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모토 요시유키판 에반게리온 완결 기념 인터뷰 만화


최종권이 발매되었겠다 오늘은 만화판 <에바>의 모든 것을 훑어 보고 싶습니다. 먼저 이야기가 '나는 장래에 되고 싶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신지의 말로 시작되는 게 인상적인데요, 이 모놀로그를 그린 시점에서의 이카리 신지란 캐릭터에 관해서는 어떤 구상이 있었나요?

일단 이 <에반게리온>이란 기획 그 자체의 시작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로봇물의 기성 개념이 있지 않습니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소년이 로봇에 타서 싸우고 악을 물리치는 장르입니다만, <에바>를 기획한 시기에 가장 의문스러웠던 점은 이런 로봇은 병기의 측면에서 굉장히 돈이 드는 것이고, 그야말로 국가사업에 필적할 정도의 예산을 잡아먹는단 말이지요. 

에바도 엄청나게 코스트를 들인 최신 병기입니다. 그걸 어린애가 탄다는 사실에 저는 무척이나 위화감을 느낀다는 걸, 기획 단계에서 감독님한테 말했죠.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훈련 받은 어른 군인이 타게 되겠죠,라고. 어린애가 타는 이상, 무언가 이유를 붙여야만 한다고. 그래서 저 자신이 14살이던 무렵을 돌이켜 보고서 생활 속에서 무엇이 문제였는가 하면, 역시 세계평화 같은 건 생각하지 않았죠. 장래의 전망과 불안이지 않았나 싶었어요. 또는 여자애한테 어떻게 내 애정을 전할수 있을까 같은거나, 클럽 활동에서 주전이 될 수 있을까처럼, 그러한 평범한 14살의 일상을 비춘 모놀로그에서 시작한 겁니다.

그처럼 평범한 일상을 보내다가, 느닷없이 로봇에 타야만 한다는 그 점을 리얼하게 구축하고 싶다는 말을 감독님한테 했다고 생각합니다. 주인공이 왜 에바에 탈 수 있느냐 하는 점은 감독님이 정신결합으로 조종한다는 아이디어를 내셨기에, 저는, 그럼 죽은 엄마가 로봇 안에 있고, 오직 그 자식만 조종 가능하다는 제약을 만들면 어떨까요? 하는 아이디어를 냈죠.

그 당시, NHK에서 <경이로운 소우주 인체2 뇌와 마음>이란 방송을 했는데요, 거기서 부모와 자식의 감정과 이성간의 연애, 애정을 관장하는 신경계통 "A10"이란걸 설명했어요. 모친이 들어가 있는 로봇을 A10신경으로 조종하는건 어떨까 싶었죠. 새빨간 타인에 불과한 어른이 타면 정신붕괴를 일으키지만, 에바에 들어가 있는 어머니의 자식만큼은 그걸 조종 할 수 있다는 제약을 떠올렸던거죠.

소년이 로봇에 타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만들고자 하신거군요.

맞습니다. 아버지가 나타나 '너는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 싸워야 해'라며 대뜸 무리한 주문을 해본들 보통은 '왜 내가 싸워야 하는데?'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죠. 마침 걸프전이 있었던 시기라, 저는 그걸 TV로 봤는데요, F-117이란 기체명의 시커멓고 삼각형 스텔스기가 한밤중에 공모에서 출격했고 '요컨대 이거에 신지를 태운다는 소리잖아요? 보통은 극구 거부할걸요' 이런 소리를 했어요.

그래서 탑승을 거부하는 주인공이란, 당연하지만 종래의 로봇물에는 없는 인물상으로, 점점 제 안에서 이카리 신지의 캐릭터상이 구축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당초 애니메이션은 <울트라맨>이나 <마징가Z>처럼 격투물의 엔터테인먼트를 추구하겠거니 생각했으니까요. 그럼 만화는 좀 더 부모 자식의 불화나 14살의 정신세계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랬더니 본편이 그 지경이 된 바람에. 처음부터 그게 감독인 안노 히데아키 씨 머리에 있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결국 <에반게리온>은 처음부터 이런식으로 됐을 이야기겠거니, 지금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도 전투로봇 작품의 시작이 '나는 장래에 되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다'니 그런 시작은 그전까지 없었던 일이죠.

그건 저 자신의 '강한 척'하는 성격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몰라요. 예를 들어 당시의 제 고민으로 치환하자면, 장래에 만화가가 되고 싶다, 하지만 동경하는 만화가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도저히 그런걸 제가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는 식으로. 거기에 소년 특유의 니힐리즘이 섞이는거죠. 14살이라곤 하나, 스스로는 어른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어른들 이상의 쿨함을 가장해 보이는거죠. 어차피 되고 싶은 것은 될 수 없다는 체념의 감정으로, 순수한 본심을 니힐리즘으로 감싸 숨기는 식으로 말이죠.

그런 뒤틀린 소년이 <에반게리온>이란 스토리를 통해서 마지막의 마지막에, 지금은 아무것도 없을지 몰라도, '똑바로 살아야지'라거나 '꿈을 가져야지'라고 생각하게 되는 정도로, 아주 약간 긍정적으로 바뀌는 작품이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최종화에 전차에 타서 그런 생각을 하는 신이 있는데요, 이건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시점부터 사실 구상 속에 있었고, 1화와 대비되는 신입니다. 물론 더 나은 라스트가 떠올랐으면 변경 했을지도 모르겠으나, 저 스스로는 여기에 도달한다면, 제 <에반게리온>은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서두의 모놀로그의 이어짐이 라스트에 있다는 이미지가 처음부터 있었던거군요?

이어지는게 아니라 또 하나의 가능성 같은 세계에, 조금이나마 시프트 하는 감각입니다. 오프닝의, 어차피 되고 싶은 것 같은건 없다,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는 자포자기적 감정이 있고. 하지만 그것은 나 자신의 본심이 아니라서, 역시 그건 잘못됐다고 깨닫고 라스트에 '역시 열심히 살아야지'라는 식으로 되기까지의, 약간의 마음의 성장이 <에반게리온>이 아닐까 합니다.

그럼 그 신지상은 사다모토 선생님 본인의 소년시절을 투영하는 편이 보편적인 소년상을 만든다는 감각이었나요?

저는 이른 단계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어렴풋 생각했으니까요. 다른 일은 하고 싶지 않다고 해야할지, 할 수 없을거란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나마 나았죠. 주변에 있는 친구들도 다들 희미하게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시골에 귀성해서 그들과 만나 보면 '너는 좋겠다. 꿈을 이뤄서'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듣자하니 다들 가장 되고 싶었던 직업은 되지 못했다고. 하지만 저도 정말은 만화가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카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는데 말이죠. (웃음) 

내일이라도 아무 기업에서 '우리 자동차를 디자인해주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해주면 모든 작업을 내던지고 뛰어들 정도로 버리기 힘든 꿈이긴 합니다. 그러니까 저처럼 장점이 한쪽으로 기울어 있는 인간이 아니라면, 훨씬 장래에 대한 불안이 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신지란 캐릭터는 싸움이란 궁지에 내몰리게 되면서 굴러가기 시작하니까요.

그런 신지를 겐도는 내다보고 있는 겁니다. '도망치면 안 돼, 도망치면 안 돼' 하는 유명한 대사가 있는데요, 저는 도리어 넣지 않았어요. 에바에 탈 이유 자체도 바꿔버렸거든요. 저한테 있어서의 신지는 명령 받으면 '이게 뭐라고!' 이렇게 여길 법한 반항심이 있었거든요. 요컨대 어린애입니다만, 아버지는 그것을 잘 자극해서 태우려 든다는 얘기죠. 아들이 '다시 보게 해주겠어!'라는 식의 감정으로 타고, 탄 순간, 아버지는 득의양양하게 미소 짓는다. 그런 장면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단순하게 그 대목에서의 분함이나 반항심으로만 탄다는 편이, 제 안의 뒤틀린 신지한테는 맞아들었죠.

느닷없이 신지의 감정에 '도망치면 안 돼'라는 어른스러운 감정을 실어버리는 것은, 저는 좀 아니지 않나 생각해서 오히려 빼버렸습니다. 눈앞에서 아버지한테 바보 취급 당한 게 분했다는 이유 하나로 에바에 탔다는, 정신연령이 낮은, 얄팍한 어린애로 그리고 싶었어요.

사다모토 선생님은 어머니와 아버지란 테마가 대전제였던거군요. 정말로 그리게 된 것은 마지막 부분입니다만.

그래도 여기저기에 조금씩 넣을 생각이었는데 말이죠. 어머니가 제레란 집단과 만나, 인류가 멸망한다는 사실을 알아버린데서 이 <에반게리온>이란 장대한 스토리가 시작되었다고 저는 보고 있거든요. 그런 슈퍼 과학자가, 인류가 멸망하는 운명을 알게 되면 어떻게 행동할까, 자기 자식이 살아가게 될 세계를 어떻게든 만들고자 운명에 저항하지 않을까 하고요. 그걸 위해서는 자기 남편도, 자기가 소속된 단체도 기만해야만 한다. 전부를 속이고, 자신도 죽어서 에반게리온 안에 들어가, 그에 더해 릴리스의 혼과도 싸우고, 이 아이의 미래를 만들고자 했죠. 그같은 여신과 같은 존재로 유이를 해석했습니다. 릴리스의 존재는 본편에서도 도중에 생겨난 추가설정이니까, 당초에는 에바 안에 있는 혼이라고 밖에 생각하지 않았지만요.

이건 스포일러인데요 <표류교실>이란 제목의 제가 정말 좋아하는 우메즈 카즈오 선생님의 작품이 있습니다. 미래에 간 아이를 돕기 위해서, 과거에 있는 어머니가 메세지를 보내는 장면이 있어요. 그게 제 안에서는 소년만화의 최고봉 작품 중 하나로 존재하고 있었고, 어머니가 자식을 생각하는 의지가 시공을 뛰어넘다는걸, 제 작품의 근간으로 삼자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에바 최종권을 보면 '과연 그런 소리군'하고 납득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그러자면 겐도와 유이는 어떻게 사랑하게 됐는지, 그 부분을 더 많이 그리고 싶었지만 스토리 안에 끼워 넣기가 참 어려워서요. 신지를 통해서 보는 겐도를 그리는게 고작이라, 다 그려내지 못했죠. 하지만 한가지라도, 신지가 '이 사람이 아버지라 다행이었다'고 여길만한 포인트는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거 하나는 당해낼 수 없겠구나 하는 부분은, 어머니에 대한 애정이겠구나 싶었죠. 바보같은 아버지였지만, 어머니를 이렇게나 사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신지는 납득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아야나미 레이란 캐릭터는 사다모토 선생님의 말로 표현하자면 어떤 캐릭터인가요?

최초의 기획단계에서는 '외견이 얌전한 소녀로 디자인 해주십시오'라고 밖에 쓰여있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말수가 적지만, 싸우는 소녀로, 언제나 부상을 입어 붕대를 둘둘 감고 있으며, 안대를 하고 있다는 비주얼 측면부터 만들었습니다. 감독님은 처음에 레이는 아버지가 신의 동굴에서 주워왔다는 식의 말을 했어요. 요컨대 단순한 클론은 아닌걸까? 하는 거죠. 그래서 릴리스의 의식도 들어가 있고, 어머니의 의식도 들어가 있죠. 

겐도 입장에서는 초호기의 실험체 안에 자기 아내가 들어가 버린 바람에, 끄집어 낼 수도 없어서, 몇번이고 시도했더니 이레귤러로 나온 아이겠거니. 그런 생각이 본편이 진행됨에 따라서 점점 확고해졌죠. 신지 입장에서는 어머니의 얼굴과 겹쳐 보이지만, 조금 악마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지니고 있는 게 매력적인 소녀였던거죠.

요컨대 신지는 사람과 마음의 연결고리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점을, 인간인지 어떤지도 알 수 없는 레이를 상대로 트라이 하는 거군요.

맞습니다. 저는 특히 전반부는 레이의 어머니 같은 이미지를 강하게 내보였습니다. 신지가 투정 같은 소리를 하면 신랄하고 엄격하게 어머니 같은 말을 한단 말이죠. 후반부는 레이도 자기 안에 싹트기 시작한 신지를 향한 감정을, 자각하지 못한대로 무의식 중에 품고 있고, 신지도 그게 연애 감정인지 어떤지 모른채 고민하면서, 서로가 그 감정을 자각한 순간 레이는 죽고 만다는 구성이 됐습니다만.

신지의 손의 온기가 레이로 하여금 기쁨을 느끼게 한다거나, 미소를 짓게 하거나, 그점이 레이와 신지의 관계의 중요한 점이기도 했지요?

의외로 <에반게리온>은 경향으로 따지면 적나라한 남녀의 성을 겉으로 내보여 충격을 주자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하는데요, 과연 그걸 답습해도 좋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애초에 만화는 본편보다 대상연령을 낮추자는 의식은 있었습니다. 적나라한 성을 그리는 게 좀 아니다 싶어서.

그래서 손을 마주잡는다는 게 이성과의 접촉하는 첫걸음이니까, 중요하게 삼자고 생각했죠. 섹스를 포함해 남녀가 접촉하는 행위의 상징으로 그리는게 아름다울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작품 중반부 쯤 되면은 그 손의 온기를 남녀간의 문제만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의 교류에도 사용하자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묘 앞에서 신지와 겐도가 손을 잡는 장면이 있는건데요...

아스카 (소류 아스카 랑그레이)는 어떤 역할로 보시나요?

아스카는 당초 예정으로는 분위기를 밝게 만드는 역할이었어요. 무드메이커 역할로 설정됐는데요, 등장시켜 보니까 가지고 놀기 쉽겠다, 재밌어요. 애니메이션 본편의 스태프는 신지가 레이와 아스카 사이에서 흔들린다는 식으로 써먹겠거니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렇지도 않았단 말이죠. 뜻밖에도 이른 단계에 신지와 아스카가 커플링이란 식으로 그려져 있었으니 말이죠.

뭐, 일반적인 남자애는 과묵하고 신랄한 말을 하는 레이는 미스테리어스한 매력은 있지만 좀처럼 어울리기 힘드니까, 아스카를 좋아하게 되긴 하겠죠. 그리고 저는 거북하지만 S기질의 여자한테 괴롭힘 당하고 싶다는 사람도 많아서 (웃음) 그렇게 매력적인가? 생각하면서, 아스카의 인기가 오르는 걸 지켜봤는데요.

하지만 아스카가 없으면 같은 눈높이의 신지는 그리기 힘들지 않을까요? 만화판의 스포일러가 될지도 모르겠으나, 아스카는 최종적으로는 그런 역할을 떠맡았죠. 

근데 최종화 라스트에 등장하는 아스카는 기존 본편의 아스카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에서 만나게 될 매력적인 여성의 상징적 역할로 나온거죠.

나기사 카오루는 신지와 레이의 마음의 연결을 그리는데 있어 가상의 적처럼 보이는데요, 어떤 존재로 보셨나요?. 

레이는 신지를 향한 감정을 알아차린 순간에, 사도와의 싸움에서 사라져버렸지만, 그것이 어떤 감정이었는지 하는 문제와 사도란 생물은 무엇인지? 하는 부분을 나기사 카오루를 통해서 말했습니다. 매번 사도가 릴리스를 목표로 공격해 옵니다만, 사도는 릴리스한테 뭘 하려고 오는가 하는 부분은, 애니메이션 본편 스태프도 당초 애매한 상태로 진행했거든요.

처음에는 적대하는 상대를 물리치기 위해서 오는거고, 그걸 인간이 방해하고 있다는 구도가 되겠거니 생각했는데요, 최종적으로는 그저 융합하고 싶었던게 아닐까?라는 식이 됐죠. 융합하면 서드 임팩트가 일어나지만요. 하지만 무엇을 위해선가 하면은, 그건 릴리스와의 생식행위 같은 거라서, 정자가 난자를 향해 가는 것처럼 그저 끌어당기고 있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사도는 언뜻 보면 감정이 없어 보이지만, 사도에서 다른 사도로 혼의 연속성이 있고, 마지막으로 카오루가 등장하죠. 카오루의 감정=사도의 총의란 뜻입니다. 카오루 안에 있는 레이의 신지에 대한 마음이 사념으로 섞였기 때문에,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는 단순한 감정에, 사도의 입장에서 '그게 무슨 뜻이야?'하고 흥미를 가지고 말았죠.

레이와 신지의 마음은 남녀간의 연애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카오루 입장에서는 나는 남자로 이 세계에 존재하고 있으니까, 신지한테 레이와 똑같은 감정을 품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죠. 신지는 카오루를 거부하잖아요. '너는 남자니까'라며. 그게 흥미롭다고 생각했어요.

요컨대 특히 만화판 <에바>는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게 테마고, 사도는 생명의 본능을 상징하고 있는 거군요. 그건 인간의 본능과 똑같지만 반작용을 일으키고마는, 그 노이즈가 카오루와 신지의 관계성 안에서 표현된것 같네요.

카오루는 신지를 가장 잘 이해해주는 존재란 말이죠. 잘 알고 있는 까닭에, 나를 정말 좋아한다면 죽여달라며 모순 가득한 후미에(踏み絵)를 들이밀고 있다는.

신지가 '인간은 무엇인가?'는 문제에 발을 들이는 과정에서 카오루가 기능하고 있는거군요.

그래서 상대방을 정말로 좋아한다고 인정하는 것과, 상대방을 죽이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똑같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기 위해서 그 고양이를 죽이는 에피소드를 떠올렸죠. 카오루 입장에서는 '애정은 그런거잖아?'라 주장하죠.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기 보다는, 이 자리에서 죽여주는 편이 진정한 애정이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신지한테 들이밀었던 겁니다. 신지는 그것을 원리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처음 두사람의 갈등이 생겨나는건 재밌다 싶어서.

최종적으로 신지는 카오루를 상대로 똑같은 짓을 저지르게 됩니다. 애정을 품었기에 상대방을 죽인다는 사실을 수용하게 됩니다. 현실적으로 신지가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는 것'과 마주하는 에피소드를 위해서 카오루를 존재케 한 것이죠. 심지어 그건 큰 축으로 보자면 사도와 인간의 관계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부성, 모성이 사다모토 선생님의 절대적인 테마가 된 것은 무슨 이유였나요?

마침 <에반게리온>을 기획하던 무렵에 장남이 태어났어요. 당시 스태프 중에서 아이가 있었던 사람은 저 정도였습니다. 자식을 향해서 이렇게 컸으면 한다는 과도한 소망을 밀이붙이는 부모의 마음이나, 아이는 부모가 존경할 수 있는 존재이길 바란다고 기대하겠구나, 같은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런 한가지 한가지를 신지와 겐도의 관계성 속에서 표현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겐도는 차가운 아버지로 보일지 몰라도, 사다모토 선생님은 감정이입이 됐다는 말씀이군요.

뭐 '부모는 다 이런 법이다.' 싶은. 나를 길러줬으니까 존경하지만, 한 사람으로 봤을 때 정말로 좋은 사람인지 어떤지는 사실 알 수 없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하물며 신지의 경우는 같이 살지 않았으니까, 더 그렇죠. 하지만 만화 속에서 신지가 이웃집 아줌마가 '너네 아빠는 엄마를 죽인 지독한 사람이야'라고 하자, '아냐, 그런 소리 하지마!'라고 본심을 토로한 장면이 있는 것처럼, 사실은 아버지를 믿고 싶다, 굉장한 사람이라고 여기고 싶다는 마음이 가슴 깊숙한 곳에는 있는거죠. 그 미묘한 느낌을 그리고 싶었어요.

최종권에 연재 당시에는 없었던 추가 에피소드가 들어있죠?

번외편으로, 엄마와 아빠는 어떻게 만났는지를 그렸습니다. 메인 캐릭터는 따로 있지만, 저 스스로 생각하는 주제는, 겐도와 유이의 대학에서의 만남이었죠. 인류의 운명을 알고만 특별한 여성이 <에반게리온>의 세계를 만들어 냈다는 장대한 이야기의 스타트 치고는, 무척이나 평범한, 대학생이 그저 이성을 만났을 뿐인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그 분위기를 그리고 싶었거든요.

20년 가까이 묵혀온 테마를 이렇게 완수한 지금, 이 작품은 사다모토 선생님의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나요?

정말로, 스스로 나는 쉽게 질려하는 한심한 놈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웃음) 잘도 완주했구나 하는 생각이 앞서네요. 20년이나 걸리고 말았지만 최저한의 하고 싶은 말은 그려내지 않았나 자부합니다. 하지만 미처 그려내지 못한 부분도 축적되어, 항상 후회하면서 앞으로 나아간 느낌이 들지만요. 이 경험을 살려 차기작도 더욱 재밌는 작품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지금 바로 다음 기획에 들어간 참입니다. 기대해 주신다면 기쁘겠습니다.

덧글

  • 잠본이 2014/12/01 21:56 # 답글

    뭘 하고 싶었던건지 잘 모르겠던 안노보다는 역시 사다모토쪽이 좀더 어른인듯한 느낌(...)
  • 수시렁이 2014/12/02 06:36 #

    동감 ㅎㅎ;
  • 풍신 2014/12/02 21:14 # 답글

    엔딩에 다소 애매한 부분이 있는데, 가능성 같은 세계에 시프트라...과연! 그래도 뭐 코믹 버전을 나름 꽤 좋아합니다.
    아스카에 대해서 그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으니 아스카의 취급이 그렇게...
    겐도를 통해서 의외로 많이 표현하려고 했나보군요. (그래도 뭐, 결국 제게 있어서 겐도는 코믹판에서도 빌어먹을 꼰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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