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드노아 제로 감상 감상


to the beginning은 에미야 키리츠구의 굴곡진 인생에 대한 노래였다. 세상 모든 슬픔을 씻어내기 위해 만능의 원망기의 힘을 빌려 사람들 마음속에서 증오의 연쇄를 끊어내고자 염원했던 사내의 의지와 말로를 고스란히 노랫말로 풀어냈다. 그렇다면 heavenly blue는 어떨까? 이 노래의 화자가 카이즈카 이나호인지 슬레인 트로이어드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계속해서 말을 건네는 대상이 바로 어세일럼 공주라는 사실이다. 10화를 통해 문자화 된 테마. 좋은 의도를 가지고 행동한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결과를 불러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heavenly blue는 예견하고 있다.

君が見る夢は古いインクで 紙に書いた祈りのよう 
그대가 꾸는 꿈은 오래된 잉크로 종이에 쓴 기도인 것만 같아 

小さなその手がすがるものも 今はまだどこにもない 
자그마한 그 손이 의지할 것도 지금은 아직 어디에도 없네 

それでも君の行く道を 綺麗なものは綺麗なままで 守り続けたいと思うよ 
그럼에도 그대가 가는 길을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채로 계속 지켜주고 싶다고 생각해

주목해야 할 부분은 종이 위에 쓴 기도문 같다는 점이다. 종이는 내구성 면에서 보자면 매우 취약하다. 찢어서, 태워서, 물로 적셔서 갖가지 방법으로 얼마든지 훼손시킬 수 있다. 즉 화성과 지구의 화평을 바라는 어세일럼 공주의 이상은 종이처럼 연약한 기반 위에 위태롭게 서있다는 인식인 것이다. 그리고 연약한 이상을 계속 품고 나아가는 길 앞에는 선과 악으로는 딱 나눌 수 없는 복잡한 입장이 뒤얽혀 있어 본연의 순수성이 침식될 수 밖에 없다는 비관이기도 하다.

그런 사실은 레예 아리아시가 토해낸 증오를 통해 구체화 됐다. 평화를 이룩하고자 지구에 내려온 어세일럼 공주의 선택이 지구와 전면전을 벌일 명분이 필요했던 주전파 화성기사들에게 딱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 화성기사들이 지구측의 소행으로 꾸며 공주 암살을 감행했기에 화성측 스파이었던 레예의 부모가 동원되었다. 그리고 공주 암살이 화성측의 자작극이란 사실이 발설되지 않도록 협력가를 모조리 제거했기에 레예는 부모를 잃었다. 어세일럼 공주의 선의가 작게는 한가정을 파괴하고, 크게는 전쟁의 단초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점이 바로 (비록 우로부치 겐은 3화까지만 각본을 맡았다지만) 알드노아 제로를 우로부치 겐의 작가적 특색이 담겨있는 작품으로 분류해야할 이유이기도 하다. 적어도 취성의 가르강티아보다는 더 작가색이 진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는 언제나 선의의 이면에 자리한 어둠에 관해서 얘기해 왔는데, 어세일럼 공주의 나이브한 이상을 이용한 자츠바움은 소녀들의 선의를 농락한 큐베와 다르지 않다. 더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성배를 파괴한 키리츠구의 선택이 후유키 시에 불지옥을 초래했듯, 지구와 화성의 공존을 바란 어세일럼의 선택이 다시금 전쟁이 일어나는 방아쇠가 되었다.

순수한 이상이 끊임없이 시험받는 가운데 초심을 관철할 수 있을 것인지, 아름다운 걸, 아름다운 채로, 선의를 선의 그대로 전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물음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1쿨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12화의 제목은 '비록 하늘이 무너져도(たとえ天が堕ちるとも) -Childhood's End-'다. 유년기의 끝이란 부제가 시사하듯 더 큰 좌절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늘이 무너져도'란 말을 잇는 문장은 '정의를 세워라(正義あれ)'다. 오프닝 말미를 장식하는 영어 문장 Let justice be done, though the heavens fall의 일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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