

    이리야는 흔들어야 제맛이죠~!!(?)
  • 포스21 2016/04/28 17:22 #

    정확히는 자기의 시(?)에 관한 수능문제를 그 작가가 풀었는데 틀렸다! 라는 내용이었다고 하더군요. ^^
  • 의지있는 크릴새우 2016/04/28 18:23 #

    최승호 시인의 일화를 말씀하시는거 같은데

    소나기의 보라색을 죽음의 상징이라고 가르치지만 정작 저자인 황순원은 그냥 그 색을 좋아해서 썼다는 일화나
    반딧불의 묘 작가 딸이 반딧불의 묘 저자의 심정을 조사하라는 숙제 때문에 아빠한테 물어 마감이 빡셌다고 들은대로 제출했다 빵점 받았다는 일화나
    히치콕이 히치콕 조사하라는 손녀 레포트 도와줬는데 C를 받았다는 일화처럼

    나라를 불문하고 비슷한 에피소드는 최소 한가지씩 있는거 같습니다.
  • 계란소년 2016/04/28 15:44 # 답글

    쿠쿨스 도안의 흔적을 지워 역사왜곡 하려는 대머리 영감 규탄한다.
  • 함월 2016/04/28 16:17 # 답글

    작가가 무엇을 의도했는지도 중요하지만, 독자(자신)가 무엇으로 받아들였는지도 중요하죠.
    물론 양쪽의 균형을 잡는게 불가능에 가까운게 포인트...ㅡ_ㅡ

    듣도보도 못한 관계자 인터뷰 자료까지 싹싹 긁어와서 여기랑 상충하니 네 해석은 무조건 틀렸다고 우기는 사람이나...
    도대체 같은 애니를 보고 하는 이야긴지 모를 기상천외한 해석을 내 놓는 사람이나...
  • 무지개빛 미카 2016/04/28 16:44 # 답글

    양 가죽을 머리에 쓰고 양으로 위장하려는 카츄샤 닮은 사람이군요.캬츄샤 키고는 키가 좀 커 보이네요.
  • 하얀삼치 2016/04/28 17:13 # 답글

    흔들어라 이리야 ㅋㅋㅋ
  • 포스21 2016/04/28 17:23 # 답글

    그러고 보니 쿠쿠르스 도안 탑승 자쿠... 같은 건 안나오나요? 누구 누구 전용기 등은 거의 빠짐없이 프라화 되던데...심지어는 작중에 등장하지 않은 마쿠베의 그프나 , 도즐 자쿠 같은 것도 나왔거늘...
  • 이지리트 2016/04/28 17:31 # 답글

    결론: 이리야가 체고시다(?!)
  • 모리유 2016/04/28 17:52 # 답글

    하지만 흔들어라 이리야는 완벽하게 의도된것입니다!
  • Admiral 2016/04/28 20:13 # 삭제 답글

    소위 말한다면 어른의 사정.
    ... 생각해보니 이 말의 원류도 거의 토미노옹 아닌가!
  • WeissBlut 2016/04/28 22:50 # 답글

    해석적인 면에서도 그렇지만 사실 상업적인 부분도 포함하면 작가가 그 작품성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작품이란 건 사실상 철인 수령님이 지배하시는 지상락원에밖에 없다고 봐야
  • S-3 2016/04/29 07:52 # 삭제 답글

    카이조가 선정한 인류문화유산인데...
  • jei 2016/04/29 16:08 # 삭제 답글

    그러니까 에바처럼 알아서 생각하셈 하고 던져놓으면 알아서 신자들이 생깁니다?
  • 악의곰푸우 2017/01/21 22:15 # 삭제 답글

    대머리 혐오를 멈춰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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