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마츠 켄 인터뷰 만화




선생님은 어릴적에는 어떤 아이였나요?

아웃도어파였죠. 부활동은 축구부였고 발도 빨라서 스포츠가 특기였습니다. 읽은 만화도 겨우 <도라에몽> 정도. 부모는 공무원이었는데, 저도 장래에는 번듯한 신문기자나 과학자나 그런 직업을 상상했습니다. 만화가가 된다는 발상은 전혀 없었죠.

전기는 무엇이었나요?

중1 때, NHK에서 <마이 컴퓨터 입문>이라는 방송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걸 통해 프로그램을 익힌 다음 컴퓨터 잡지 I/O나 아스키 같은 것도 사버릇하게 됐고, 점점 음침한 컴퓨터 소년이 되었습니다. (웃음) 중2 때는 포켓 컴퓨터로 게임을 만들어 통판을 했어요. 타인이 제가 만든 게임을 하고 재밌다고 말해주는 게 좋았던 거죠. 그리고 또 한가지 계기로 그 무렵에 처음으로 원고료와 인세를 받았거든요. 잡지에 응모한 프로그램이 책에 다시 실리게 됐는데 프로그램의 소개문도 직접 썼습니다.

자기 작품이 세상에 배출되는 기쁨을 알게 된 원체험은 프로그래밍이었군요.

그렇죠. 고등학생이 된 무렵에는 PC-8801mk2를 손에 넣었고, 부활동도 컴퓨터부가 들어가 계속 게임에 대해서만 생각했습니다. 학교 공부도 안 하고 내내 프로그래밍 공부만 했어요. 스포츠도 때려치고요. 그렇게 고2 여름방학에 <팰러딘>이라는 게임을 만들어 보스텍사에 들고가서 전국발매를 했죠. 이게 두번째 인세 수입입니다. 참고로 이걸로 번 돈은 당시 오디오 매니아였기 때문에 전부 거기에 사용했습니다. 거봐요 음침하죠? (웃음)

그 모양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재수를 하게 됐지만, 대학에 들어가면 영화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시나리오를 쓰고 8mm 카메라를 공부하곤 했습니다. 중고 레코드를 사보기도 하고 게임도 하고. 공부는 하나도 안 했죠. 그렇게 삼수를 하게 됩니다. (웃음)

영화를 만들고 싶어진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로버트 저메키스를 좋아해서요. 저메키스는 애니메이션과 실사의 합성이나 CG 같은 당시의 최신기술을 잘 활용해서 히트작을 만들어내는 점이 좋았어요. 그래서 동경했죠. 스필버그도 좋아했지만, 이쪽은 잘 팔리는 영화를 싸고 단기간에 찍어내는 점이 좋아요. (웃음) 그래서 영화였습니다.

그렇다곤 하나 애니메이션도 만화도 소설도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결국은 츄오대 문학부에 입학해서 소설을 공부하면서도 애니메이션 서클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만화 연구회에서 만화를 그리며 영화 연구회에서 영화를 만드는 식으로 전부 하게 됐습니다. (웃음) 그러니 대학에서도 공부는 제로. 체육 수업만 받았어요. 여성과 사귀는 일도 전혀 없었고 창작 일직선이었죠. 다만 만화는 계속 그려온 사람들과 같은 기반이 없기 때문에 힘들겠구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만화가로 데뷔했죠. 어떤 계기가?

당시, 일본의 소설 따위는 그 누구도 읽지 않았어요. 일본영화도 마찬가지였고, 특히 학생영화는 8mm필름에서 비디오 촬영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있었는데 거기에 별로 흥미가 동하지 않았죠. 애니메이션은 돈 벌이도 안 되는데 다같이 만들어야 하니, 제 생각 대로의 결과물은 좀처럼 만들 수 없죠. 그래서 소거법으로 고른 게 만화였습니다. 대학 1학년 때부터 투고를 시작해 <매거진>에서 장려상을 받았고, 대학 3학년 때는 어시 생활을 할 자리를 알아봐주셔서 카지와라 타케시 선생님 밑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주간연재의 현장을 목격하고 "이정도라면 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던 거죠. (웃음)

프로를 보고 콧대가 꺾인 경험은 없으셨다? (웃음)

아무튼 당시에는 속도 하나는 빨랐거든요. 화력은 없었지만. 다만 그림 실력도 그 시기에 <미소녀전사 세일러문>이 시작됐는데 푹빠져서 에로 동인지를 그리게 된 이후로는 서서히 붙기 시작했죠. (웃음) 그래서 졸업논문과 동시에 집필한 작품으로 <매거진> 신인상을 탈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취직활동도 같이 했거든요. 매거진 편집부에 소속된 편집 프로덕션의 내정을 받았고, 한술 더 떠 동인작가 활동만 해도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신인상 수상후 반년 정도는 놀기만 했습니다. 

그랬더니 제 담당 편집자를 맡게 된 오오노 씨가 질타를 했죠. (웃음) 별 수 없이 컴퓨터와 미소녀가 내 특기 분야니까, 컴퓨터에서 미소녀가 튀어나오는 굉장히 안이한 발상의 네임을 만들었더니 느닷없이 주간 연재가 결정됐습니다. (웃음)

엄청난 얘기군요.

저도 이걸로 괜찮은가요?싶었다니까요. 하지만 당시에는 팍팍 밀어주었기 때문에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아이러브 서티>가 시작했는데요, 참으로 끔찍한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잠은 못자지, 앙케이트 순위도 나쁘지, 작화도 무너지지, 스태프도 잠을 못자니 화실 분위기는 삭막하지. 연재 20주 언저리에서 이제 글렀다는 분위기가 됐습니다. 

하지만 오오노 씨가 신인상의 톱으로 데뷔시켰는데 여기서 작별하고 싶지 않다며 버텨주셨고 그 덕에 <매거진 SPECIAL>이라는 별간잡지로 옮겨 새출발을 해보자는 얘기가 나왔어요. 그 순간이었죠. 마침내 진심을 다해서 만화가를 해야한다는 마음가짐이 생긴 것은.

<매거진 스페셜>로 이동한 이후로는 순조로웠나요?

처음에는 저도 소모된 상태였고, 편집부 안에서는 3개월 정도 연재해보고 인기가 없으면 포기할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월간지로 옮기니 여유 작업 기간을 한달 가질 수 있게 되었죠. 이덕에 하기와라 카즈시 씨나 아사미야 키아 씨 등의 제가 좋아하는 만화가들처럼 스크린톤을 다용하는 스타일로 만화를 그릴 수 있는 짬이 생기게 됐어요. 그래서 그림체는 오타쿠틱, 시아게는 애니메틱한 보기 드문 스타일을 구사할 수 있게 된거죠. 

심지어 살짝 야한 SF러브코미디 장르가 유행을 하기 시작한 점도 있어서 단번에 인기가 생겼습니다. 1화부터 계속 앙케이트에서 1위를 유지했고 그렇게 한동안 연재가 이어졌습니다.

전반부는 라이트한 전개지만 후반부는 드라마틱하게 변합니다.

그 무렵부터 만화를 그리는 작업을 아웃소싱 하는 것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배경이 특기인 사람이 배경을 그리고, 글씨가 특기인 사람이 글씨를 그리는 식으로요. 그것과 같은 발상으로 종반의 드라마틱한 전개는 편집자와 어시스턴트가 다같이 의견을 나누어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리고 <러브히나>로 <매거진>에 컴백하게 됩니다.

그랬죠. <아이러브 서티>는 잡지 앙케이트 2위 작품을 트리플 스코어로 차이를 내면서 압도적인 지지를 얻은 작품이라서 연재를 끝내는 걸 허락해주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언젠가 주간지에서 리벤지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나름대로 자신감이 붙은 타이밍에 주간지에 가겠다고 말을 꺼내 연재를 끝냈죠. 편집부도 그렇게 할거면 괜찮다고.

처음에 떠올린 아이디어는 씹덕후가 하숙집에서 미소녀와 만나는 <메존일각> 같은 이야기였어요. 하지만 당시 <아이러브 서티>의 코어팬도 생겨났고, 스튜디오의 멤버도 애니메이션나 게임의 요소를 흡수해서 그림은 비교적 최신 방향이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한번 초가 붙을 정도로 애니메이션틱한 연재를 해서 <매거진>을 휘저어주마!라는 의욕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어시스턴트를 전부 소집해 회의를 해서, 당시 컴퓨터 게임에서 유행하던 하렘형 러브 코미디를 해보자고 했죠. 2, 3년후는 또 모르겠지만 이건 아직 메이저 잡지에서는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다...라는 반응이. 당시의 <매거진>은 보수적인 잡지였습니다. 오직 오오노 씨만큼은 본인이 오타쿠라서 이해해주었지만 당시의 <매거진>하면 불량만화의 시대였기에 말이죠.

<카멜레온> <상남2인조> 등의 만화가 인기를 끈 시기였죠.

<특공의 타쿠>도 있고요. 유일하게 <BOYS BE...>에 판치라가 조금 있었지만 욕조에 들어가서 가슴이 살짝 보이는 내용이나 그런 건 없었죠. 그같은 오타쿠적 가치관을 <매거진>에 도입해서 화려하게 포문을 열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당시 <매거진>에서는 그 누구도 한적이 없는 CG로 컬러 페이지를 칠하기 위해서 Macintosh를 사고 포토샵도 도입하고 모든 컷에 스크린톤으로 음영을 지정하는 식으로 투자도 확실하게 했습니다.

너무나 신선했던 덕분인지 단행본이 미칠듯이 팔렸습니다. 발매일부터 매주 10만부씩 증쇄를 하는 페이스였죠. 3~4권 시점에서 애니화도 결정됐고, 드라마CD나 주제가CD도 연달아 오리콘 차트에 입성, 고명한 원형사가 맡아서 피규어도 냈고 이 당시가 제 최고 전성기입니다.(웃음)

그렇지는 않습니다 (웃음)

아뇨 그래요. 젊은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게끔 말하자면 지금의 이사야마 하지메 군 같은 상태입니다. 하지만 첫연재로 좌절을 경험하기도 했으니 우쭐해 하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성실하게 만화를 그리는 다른 만화가들을 상대로 이대로는 체면이 안 선다는 이유에서, 확실하게 책임을 완수하는 만화를 그려야 한다...는 생각을 그제서야 갖게 됐습니다.

<러브히나>는 연재를 하는 사이에 감정이입을 하게 된 건가요?

맞아요. 처음에는 템플릿으로 만든 캐릭터였는데 서서히 애착이 생기고 캐릭터를 애칭으로 부르기도 하고. 하지만 주인공이 동대에 합격한다는 목표를 달성한 시점에서 이 작품으로 하고 싶은 게 없어지고 말았어요. 그래도 여동생 캐릭터나 메이드복 같은 당시의 최첨단 오타쿠 소재를 일반인한테 소개하는 방식으로 어떻게든 연재를 이어나갔고, 또 판매량도 괜찮았지만 제가 지쳤습니다....

그래서 코단샤 만화상을 받은 것과 동시에 3개월 휴식을 취하면서 후반의 전개를 한꺼번에 구상해서 깔끔하게 끝을 냈습니다.

그리고 1년 정도 충전기간을 갖고서 <네기마!>를 시작했습니다. 이건 연재 스타트 시점부터 <러브히나> 이상의 경악을 가져다주었습니다. 히로인의 수도 무대도 스케일이 업되었고, 판타지나 SF의 요소가 도입됐고 배틀물로서의 매력도 있죠.

편집부는 <러브히나> 같은 작품을 만들어달라는 요구를 했습니다만 똑같은 걸 해봤자 안 통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러브코미디를 한다손 쳐도 여자의 숫자를 늘리자는 생각이 들었죠. 당시 모닝 무스메가 유행했는데 어시스턴트가 좋아하길래 그걸 본따서 잔뜩 히로인을 등장시켜보자, 기왕이면 30명 등장시켜보자...그런 식이었죠. (웃음)

러브히나에 대한 반성점으로 길게 연재할 수 있는 작품을 설계하고 싶었습니다. 주인공은 당시 해리포터 시리즈의 주인공 다니엘 레드클리프가 방일을 했을 적에, 공항에서 아가씨들이 꼬마를 상대로 성화인 모습을 보고 이거다! 싶었죠. 그리고 주인공이 어린애면 수많은 히로인과 키스를 하게 되는 일이 생겨도 "나, 어린애라 연애는 아직 잘 몰라"라고 어물쩍 넘길수가 있죠. (웃음) 미소녀 게임의 멀티루트 구조를 하나의 작품 안에서 재현할 수 있다! 싶었어요.

획기적이군요.

주인공이 소녀를 하나씩 차근차근 만나는 게 아니라, 느닷없이 1회에 30명의 히로인을 전부 등장시키자는 것은 오오노 씨 아이디어입니다. 여기서부터 미소녀 애니메이션 캐릭터 전원의 캐릭터송을 내는 흐름이 생겨났죠. 또 스타차일드에서 아카마츠 켄 관련 작품을 담당하던 유아사 씨는 갓 데뷔한 당시의 AKB48 관련 업무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인기투표 등 AKB48의 전개에 네기마!의 영향이 있었다고 해요. 그래서 지금도 AKB48의 CD를 집으로 보내주시곤 합니다.

다방면으로 커다란 영향을 끼쳤군요. 연재중인 잡지에서의 반응은?

당시의 <매거진> 독자 앙케이트는 재밌는 작품을 다섯 작품 드는 것과 그 중에서 특히 재밌는 걸 하나만 꼽는 설문 방식이었습니다. 특히 재밌는 작품 분야에서 2년 정도 계속 1위였습니다. 하지만 그건 잡지의 상황으로 보자면 부자연스러운 상태인데, 그 무렵 드디어 <스쿨럼블>의 코바야시 진 군이나 CLAMP처럼 저 말고도 오타쿠 가락의 작품을 그리는 사람들이 매거진에 생겨나기 시작했죠. 그같은 사람들의 작품은 굿즈도 애니메이션도 잘 나갑니다. 이벤트를 열면 오타쿠가 잔뜩 오죠. 그 때까지 완강한 경파였던 <매거진>에 엄청난 변화가 생긴거죠.

그 흐름은 현재도 마찬가집니다. 선생님은 매거진을 바꾼 남자인 셈이군요?

전범입니다. (웃음)

후반은 점점 배틀물의 측면이 강해졌습니다.

그 점도 그림과 관계가 있습니다. 러브코미디의 네임은 배틀보다 시간이 걸려서 작업시간을 고려하면 1화 완결 형식의 러브 코미디를 그릴 여유가 없었습니다. 러브 코미디는 10권이나 그리다보면 이야기의 바리에이션이 바닥납니다. 연재 중에 깨달은 사실인데, 20권을 넘기는 미소녀 러브 코미디는 얼마 없죠. <점프>에도 30권 이상의 작품은 대부분이 배틀물입니다.

그래서 오래 연재하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배틀물로 이행했습니다. 그래도 36권 언저리에서 지친 느낌이라 인기가 있는 동안 연재를 끝내고 싶다고 편집부에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결말은 조금 잰걸음이 되어버렸죠.

또 그 무렵 J코미를 시작했고, 도조례나 저작 인접권 등의 문제로 이런저런 자리에 나설 기회도 늘어나서 만화 외적인 활동에 관심이 생긴 점도 작용했습니다. 그래서 차기작도 긍정적인 생각은 할 수 없었습니다. 연재 중인 <UQ HOLDER!>는 미소녀물로는 <네기마!>를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에 아예 앙케이트도 의식하지 않고 톤도 최저한만 붙이면서, 평범하게 소년만화를 그려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작품입니다. 저 하고싶은대로 하고 있으니, 만화가 측면에서는 말기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연재를 거듭하면서 마음의 변화는 없으신가요?

저작 인접권에 대해서만 인터넷에서 발언해댄 것이 계기가 되어서 일본 만화가 협회의 이사가 된 이후로는 좀 변했습니다. 저는 딱히 만화를 잘 그리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만화로 억단위의 돈을 벌었으니 업계 전체에 보은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만화가의 권리를 지킨다"거나 "로비 활동을 해서 표현규제로부터 만화를 구한다"는 걸 해봤습니다. 그랬더니 만화를 그리는 것보다 즐겁더란 말이지요. (웃음) 직접 만화를 그리는 것보다 세상에 보탬이 되고 있다 싶었습니다.

매거진을 바꾸고 미디어믹스를 바꾸고 그리고 현재는 현실을 바꾸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 그렇기에 UQ HOLDER!는 어떤 의미로는 순수하게 아카마츠 켄의 취미로 가득한 세계가 펼쳐져 있다고 할 수 있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별로 재미가 없으면 원래 그런 놈이라고 여겨주세요.

하지만 소년만화다운 배틀물이 더 그리기 편하다는 말씀은 흥미롭군요. 
세간은 미소녀 러브코미디가 더 손쉬운 장르라고 인식하는 것 같은데요.

미소녀를 그리는 건 다 정성입니다. 데생이 무너져 귀엽지 않게 그리면 치명적이기 때문에 진심으로 그릴 수밖에 없습니다.

지당한 말씀이십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만화가 이외의 활동도 포함해 앞으로의 전망은요?

큰 목표는 '일본 만화를 세계에 전파하는 것'일까요? 자동번역 프로그램을 모색하고 있는 것도 그걸 위함입니다. 전세계를 씹덕으로 바꾸고 싶어요. 모두가 "전쟁을 하면 애니메이션 방송 시간에 속보 텔롭이 뜨니까 하지말자"는 식으로 생각하게 된다면 전쟁은 사라질 겁니다. (웃음) 바보같은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세계를 그 방향으로 향하게 만들고 싶어요.

덧글

  • WeissBlut 2015/10/30 21:30 # 답글

    솔직히 배틀물에 어울리는 작가는 아니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대단한 사람이긴 합니다.
  • 더스크 2015/10/30 21:47 # 답글

    파워 인플레만 잡을 수 있으면 uq holder 도 꽤 괜찮은 작품이 될거 같은데
    벌써부터 네기 따라잡으려고 하잖앙. 안될거야 아마
    뭐 주변 인물이 넘사벽이긴 하지만
  • 잠본이 2015/10/30 21:57 # 답글

    j코미 때부터 어째 작품활동보다 딴데 더 열의가 있는거 아닌가 했는데 그냥 천성이 천재+잡덕이었군요(...)
  • Ithilien 2015/10/30 22:02 # 답글

    마지막 문단은 실로 그럴싸함....
  • 휴이 2015/10/30 22:23 # 답글

    알고보면 개 대단한 사람..
  • muhyang 2015/10/30 22:24 # 답글

    이 아저씨는 저리도 계산이 능한 모습을, 그것도 호도할 생각조타 없는 게 매력이라면 매력이고 싫다면 싫은 측면입니다.
    근데 씹덕으로 번역된 표현이 무엇인지요.
  • 의지있는 크릴새우 2015/10/30 22:28 #

    키모오타입니다.
  • muhyang 2015/10/30 22:32 #

    감사합니다. 딱이네요 ;)
  • 신데마씁 2015/10/30 23:40 # 삭제 답글

    인성갑 아카마츠 켄 화백
  • Admiral 2015/10/31 07:24 # 삭제 답글

    성공한 오타쿠의 표상.

    그래도 네기마 후반부의 전개는 용서 못합니다. (...)
  • ghd8 2015/10/31 09:56 # 답글

    이렇게 보니 대단한 사람이네요
  • Scarlett 2015/10/31 11:33 # 답글

    첫 연재에서 한번 말아먹었다지만...상당히 운이 좋은 케이스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네요. 뭐 이쪽 분야로는 개척자나 다름없으니 당연한 결과려나요^^; 어쨌든 성공한 덕후는 부럽습니다 ㅠㅠ
  • 2015/11/01 00:16 # 삭제 답글

    살이 많이 쪘네요. 나이 먹어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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