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만나게 된 것은 1983년. 아니메주 대담에서 처음으로 만났다고 합니다. 오시이 감독은 그 당시 받은 인상을 1995년에 발매된 <키네마 구보 임시 증간 7월 16일호>에서 밝혔습니다.

오시이:
내가 미야 씨를 안건 <미래소년 코난>부터입니다. 타츠노코 프로에 연출로 들어간 무렵 방송을 시작했는데 상당한 충격을 받았어요. 언젠가는 만나게 되려니 싶기는 했어도 생각보다 빨랐기 때문에 아주 긴장했습니다.

첫인상은 아무튼 가벼운 사람이다. 다만 이야기가 가경에 들어서면 용서가 없는 인간이라, 막말을 거침없이 했습니다. (웃음) 그래서 마지막에는 이 망할 자식!이라는 인상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좌우지간 엄청나게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라, 저랑 비슷하고 느낀 점은 아주 공격적이고 많이 말한다는 점. 타카하타 이사오 씨도 그렇지만, 어쨌건 상대방보다 많이 말하는 쪽이 이겼다는 식. 말할 때는 잡담은 없어요, 하나하나가 설득하려고 드는 겁니다.

(중략)

같이 작업을 하자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천사의 알> 이후였던가? 지브리의 기획으로 <앵커>라는 작품. 제 기억이 맞다면 미야 씨가 프로듀서를 맡고 제가 감독, 타카하타 씨도 프로듀스를 하는 거였죠. 셋이서 틀어박혀 일단 플롯까지는 만들었지만, 하룻밤 내내 대판 싸우게 됐고 결렬됐습니다.

도쿄판 다빈치 코드 <앵커>

스튜디오 지브리가 오시이 마모루 감독을 기용해 제작할 생각이었던 <앵커>는 어떤 영화였을까요? 이 기획의 상세한 내용은 라디오 <오시이 마모루의 세계 시네마 시네마>에서 밝혔습니다. 대담 상대는 당시 오시이 마모루 감독작 <스카이 크롤러>의 프로듀서를 맡은 이시이 토모히코입니다. 이시이 씨는 스튜디어 지브리 사원 출신으로 현재는 IG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이시이:
스즈키 토시오라는 사람이 자기는 미야 씨나 타카하타 씨와는 어느쪽인가 하면 공동 사업자고, 같은 스튜디오를 경영하는 직장 동료다라고 하셨죠. 하지만 자기 친구라고 할만한 사람은 실은 오시이 씨밖에 없다고 제가 스즈키 씨 밑에 있게 됐을 적부터 계속 말씀하셨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조금 다른 관계라고 느끼기는 했어요.

그래서 어느날 실은 영화에 대해서, 이번에 뭘 만들어야 하는지를 논하는 동료 관계로 이만큼이나 서로 얘기를 주고 받은 남자는 없었다며 줄곧 오시이 씨와 영화를 만들고 싶다,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여기까지 왔다고 말씀하셨죠.

押井:
몇번인가 있기는 했죠. 그런 기획이 생겼다가 무산되는 식의. 내가 기억하는건 두번? 처음에는 <앵커>라는 기획. 원래 미야 씨가 꺼낸 기획이었어. 기획이라는 측면에서는 꽤나 흥미로웠어요.

어차피 만들게 될 일도 없을테니 조금 얘기하자면, 뭔지 잘 모를 공주님 같은 신비한 소녀가 어떤 자에게 쫓기고 있는데 이 소녀를 도망치게 만들어야만 한다. 안전한 장소까지 바래다준다는 이야기. 우연히 그런 소녀와 만난 소년이 다양한 모험을 거칠 수밖에 없어서 종횡무진의 대활약 끝에 그 소녀를 어떤 장소에 보내준다는 내용. 

거기서부터 다른 사람이 그 소녀를 이어서 지켜주고, 다음 장소까지 보내주고. 릴레이 같은 이야기였죠. 도쿄를 무대로 해서요. 현재의 도쿄라는 몹시 제한된 무대 안에서 어떻게 모험을 연출적으로 만들어 낼 것인지. 미야 씨다운 기획이긴 했어.

나는 당시 도쿄에 흥미가 있던 참이라서 <패트레이버> 같은 것도 준비 중이었던가 만들었던가, 지금은 기억이 안 나네. 그래서 도시론 같은거나, 도쿄에 아직 관심이 있는 시점이라 다양한 아이디어가 순식간에 마구 떠오르더라고. 맨홀 뚜껑은 다양한 패턴이 있는데 그게 사실은 암호는 아닐까 같은 것들. 

그리고 목욕탕은 아주 재밌는 세계니까 목욕탕을 어떻게 써먹어볼지나, 지하철을 다룬다거나. 도쿄라면 도쿄라는 도시적인 환경 안에서 얼마나 액션을 포함시키느냐....액션만이 아니라. 미야 씨는 꼭 달리게 하고 싶다고. 그 사람은 블럭 담장을 달리거나 지붕 위를 계속해서 뛴다거나 그런 걸 생각한 모양이지만.

나는 일종의 그같은 수수께끼랄까? 암호로 감싸여진 도시로 재구축하고 싶었어. 소바집의 포렴은 어떤 계열이고 왜 도트 그림(マス絵)이 많은지 그런데 관심이 있어서. 그같은 의문을 차례차례 들춰내는 내용. 다빈치 코드처럼.

그걸 액션하고 잘 조합하면 재밌는 영화가 되겠지 싶어 올라탔어요. 실제로 야츠가타케에 있는 미야 씨 별장에서 첫번째 브레인 스토밍을 했죠. 그 때 있었던 사람이 나랑, 미야 씨랑, 타카하타 씨랑, 스즈키 토시오. 아마 고로 군도 있었던 거 같아.

아무튼 하루종일 브레인 스토밍을 했어. 나는 참고용으로 다양한 비디오를 들고 갔거든. 그 때 들고 갔던 게 카라쥬로가 각본을 쓴 <아스코의 신발> 미아인 소녀를 중학생 소년이 데리고 도망다니는 이야기거든. 이건 참고가 되겠지 싶어 챙겨 갔어.

이거 지금도 기억하는데 그걸 보고 아마 고로 군이었을텐데, 엄청나게 감동한 모양이더라고. 그래서 미야 씨한테 "이거 다음편은 언제 나와요?"라고 그러고. 실은 단편이었지만. 미야 씨는 충격을 받은 것 같았어. 미야 씨는 마음에 들지 않았던거 같아. 카라쥬로니까 말이지.

타카하타 씨는 아주 감탄했어. 이 <아스코의 신발>은 NHK가 만든 드라만데 이게 대체 어디가 좋은건지에 대한 얘기가 되어버렸어. 나랑 타카하타 씨가 다투게 됐지. 마구 소리치게 된거야.

石井:
뭐 늘 그렇지만요.

押井:
응. 그 사람도 자기 지론을 절대 굽히지 않는 사람이라 마지막에는 역시나 공갈을 치게 되거든. "닥쳐!"라고 말하게 되는거지. "왜 내가 닥쳐야 하는데!"라고 받아치고. 그러는 차에 마지막에 미야 씨가 결국 이 소녀를 전달하는 소년은 어떤 이미지일까라는 말을 꺼냈고. 나는 예비교생(予備校生. 대학진학을 위해 입시 학원을 다니는 사람을 총칭. 현역 고등학생~재수생.)이 좋다고 말했어. 한사람이 아니라 사인조 그룹으로 하자고. 넷이 협력해서 다음으로 다음으로 보내주는 내용. 

그러는 편이 콘셉트가 명쾌하게 나오니까. 릴레이를 한다는 콘셉트 말이지. 마지막에 소녀를 무사히 보냈을 적에 자판기에서 콜라를...그 때는 이미 돈이 없어서 하나밖에 못 뽑는다는 결말. 그걸 다같이 돌려 마시는거지, 배턴처럼. 마지막에 텅빈 캔을 내던지며 끝나는 식으로 만들고 싶었어. 앵커니까.

石井:
배턴이군요.

押井:
인간은 인생의 어떤 시기에 앵커의 역할을 수행하는 순간이 있을 것이라는 테마. 꽤 괜찮은 생각이다 싶었어. 나는 집단극에 흥미가 있으니까. 미야 씨는 "넷은 안 돼!"라고 하는거야. "혼자여야 해!"라나. "왜? 어째서냐고".

"소녀도 코흘리개 꼬맹이가 낫다"고 했어. 왜 그런 꼬맹이를 써야 하냐고 물으니까 "그런 소녀인 편이 더 좋다구"라고 답했지. 건네받은 배턴이 미소녀가 아니라 코흘리개 꼬맹이였다. <미궁물건/迷宮物件>처럼 꼬맹이고 헬멧도 뒤집어 쓰고 있고 말이지. 미야 씨는 "싫어 허튼 소리마"라고. "미소녀에 소년이어야만 해"라고.

石井:
미야자키 작품을 고수한다...

押井:
맞아 맞아 맞아. 러브스토리라고 하더라고. "뭐요? 그런 말 못들었는데요?"싶고. 왜 그래야 되냐고요. 이건 배턴이잖아요? 동료를 모아서 다음으로 다음으로 건네주는 이야기 아니냐고 따지니까 "그렇지 않아. 이 두사람은 서로 애정을 갖게 해야돼!"라는거야.

"그래서야 언제나의 당신 영화랑 똑같잖아!"라고 받아쳤지. "똑같은게 뭐가 문제냐!"라고 역성을 내더라고. 셋이서 전혀 말이 안통해서 결국 고함소리 경쟁이 되어 글렀다 싶었어.

石井:
그 때 스즈키 씨는 뭘 하셨나요?

押井:

가만히 듣고 있었어. 가끔 말은 했지만. 이건 텄다는 표정이었어 명백하게. 그게 처음이었을까? 그래서 토시 쨩한테 "할 수 있을리가 없다, 포기하자"고 했지. 미야 씨가 참견을 안 한다는건 거짓말이야. 이미 참견을 하고 있잖아. 지브리에서 만드는건 문제밖이라니까.

큰 싸움 끝에 기획은 무산되어 <앵커>는 환상의 작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오시이 마모루 감독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무척 존경하고 있으며, 자신이 그린 사컷 만화에도 등장시켰습니다. 

이 만화는 아니메쥬 1987년 10월호 부록으로 게재. 아니메쥬 특별편집 영화 붉은 돼지 가이드북에도 재록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