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 이치시-우로부치 겐論 2/2 라노베

이이다 이치시-우로부치 겐論 1/2



3. 인외마경에서 무대(表舞台) 앞으로- 우로부치 겐의 궤적

그렇다고는 하나 당연하게도, 우로부치와 이토는 서로 다른 점도 있다.

이토는「반전 반핵」을 비롯한 메세지를 활발하게 담아낸 코지마 히데오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작품 안에 사회 비판적인 테마가 있다. 그러나 우로부치는 좌편향의 부친을 보아온 탓인지, 그런 메세지를 경계하는 감성이 있다. (단 그의 시장원리를 달갑게 생각지 않는 심성, 소위 「혐저주의」적인 스탠스는 좌익인 부친한테 받은 영향이 아닐까 싶지만은.) 

그래서 우로부치는『메탈기어』나 이토의 작품처럼은 사회를 향한 메세지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긴 커녕 오히려 스스로가 사회를 비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는, 정도
에서 벗어난 위치에 있는 탈사회적 존재라는 사실을, 작품으로 호소해온 것처럼 느껴진다.

자신이 아웃사이더/인외(人外)란 자각과 인외를 향한 공감.

이건 우로부치만의 현저하고도, 그와 동세대의 엔터테이먼트 픽션 창작자들 사이에서 좀처럼 발견하기 힘든 경향이다.

본래 죽어야 했을 청년이 기억을 말소당하고 , 암살자로 제 2의 인생을 내딛게 된다
─그리고 일단 발을 들인 뒷세계의 손에서 좀처럼 달아날 수 없는『Phantom』주인공이 인간이 아닌 흡혈귀가 되어, 그것을 받아들이고 살아갈 것을 선택한『베도고니아』체제에 순종하는 걸 택하지 않고 혁명가의 길을 나아가는『쟝고』지금껏 살아온 세계가 썩은 살덩어리로 밖에 보이지 않고, 오직 역겨운 괴물일 터인 사야만이 아름답고 덧없는 소녀로 보이게 된 주인공이 세계를 거절하고 가족이나 친구를 살해하면서까지 사야와 맺어지는 선택을 한『사야의 노래』가 최북단에 있을 것이다. 표면의 세계에서 이면의 세계로 탈선해 가는 주인공을 그리며, 그들을 향한 심퍼시를 숨기지 않는 작품을 우로부치는 계속 엮어왔다.

그 자신이 90년대에 라이트노벨 작가를 지망했지만 좌절되고, 2000년대 초두 카오스 상태였던 에로게 업계에 거둬진 모양새로『Phantom』을 쏘아올렸다. 하지만 그 언더그라운드한 에로게 업계에서조차 보수본류(保守本流)가 아닌 이단의 존재로 살아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로부치의 두번째 작품『흡혈섬귀 베도고니아』는 우로부치가 당초「상품으로 만든다」는 의기를 갖고서 만들기 시작했지만, 제작 중에「이걸로는 시시하다」고 느껴져서 자신의 취향을 전개하여 완성한 작품이었다. 그래서 세번째 작품『귀곡가』이래, 그는 거의 자신의 길을 걸어가게 된다.
  

신기하게도 카도가와 스니커 문고의 작품인 동시에, 그의 이름으로 메이져 유통되는 소설로는 첫 작품이었던 노벨라이즈『귀곡가』의 스토리 라인은 2011년에 간행된 소설『금색 눈동자와 강철의 검』의 후기를 읽고 판단하건대, 그 옛날 라이트노벨 작가 지망생 시절에 생각한 플롯을 재활용한 것이다. 2000년대 초두의 우로부치가 게임이 팔리기 시작하자「노벨라이즈 해보지 않겠습니까」라며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꾸고 다가온 출판업계 사람들을 좋게 생각하지 않은 것도 당연한 일일테지. 

소설가를 동경했지만 좌절하여 샐러리맨이 되고, 그러나, 역시 직장인의 인생을 드롭 아웃하고 에로게 시나리오 라이터로 살아갈 것을 결심, 작품 안에 음지인간으로 전락하는것 같은 작품을 그려왔으므로.

일찍이 자신이 쓴 신인상에 응모한 소설로는 햇볕을 쬐는 걸 용납받지 못했던 존재가, 어째서 이제와서, 지하에서 발표한 같은 플롯의 이야기를 지상의 세계에 내보이려 드는 걸까...이런 꺼림직한 마음에선지, 과거 우로부치는 거듭해서
「나는 에로게 세계의 주민이다」라고 말하며, 메이져 유통하는 애니메나 소설의 세계의 인간이 아니라 주장, 애니메이션이나 소설로는 규제 탓에 절대 할 수 없는 과격한 표현과 독기 가득한 작품을 만들었다.

그것이 2003년에 발표된
『사야의 노래』제작 전후부터, 언더 그라운드였을 터인 표현이, 애니메이션이나 소설 같은 양지의 필드로 나서기 시작해, 주목 받게 된 것을, 우로부치는 깨닫는다.

 
「시기적으로도, 소위 2차원 포르노의 문턱이 굉장히 낮아지기 시작한 시기입니다. 라노베마저「이건 에로게로 만들면 될텐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모에 수단이라고 할까요, 그전까지는 2차원 캐릭터와의 유사연애가 가능했던 건 8800엔을 지불하는 에로게 만의 특권이었을 겁니다. 그랬던 게, 만화의 성묘사는 해금됐지, 라노베도 종류가 다양해졌고. 상당히 디스카운트 되기 시작돼선. 이 무렵부터 2차원 포르노가 저가 상품이 되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제 감각으론요. 조금만 더 뒷끝 찝찝한 거면 좋겠는데, 사는걸 주저하게 되는 거면 좋겠는데, 하는 욕심이 있었습니다. 」『Nitroplus COMPLETE

젊은 날의 우로부치가 데뷔하고자 했던 라이트노벨 업계는 패러디 판타지 전반의 90년대에는 발표되는 작품도 적었고, 획일적인 시장이었다. 그것이 카도노 코우헤이의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등장 이래, 200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시장은 계속 다양화 되어, 이종교배가 이루어지고, 몇몇의 재능은 SF나 미스테리로 채용되게 되었다. 한편에서「모에」가 일부 걸 게임이나 에로게 팬의 손을 떠나 세간에까지 인지될 만큼 메이져 화 되는 등, 시대는 변하기 시작했다.

그것 뿐만이 아니다. 우로부치의 주변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가 넷에서 발굴한 시나리오 라이터 하가네야 진에 의한
『데몬베인』시리즈 등의 성공도 있고해서, 우로부치가 소속된 니트로 플러스는 성장을 이어갔다. 과거에는 맨션의 방 하나에서 근근히 게임을 만들어 왔는데, 환경이 바뀌고 만 것이다.

주워진 개가 주인한테 꼬리를 흔드는 심경이란, 분명 이런 걸 말하는 것이겠지. 그런 식으로 자신의 흉중을 헤아리면서도, 알시아는 그걸 자학이라고조차 생각지 않았다. 자신이 개보다 나은 입장에 있다고는, 그런 환상은 일치감치 버렸다.

만약 이것이 정말로, 그 상황에 국한된 취광(
醉狂)이 아니라, 그가 앞으로도 알시아를 반드시 "지배하고 싶다"고 까지 원해온다면...

기꺼이, 나는 이 사람의 노예가 되자.
소녀는 홀로, 은밀하게 마음을 정했다. ( 『백모의 전도사』91P)

"뿌리없는 풀"이라 불리는 혼돈의 종 라질이 거둔 하프 엘프 소녀 알리시아의 심경은 우로부치 그 자체다. 일륜에 등을 지고 에로게란 이름의 주인에게 충성을 맹세하여, 힘 닿는 한 싸워왔을 것이다.
 
그러나 언더 그라운드에 뼈를 묻을 각오가, 데뷔한지 불과 수년 사이에 지상과 지하의 구별은 유명무실해졌고, 에로게 업계 자체가 변모하기 시작했다. 우로부치는 그것을 곁눈질로 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까놓고 말해서, 지금의 18금 게임의 유저가 원하는 치유물 같은 이야기는 저로선 무리거든요.」(『Django! 속 살육의 쟝고- 지옥의 현상범- 오피셜 비주얼 팬북)

따라서 우로부치는 번민하면서도 표면의 세계에서도 작업을 하게 된다. 이제는 작가로서 실력을 인정받아, 의뢰 받은 라이트 노벨을 집필하고, 애니메이션의 각본을 쓰게 되었다. 에로게란 이름의 뒷세계에서 싸구려 에로에 치닫지 않고 이야기(
作劇)로 승부하는 지고의 이단으로 추앙받던 그의 재능은, 표면의 세계에 나와 더욱, 괴이하고 검게 빛나는 것이었다.

일찍이 플롯도 짜지 않고 내달린
『Phantom』을 만들고『To Heart』급의 히트작을 만들 작정으로 탈선해버린『베도고니아』를 만든 것처럼, 그 우로부치라고 한들, 2000년대 초두까지는 작극(作劇)의 기술을 통제할 수 없었던 시기가 있었다. 허나 그 기술이 완성됨과 동시에, 작극의 이치를 따라 이야기를 제어하면, 해피엔딩 같은 건 있을 수 없다, 는 경지에 도달, 스스로를 괴롭히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하나의「틀」이 완성된 것이다.

그 기술을 가지고 우로부치는 애니메이션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블라스레이터』나『Phantom』에서 한 작업은「중간 관리자」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감독을 비롯한 스탭이 하고 싶은 걸 캐내어, 그걸 각본이란 형태로 완성시킨다. 이는 극을 통제하는 기술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언더 그라운드에 침잠해 수행을 쌓은 기간은, 우로부치 겐이란 이름의 재능에게 있어서 반드시 필요했다. 카피로서, 인외로서 날뛴 시간이 무대 위에서 싸울 바탕을 만든 것이다.

주위의 환경뿐만 아니라, 우로부치 자신도 조금씩 변했다. 시리즈 구성과 전화 각본에 손을 대며, 애니메이션 각본가로서
「홀로서기」한 작품이라 스스로 인정한『마도카☆마기카』에서는 인외를 대하는 스탠스가 변화됐다.

일찍이
『사야의 노래』와는 다르게,「마법소녀」란 이름의, 표면의 세계가 아닌 이면의 세계에서 사는 이단자의 길을 선택하는 것은, 작중에서 네거티브한 사태다. 사야와 큐베는 귀여운 외견과 정반대로, 한번 발을 내딛으면 돌아갈 수 없는 세계로 주인공을 꾀어드는 점에서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사야의 노래』에서는 사야의 속삭임에 이끌려 이형의 암흑세계에 몸을 던지고, 표면의 세계의 빛을 차단하는 행위의 황홀함이 그려져 있다. 인외의 괴물인 사야와 맺어지는 한편으로, 과거의 친구를 죽이고, 동아리의 여자 친구들의 뇌를 건드려 성노예로 만드는 광경이 묘사돼 있다.

『Phantom』에서는 암살자의 인생을 걷게 된 인간은 거기서 달아나지 못하고, 계속해서 마피아한테 쫓기는 모습을 그렸고,『베도고니아』의 주인공은 흡혈귀란 인외의 생활을 택했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평범한 인간으로 남는 걸 거부했다.

『쟝고』의 소녀 일라이저는 거짓 영웅흑의 프랑코」가 되는 길을 받아들이는 걸 선택하고, 드높이 노래했다.『백모의 전도사』는「머지않아 혼돈의 세력이 승리를 거두고, 구르가이아의 위광이 대지를 빈틈없이 뒤덮게 되면, 그 때는 일륜조차 나락에 떨어질 것이다. 그런 날이 찾아오는 걸 라질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고 기술하여, 피로 얼룩진 사도를 열고, 소녀의 시체를 거느린 다크사이드의 인간을 그렸다.

그러나『마도카☆마기카』에서는
「마법소녀」란 이름의 뒷세계에 발을 내딛는 건 기본적으로 포지티브한 의미는 아니다.

일찍이
『귀곡가』에서 소녀 루이리의 혼백을 다른 신체로 전사(転写)하는 일은─즉 신체와 혼을 따로 취급하는 일은─부정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백모의 전도사』에서는 소녀 알리시아는 죽음에 이르고 정신을 뽑힌 빈껍데기=좀비가 되어, 라질의 생각대로 따르며, 동족인 엘프들을 대부(大斧)를 휘두르며 차례차례 학살해가며「이곳은, 어쩜 이렇게 평온한 장소일까」하고 감탄을 내뱉었다.

신체와 혼을 분리하여 취급하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능력을 증대시킨다는 금기를 깨는 것을, 과거의 우로부치 작품은 조금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도카☆마기카』는 소울젬을 본체로 삼고, 육체는 텅빈 그릇이 되어버리는 좀비화된 상태에 놓인 마법소녀들의 관해서, 긍정적으로 그리지 않았다.(※)

인외의 존재이기 때문에, 고통이나 피곤함에서 혼을 잘라낸 존재이기 때문에, 획득할 수 있었던 커다란 힘이 있다고 긍정하지 않는다. 혼과 육체란 하나여야만 한다, 마물한테 혼을 팔아넘겨선 안 된다, 도구로 사역당하는 존재로 전락하다니 잘못됐다.
─그런 식으로 말하고 싶은 것처럼 보인다. 애초에 이런 경향은 2007년 발매된『Fate/Zero』에서 일치감치 찾아볼 수 있다.


『손가락 끝을, 마음과는 분리한 채로 움직인다고 하는건 말야, 대개의 킬러가 몇 년을 걸려서 몸에 익히는 각오다. 꼬맹이는 그것을 최초부터 가지고 있었지. 말도 안되는 자질이라고』


「……」


『그래도 말야, 소질에 따라 생업을 고른다고 하는 것이, 반드시 행복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어. 재능이라는 건 말이다, 어느 일선을 넘어버리면, 그녀석의 의지나 감정 같은 것과 상관없이 인생의 행로를 결정해버리지. 인간이 그쯤가면 완전 끝이라고.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생각하지 않고,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만으로 움직이게 되어버리면 말이다…그런 건 단순한 기계, 단순한 현상이다. 인간의 삶과는 동떨어진 거지.

『Fate/Zero vol.4「연옥의 불길」』TYPE-MOON BOOKS판, 36P


무언가를, 치명적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이제와서 새삼스레 키리츠구는 그렇게 통감했다. 

도구로써 쓰고 버리는, 결과에 따라서는 그래도 상관없는 목숨이라고  에미야 키리츠구가 그러하듯, 히사우 마이야도 그런 것이라고, 어째서 그렇게 제멋대로인 판단을 오늘까지 믿어왔단 말인가. 

이런 자신에게, 지금, 이런 말을 건네줄 수 있는 여자라면. 
그녀에게는 좀더 다른 인생이, 말로가 있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상동. 228P)

변화는 갑자기 찾아오는 게 아니라, 점차적으로 진행하는 것일게다. 어찌됐건『마도카☆마기카』를 과거의 우로부치 작품과 비교해보면, 인외의 존재인 사실에 대한 비애는 그려져 있어도, 인외의 존재인 것에 의한 유열(愉悅) 묘사는 희박해져 있는 건 명백하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마도카☆마기카』의 동인지『티로 피날레』에 기고한 에세이에서, 우로부치는 자신이『마도카☆마기카』로 인해「성공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다른 장소에서는『Fate/Zero』의 히트로 인해 자신이 평생에 걸쳐 올릴 출판부수를 이미 상회해버린 감상을 토로한 적도 있다.

세간이 부러워할 지위와 명예와 금전을 얻은 인간이, 인간의 길을 벗어난 존재를 찬양하더라도, 거짓말처럼 비춰질테지. 물론 우로부치가 팔리기 시작해서 변절했다고 함부로 결론 짓고, 비판할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다.

최근의 인터뷰에서도 우로부치는
「제 경우에는 세간에서 받은 평가로 스스로가 구원받은 일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항상 자신을 구원하거나, 자부심을 갖게 된 일은 스스로의 가치관이나 달성감이었습니다.」라고 말했으니까.

근본이 달라졌을리가 없다. 단, 사실로서, 이제는 우로부치 겐은 언더 그라운드에서 온 자객은 아니게 되었고,『마도카☆마기카』는 드롭아웃을 추천하는 듯한 작품도 아니다.

그럼 카피란 사실의 대한 주박은? 앞으로도 해방되어 갈 것이다. 주인공인 소녀 마도카는 최종화에서 실체를 소멸시키고
「개념」이 되어, 말로써 전해지는 존재가 된다. 일찍이「팬텀」이나「흑의 프랑코」의 칭호와 마찬가지로. 그러나 한군데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다. 개념으로써의「마도카」는 카나메 마도카가 오리지널이다.

『Phantom』의 주인공 츠바이도『쟝고』의 주인공 일라이저도 오리지널이 아닌 두번째 존재였다. 카피가 그 이름을 계승하는 이야기였다.『마도카☆마기카』는 다르다.『마도카☆마기카』야 말로 오리진이고, 거기서부터 후세로 이어져 가는 것이다.

우로부치 작품은 혼의 계승의 역사를 그려왔다. 자손을 남기는 걸 바라는
『사야의 노래』의 사야건, 소녀 루이리의 분할된 혼을 회수하여, 다른 의체로 이식하기까지를 그린『귀곡가』이건. 그러나『마도카☆마기카』에 이르러, 무언가를 계승하는 측의 이야기에서, 받는 측의 이야기로 변화한 것이다. 이는 우로부치 겐이란 이름의 재능의 궤적과 일치한다.

사람은,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누군가를 모방하는 것에서 출발할 수 밖에 없다. 처음에는 카피 밖에 만들 수 없다. 그것을 인정해 주는 장소는, 어쩌면, 혼돈인 곳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방을 반복하는 와중에, 자연히 독자성은 싹트게 돼버린다. 뿐만 아니라, 카피하는 것 만으론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큰 재능은, 이 세상 니즈의 주류에서 탈선되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은 사람들이 바라는 해피엔드를, 쓰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고민하고, 좌절하여, 실패한 적도 있을 것이다. 우로부치 겐의 애니메이션 작업은 처음부터 상업적으로 대성공이었던 것도 아니다.
『마도카☆마기카』는 세번째 작품이다.

그렇게 그는, 메이져 크리에이터로서, 본보기가 되는 측이 되었다.

그렇다고는 하여도, 그 성공은
 「마법소녀물」로써는 사도의 시나리오로 획득한 것이다. 같은 방법의 독수가, 몇번이고 통할리가 없다.

즉 우로부치 겐은 앞으로 왕도의 작품으로 이겨야만 하는 숙명을 지고 있다.

그가 어떻게 싸워나갈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혹은 언젠가 우로부치는, 코지마 히데오처럼 자신을 키워준
「영화」란 이름의 빅보스한테 도전하거나─또는 체제측에 가담한 초대「흑의 프랑코」마냥 우로부치가 영화각본가란 이름의 빅보스 그 자체가 될런지도 모른다.

그 여정은 본론이 제시한 그림1의 다음에 그려질, 2000년대 문화에서 2020년대 문화를 향한 영향관계를 나타내는 그림2를 작성하는, 다음 세대의 비평가가 밝혀주겠지.

이토 케이가쿠가 그린 리퀴드 스네이크를 둘러싼 역사를 논한 본 원고는, 마법소녀(카피)가 일주하여 마녀(오리지널)로 변모하는 과정까지 새긴 여기에서, 일단 원이 닫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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