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려라 유포니엄과 피사계심도 ㄴ울려라 유포니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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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려라! 유포니엄은 다른 애니메이션이나, 쿄토 애니메이션의 과거 작품과 비교해봐도 편집적일만큼 핀트의 피사계심도가 얕다.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부분과 맞춰져 있지 않은 부분의 차가 심하다.

왜 그런 표현을 하는 것일까. 피사계심도란 것은 카메라의 핀트가 맞는 범위. 피사계심도가 얕으면 배경이나 눈앞에 있는 게 뿌옇게 보여서 공간감이 느껴진다. 그렇지만 입체적인 액션 애니메이션이 아닌데, 왜 피사계심도를 얕게 만든 것일까? 거기에 대해서 나는 공간감을 느끼게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개개인의 좁은 의식을 표현하고 있는 게 아닐까 추측 중이다.

  • 첫번째 이유 음악이 테마다.

그 이유는 울려라! 유포니엄이 취주악부라는 "소리"를 테마로 삼은 애니메이션이지만,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는 시각우선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소리는 눈에 보이지 않고 흘러들어오는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경청하면 음악이 된다. 그같은 음악감상의 의식적 발견을 시각적 표현으로 치환하면 포커스의 일치, 불일치라는 식으로 시각화된다.

이 개념을 내가 왜 알아차렸는가 하면 내가 근시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안경을 안 쓰면 안구에서 반경 50cm 이내의 것에는 초점이 맞질 않는다. 그래서 눈을 가늘게 뜨면 핀트가 맞는다. 유포니엄의 세세한 핀트 차이는 근시 시청자의 시야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인물과 악기 사이에도 핀트의 차이가 있는데, 오히려 악기쪽에 핀트가 더 맞춰져 있다. 이건 오우마에 쿠미코나 코사카 레이나의 의식이 악기에 집중되어 있고 주위 사람을 의식하고 있지 않다는 표현.

  • 두번째 이유 취주악부가 테마다

여기서 밴드가 테마인 케이온!이나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의 라이브 어 라이브, 러키스타의 댄스신과의 차이가 발생한다.


취주악부는 경음악부와 비교하면 많은 인원으로 편성된다. 따라서 "핀트가 맞는 인물 그룹"을 "서로 동기화한 인물"이나 "의식을 공유하고 있는 인물"로 볼수 있는데, 실상은 취주악에서는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다. 의식하는건 악보와 악기와 지휘자다. 그래서 취주악부원은 핀트를 공유하지 않는다.

대규모 인원이 같은 음악을 연주할 때 하나하나 수많은 다른 연주자를 생각하며, 남들 음을 들으면서 내 소리를내고자 들면 연주 진행을 맞출 수 없다. 그래서 의식은 자연스럽게 협소해진다. 소리는 넓고 멀리까지 뻗기를 의식하지만, 주위를 관찰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음악을 통합하는 것은 연주자가 연주를 하는 순간이 아니라, 소리가 청중의 귀나 뇌에 전달된 순간이다. 하나 하나의 음은 음악이 아니다. 이건 6화 반짝반짝 튜바에서 하즈키가 합주를 하여 음악이 됐다고 말하는 에피소드를 통해 표현했다. 한사람 한사람의 소리로는 완성되지 않지만, 한사람 한사람의 소리를 내는데 집중해야만 한다는 것이 합주. 따라서 의식의 집중범위는 협소해지고, 그걸 시각적으로 표현하자면 핀트가 맞는 범위가 좁아진다. 그렇게 핀트가 맞는 사람들은 "의식을 공유한다" "하모니가 생겼다"는 표현이 되는 셈이다.

11화에서 아주 근사한 신이 연습신이다.

타키는 핀트가 비슷한 학생들 사이에서 츠카모토 슈이치가 소리가 좋지 않다며 지적한다.

카메라가 주시하는 츠카모토. "젠장!"이라 한탄한다.

그걸 의식에서 차단하는 듯이 유포니엄으로 가리는 쿠미코. 이런 화면 만듦새는 아주 직관적이라 마음에 든다. 쿠미코가 가진 슈이치와의 심리적 거리감에 대한 연출이기도 하다. 

그렇게 연습신에서는 슈이치를 보지 않았지만

귀가길에 주변이 엄청나게 흐린 배경 속에서(심지어 벌레를 차단하고 있는데도) 강변에서 연습하는 슈이치의 소리를 듣고, 알아본다. 그쪽 방향의 의식을 향하지만, 당사자인 슈이치는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쿠미코는 "잘하고, 싶다..."고 말한다.

운치가 있지 않습니까.

같이 연습할 때는 쿠미코가 자기 연습에 바빠 슈이치와 핀트가 맞지 않는다. 하지만 혼자서 연습하는 슈이치의 소리를 들을 때는 보이지 않더라도 시선을 향한다. 이 "소리"의 "보이지 않더라도 전해지는 특성"을 애니메이션으로 녹여냈다는 느낌이라 아주 마음에 든다.

  • 세번째 이유 키타우지 취주악부 부원들은 서로 그렇게까지 친하지 않다.

핀트가 맞는 그룹은 같은 심리적 범위에 있는거라고 볼 수도 있다.

사이 좋은 그룹

선망하는 카오리 선배와 둘만의 세계를 만들고 싶은 유코

외부 그룹은 핀트가 다르다. 또 선배를 "트럼펫 부는 사람이다"라고 불러대니 아무래도 이름도 기억 못하는 모양이다. 

그런식으로 키타우지 취주악부에는 몇개의 파벌이 있고, 사람이 많은 장면에서는 주인공 쿠미코는 심리적으로도 인지하는 범위적으로도 잘 모르는 멤버는 흐리게 인식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따져도 모든 부원을 깊이있게 다루어줄 수 없다는 사정이 있다. 그래서 실제로 학년 별로 다툼이 있다거나 신입부원은 아직 부에 녹아들지 않았다는 식으로 핀트가 맞지 않는다.

카메라의 포커스도 그같은 심리를 표현하고 있죠.

생각이 일치하지 않는 부원들, 사고 표시를 하지 않는 수십명의 조역(쿠미코를 포함한) 부원들은 어둡고 핀트가 흐린 장소는

그와 반대로 시선을 모으고 밝고 또렷하게 그려진 나카세코 선배나 코사카 레이나를 대비시켜 돋보이게 한다.

취주악부의 의지가 아직 합쳐지지 않은 상황이나 혹은 성모 마리아와 같은 카오리 선배의 희생이라고 해야할지,디션이라는 이름의 의사표시라고 해야할지, 의식으로 다른 부원들도 깨달음을 얻게 하여 앞으로는 단결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예감을 표현했다.

  • 네번째 이유 시선과 관심

서로 친하지들 않으니까 핀트도 맞지 않고 마음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만 그렸다면 인간불신이라 재밌지 않겠지만. 서로의 마음이 통하는걸까?라고 말하는 장면도 그려져 있고 그게 바로 이 애니메이션의 좋은 점이다.

예를 들어 유일하게 대외 이벤트가 있었던 5화의 선페스는 타교와 키타우지 고교 사이의 핀트가 다르다.

하지만 타교에 같은 중학출신인 친구를 발견하자 핀트가 맞춰지고

친목질을 하려나? 여기게 한다음

그러나 쿠미코는 레이나 쪽을 본다. 레이나가 선명하게 보이고

그쪽을 향해 달려가자 중학시절은 핀트가 어긋난다. 그렇게 쿠미코는 키타우지에 진학한 걸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대목은 영상만으로도 충분히 전달되기 때문에 대사는 너무 과한걸지도 모른다. 뭐 이런 식으로 동족의식이나 흥미의 표현을 강조하기 위해 핀트를 많이 건드리고 있다.


덧글

  • Thirty 2015/09/26 02:21 # 답글

    8화 운치있는 야경씬이나, 12화 혼자 여름에 들어 앉은 것처럼 그린 작화는 훌륭했습니다. 물론 거의 모든 씬에서 DOF를 잘 살려냈고요.
  • Admiral 2015/09/26 15:20 # 삭제 답글

    볼 때마다 매번 느껴지던 이질감이 이거였나 보네요.

    이런거 하나하나 신경 쓰다니. 쿄애니가 더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 9月32日 2015/09/26 19:43 # 답글

    초점으로 심리상태를 표현하는 방식이군요. 볼 때는 몰랐는데 참 대단합니다...
  • 8만 2015/09/26 20:36 # 삭제 답글

    쿄애니의 모든게 담긴 작품이라 불러도 손색 없겠네요
  • PFN 2015/09/26 22:45 # 답글

    dof는 쿄애니 초장기부터 정말 잘썼죠
    똥애니 쏟아내던 시절에 좀 흔들렸고..
  • ㅇㅇ 2017/07/13 20:27 # 삭제 답글

    최고입니다! 쿄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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