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는 어떻게 적자 위기를 극복했는가 편집장 인터뷰 만화

주간 소년 선데이 편집장을 10월 13일부로 퇴임한 이치하라 타케노리 씨. 2015년에 편집장 취임 당시 소년 선데이는 1959년 창간 이래, 최초의 적자가 예상되었다.

취임 직후, 이치하라 씨는 선데이의 38호(2015년 8월 19일 발매)에 '독자 여러분들에게'라는 제목의 선언문을 제출. 신인육성을 절대적인 사명으로 삼는 선데이 개혁을 발표했다. 그리고 퇴임에 맞춰 자기 트위터에 '미증유의 위기였던 소년 데이도 6년 3개월의 재임 기간중에 극적으로 실적을 개선하여 무사히 차세대로 물려주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라고 트윗한 것처럼, 소년 선데이는 위기를 벗어났다. 내외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불러모았던 그 개혁표명의 진의는 무엇이었나. 소년선데이라는 장수 브랜드를 어떻게 다시 일으켜세웠는지를 인터뷰하였다.

Q.이치하라 씨가 취임 직후에 발표한 선언문은 독자들이 '선데이의 긴급 사태 선언'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개혁'이라는 부분이 크게 주목받았는데 그냥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우선 정말로 개혁이 필요한지 어떤지 분석할 필요가 있죠.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데 움직이는 리더는 최악입니다. 리더의 에고로 이루어지는 개혁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으니까요.

애초에 편집장이란 직함은 무슨 트러블이 있을 때 책임을 지거나, 작가와 의견차이가 있을 때 현장을 대표해서 대화를 나누거나, 팀 전체의 방침을 결정하는 역할이지 스스로 땀을 흘려가며 최전선을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비상사태입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나도 개혁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어요. 피곤하니까.(웃음) 내가 편집장이 된 시점에서 소년 선데이는 개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Q.당시의 상황이 어땠나요?

창간 이래 대적자일 거라는 예측이 이미 되어 있었죠. 그건 어제 오늘 발생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20년이라는 오랜 시간에 걸쳐 소년 선데이는 조락(凋落)하고 있었어요.

내가 입사해서 소년 선데이 편집부에 배속된 것은 1997년. 3차 황금기라 불리던 시대였습니다. [명탐정 코난]이 시작된 무렵이죠. 그밖에도 [이누야샤]나 [MAJOR] 같은 작품이 연재됐습니다.

Q.히트작이 풍부했던 시대였네요.

나는 편집자라는 직업이 어떤 일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로 이 업계에 들어와서 '여기가 네 자리다'라고 안내를 받았을 때 '아다치 미츠루 선생님 자리는 어딘가요?'라고 물어봤을 정도입니다.(웃음) 다만 1년이나 일을 하다보면 편집부의 찌꺼기가 보이거든요. 게임과 마찬가지입니다. 스포츠랑 마찬가지로, 이 소년만화의 세계에도 룰이 존재하죠. '진리'라고 표현해도 됩니다. 어떻게 하면 이 게임을 이길 수 있을까? 나는 인생 전반적으로 게임의 근간을 이루는 것에 관심이 있었고, 그 핵심을 찾는 걸 좋아했어요. 그래서 소학관의 창고에 가서 창간호부터 훑어 봤습니다. 온고지신이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과거를 모르면 미래를 내다볼 수 없거든요.

Q.그렇게 이치하라 씨가 깨달은 핵심은 뭔가요?

신인 육성입니다. 우수한 편집자를 육성하고 배치해서 '이 부분은 매력적이다'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팀을 만들면, 그곳에 재능 풍부한 창작자가 모여들죠. 그런 창작자를 제대로 키워내서 한사람 몫을 하는 작가로 만들어 히트작을 배출한다. 이 루틴만 지키면 이 게임은 절대 지지 않아요. 그런데 소년 선데이 편집부는 신인육성에서 멀어지려 했죠. 이래서야 못이기지 싶었죠.

Q.그게 앞서 언급한 편집부의 찌꺼기입니까?

맞습니다. 그래서 엄청난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Q.소년 선데이의 경우 매상을 떠받치는 간판과 잡지의 '양심'이라 할만한 부분을 담당하는 작가, 모두 겸비하고 있었습니다. 타카하시 루미코 선생, 아다치 미츠루 선생, 아오야마 고쇼 선생 등. 그래도 못이긴다고?

네. 그만큼 신인육성은 중요합니다. 항구적으로 강력한 만화 브랜드로 있기 위해서는 건전한 신진대사가 불가결하니까요. 그래도 입사 2년차의 신입이 하는 말은 아무도 귀기울여 들어주지 않죠. 실적이 없으니까, 아무리 올바른 소리를 해봤자 '그딴 소리보다 일이나 해'라는 말을 듣게 되죠. 그래서 빨리 발언력을 손에 넣고 싶었어요. 발언력이랄까, 실력이죠. 자기자신을 단련할 수 밖에 없죠. 그러는 사이에도 소년 선데이는 계속해서 조락해 갔죠. 정말로 안타까운 시기였습니다.

그래도 입사 6년차인 28세 무렵에는 소년 선데이의 에이스 편집자라는 소리를 듣게 됐고, 상층부에서 신인육성의 전분가라고 인정받게 됐습니다.

Q.그 편집술은 어떻게 배우셨나요?

으음...열심히 생각했죠.(웃음) 딱히 배울 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Q.편집부에 신인편집자를 육성하는 노하우가 축적되지 않았다는 말씀이신가요?

옛날에는 확실하게 있었어요. 하지만 그 무렵에는 운산무소되었죠. 내 경우 담당을 한 작가에게 단련 받았습니다. 가장 스파르타였던 게 미츠다 타쿠야 선생님이죠.(웃음) 내가 담당한 당시의 미츠다 선생님은 [MAJOR]의 인기가 급상승하기 시작한 시기라서, 지금 바로 인생을 개척해서 성공하느냐 마느냐 걸려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회의도 언제나 진검승부. 항상 살벌했죠. 공중전화로 작가회의를 했을 때는 7시간 걸린 적도 있습니다. 도중에 키오스크에서 1만엔 지폐를 꺼내 껌을 사고, 잔돈을 만들고...좋은 의미로 살벌하게 단련됐죠.

Q.일상적인 업무를 하면서 자동적으로 편집자를 육성하는 게 이상이군요.

그건 정말로 이상이고, 그래야만 합니다. 하지만 내가 28세 무렵의 소년 선데이 편집부에는 그런 편집자 육성 풍토 같은 게 완전히 사라져 있었죠. 그리고 신인작가를 키울 자리도 줄어들기만 했습니다.

Q.신인작가의 작품을 실을 매체가 사라졌다?

그런 소리입니다. 그전까지는 월간 증간호(월간소년 선데이S)가 신인작가를 육성하는 장소로 기능했는데 그걸 폐간하게 됐죠. 대체로 편집장은 3년 임기라서 증간호를 줄여서 코스트컷을 하면 표면적인 실적은 향상되고, 사내의 평가도 좋아서 출세하죠. 바보같은 일입니다. 대체 어떻게 신인작가를 육성하면 좋은거냐 싶죠. 그래서 나는 상층부와 크게 싸웠습니다. 그때 '신인육성을 위한 월간호'라는 기획서를 격문과 함께 회사에 제출했습니다. 2002년의 일이었죠.

그게 훗날의 [겟산]으로 이어집니다. 뭐 그 당시에는 30분 다투고 묵살당했지만...'너는 에이스고 신인육성을 해야하는 입장인데, 이딴 일을 할때냐!'라고. '아니, 신인을 육성하란들 어디에도 어디에 연재를 시킵니까. 연재할 장소가 자꾸 줄어들고 있지 않습니까. 월간지를 만들지 않으면 선데이는 끝장입니다'라고 말했지만요.

Q.2005년 시점의 소년 선데이는 그래도 실적이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매상은 표면상으로 호조였죠. 왜냐면 MAJOR가 애니화되서 터무니없는 이익을 내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때 편집부에 있었던 내가 보기에는 소년 선데이는 2004년부터 2009년에 걸쳐 5년간 사실상 괴멸했습니다. 내부는 그야말로 엉망진창. 신인작가를 전혀 육성할 수 없었죠. 애초에 신인작가 육성에는 대체로 6~7년이 걸리는 법입니다. 그래서 신인작가 육성은 그 편집장의 임기중에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 법입니다. 그렇다고 육성에서 손을 놔버리면 후세의 부채는 쌓여만 갑니다. 부수나 배상을 보기만 해서는 그 잡지가 진정한 의미로 호조인지 어떤지 알 수 없는 법입니다.

Q.겟산이 창간된 것은 2009년. 창간호 인삿말은 이치하라 씨가 쓰셨습니다.

맞아요. 당시의 나는 아무런 아무런 직함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편집장 대리라는 직함으로. 실질적인 편집장 업무는 처음부터 내가 했죠. 드디어 염원이 이루어져서 신인작가를 육성할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Q.애프터눈 사계상처럼 신인작가를 육성하는 장소는 역시 필요하죠.

그래서 겟산에서는 똑같은 일을 했습니다. 애프터눈의 편집장을 역임한 유리 코이치 씨는 존경하는 선배 중 하납니다. 겟산 창간을 무척 반겨주셨고, 늘 응원해주셨습니다.

Q.창간호 별책부록으로 게재된 이시이 아유미 선생님(대표작 [노부나가 협주곡])의 단편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녀는 혼자서 그리기 때문에 주간연재 페이스에는 안 맞거든요. 그런데 편집부에는 주간지밖에 매체가 없다면 '주간 연재를 못하면 필요없습니다'라며 그만한 재능을 놓치게 되죠. 소년 선데이의 브랜드 파워를 높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월간지가 필요했어요.

Q.그 무렵의 소년 선데이 본지는...

상층부에서는 '너는 니가 만든 자가용 크루즈로 즐겁게 쏘다니는 모양인데, 바로 옆에서 침몰하고 있는 전함 야마토를 그냥 바라보는 게 네놈의 남자다움이냐!?'라고 꾸중을 들었습니다. 아니 나는 겟산의 편집장이라서 이쪽이 궤도에 오르기 전까지는 못움직입니다,라고 답했죠. '돌아오라'고 말한들, 돌아가는 이상 편집장이 아니면 의미가 없죠.

Q.그리고 2015년에 소년 선데이 편집장으로 취임했습니다.

그때까지 곁눈질로 계속 선데이를 관찰했는데, 과거에 내가 재적했던 당시보다 훨씬 병세가 악화되어 있었고, 내가 복귀하지 않으면 확실하게 폐간될 거라는 사실을 알았어요. 우려스럽게 생각한 작가들은 '100% 폐간될테니 복귀하지 않는 편이 낫다', '망할 때 편집장을 맡으면 당신 책임이 된다', '이렇게 큰 배가 침몰하는 건 만화사상 처음이니까 엄청난 사건이다'라며 다들 걱정해주었죠.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거절하는 선택지는 없었어요. 소년 선데이와 아다치 미츠루가 좋아서 선택한 직업이니까요, 거절하면 그점에 거짓말을 하는 게 되죠. 그리고 내가 편집장을 맡고 그럼에도 폐간된다면 선데이도 바라던 바겠지 하는 생각은 들었어요. 그래서 편집장에 취임하는게 정해진 다음에, 제일 먼저 주력작가들에게 인사를 갔고 지금까지의 20년간 편집장들의 실정을 사죄하며 돌아다녔습니다.

Q.그렇게 나오게 된 것이 '독자 여러분에게'라는 선언문이었군요.

모든 책임은 나 한사람한테 있다. 나는 편집장 취임과 동시에 사표를 쓰고, 그걸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항상 내보일 수 있게 해뒀습니다. 그 선언문을 쓴 이상 망했을 때는 사퇴할 수밖에 없다. 어차피 실패해도 샐러리맨이니까 안전하잖아,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면 개혁은 못해요. 연재종료=해고인 작가와 대등해지기 위해서는 내 퇴로를 차단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뭐 그런 내 진의를 백전연마의 작가들은 알아주었죠. 아다치 미츠루 선생님은 '이제 너밖에 할 사람이 없지'라고 말씀하며 보내주셨습니다. '네가 실패하면 소년 선데이는 이제 끝장이다'라며.

편집장 취임 당시 아다치 미츠루 선생이 보낸 격려의 색지.

Q.이치하라 씨의 선데이 개혁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부터 착수하셨나요?

세가지 포인트로 좁혀서 자세히 조사했습니다. 우선은 편집자. 구체적으로 편집부 전원과 면담을 했습니다. '어떤 만화를 만들고 싶은가'는 물어보지 않았어요. '인생 최고의 영화는?', '부활동은 뭘 했는가' 같은 걸 물어봤죠. 상대방은 '이 인간은 선이라도 보는 것처럼 질문하지?'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지만요.(웃음) 인간성을 보고 싶었기 때문에 그런 질문을 던져봤어요. 그런 면접을 반복해서 쓸만한 젊은이가 몇 명 있는지를 조사했습니다. 사전에 상상했던 것보다 많았기 때문에 절망은 하지 않았죠.

Q.선언문에는 '소년 선데이의 만화에 관한 모든 의사결정은 편집장인 나 혼자서 합니다. 내 독단과 편견과 미의식이 전부입니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건 독재체제를 만들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들은 아직 무리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능력이 없죠. 완전 미숙한 상태. 기회를 받을 자격조차 없는 자네들의 수치라고 편집부 직원들에게 말했습니다. 다만 편집자를 키운다는 전통이나 풍토가 끊겨버렸기 때문의 그들의 책임은 아니지만요.

그래서 매주 만화 연구회를 열었습니다. 그건 편집기술을 가르치기 이전의 단계인데, 왜 만화편집자가 필요한가, 만화는 무엇인가, 이야기는 무엇인가를 반년에 걸쳐 전수했습니다. 이건 신입사원이 배속될 때마다 했습니다. 5년차까지 계속했던가? 힘들었지만 그렇게 하는 걸로 편집자는 어떻게든 된다고 생각했죠. 연구회는 힘드니까 이제 두번다시 하고 싶지 않지만요.(웃음)

Q.두번째 포인트는?

작가진 조사입니다. 가장 절망한 것은 신인 작가진의 얇은 뎁스였습니다. 전혀 제로는 아니었죠. 하지만 이만큼 큰 잡지를 굴리는데는 압도적으로 재능이 부족했어요. 미래를 위한 씨앗이 없었죠. 육성체제도 엉망진창. 내가 편집장일 때 황금시대가 도래하는 일은 없을 거라는 사실을 확신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신인작가를 육성하는데는 최소 6~7년은 걸립니다. 나는 버리는 패가 될 수밖에 없다, 초석을 쌓아올리는 대가 되자고 각오를 다졌죠. 다만 신인작가가 크는 걸 그냥 기다리고만 있을수도 없습니다.

Q.그러는 동안도 이익은 거두어야 하니까요.

맞아요. 괴멸적인 경영상황 속에서, 아무 기반없이 신인육성을 하는 셈이니 1기생이 다 자라기전까지 최소 5년. 그 사이에 잡지가 망하면 죽도 밥도 안되죠. 그 때 떠오른 아이디어가 명탐정 코난의 스핀오프였습니다. 당시의 소년 선데이는 명탐정 코난이 절대왕자였고, 아오야마 고쇼 선생님이 애써주고 계신데, 회사가 하나 더 보탬이 되어줄수는 없을까 생각했던거죠.

그렇게 판매부나 광고부를 모아서 '지금까지의 3배, 아니 5배는 더 명탐정 코난으로 다양한 시도를 하자'고 말을 했고 스핀오프 작품 [명탐정 코난 범인 한자와 씨](칸바 마유코)와 [명탐정 코난 제로의 일상](아라이 타카히로)이 시작됐습니다. 아오야마 고쇼 선생님은 '재밌다'고 말씀해주셨고, 칸바 선생도 아라이 선생도 겟산 시절에 내가 눈여겨 봤던 신인인데, 두사람 다 아오야마 선생님을 좋아해서 '꼭 하고 싶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무책임한 관계자 놈들은 '선데이는 코난에만 의존하고 신인을 육성할 생각이 없다'고 자주 씹어댔는데 패버리고 싶었습니다.(웃음) 2년 남짓한 시간으로 신인작가가 자랄리가 없으니까요. 소년 선데이의 말기증상을 정확히 파악한 인간이 아무도 없는 가운데 펼친 고독한 싸움이었기 때문에 괴로웠죠.

Q.소년 선데이 작가진은 대폭 교체되었죠.

처음 2년간 6할 정도 연재를 종료시켰습니다. 태평한 관계자는 흔히 '장르가 편중되어 있다'거나 '좀 더 이런 만화를 늘려보지 그러냐?'라는 소리를 했는데 착각하지 말아야하는게 나는 사무라이 재팬이나 올스타 감독이 아닙니다.

마음대로 골라잡을 수 있는 작가진 안에서 내 취향으로 픽업해서 라인업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얼마 없는 현존 전력을 어떻게든 죽기살기로 게릴라전을 할 수밖에 없었죠. 우리 스스로도 바쁘게 돌아다니며 매년 신연재 공세의 작품수를 갖출 수 있었으니까요. 그걸 5년간. 최후의 1년간은 거의 팀장들한테 일임했지만 정말로 힘들었습니다. 전혀 사치스러운 소리를 할 상황은 아니었죠.

Q.그러면 세번째 포인트는?

소년선데이의 경영상황입니다. 이건 그야말로 논외 중의 논외.

취임당시에 전대미문의 대적자가 될 거라는 예상이 나와있었는데, 결국 첫 반년간 대활약해서 전부 막아냈습니다. 그 대신에 그만큼의 경영자원은 신인작가 육성에 할당할 수 있었습니다. 신인작가의 육성자금은 내가 소년 선데이에 복귀한 당초와 비교하면 현재는 17배 정도입니다. 그래도 라이벌과 비교하면 아직 부족합니다. 아무튼 신인작가 육성에는 돈이 듭니다. 그래도 거기에 얼마를 투자할 수 있느냐가 승부니까, 돈을 투자할 부분을 오판하면 안 되죠.

Q.이치하라 시의 소년 선데이 편집장 재적기간은 역대 2위였습니다. 그 기간 동안 선데이 webry도 시작했죠.

web이면 연재 페이스는 한달에 한번이어도, 1년에 한번이어도 괜찮기 때문에 작가의 페이스에 맞춘 연재 방식이 가능합니다. 또 신인작가의 단편을 실을수도 있습니다. 그점이 디지털의 강점입니다. 다만 나는 방침을 내놓았을 뿐, 실제로 기획하고 운영한 건 현재의 편집장입니다. 나는 신인육성과 만화에 관한 의사결정에 전념했습니다.

Q.이치하라 씨의 선데이 개혁으로 인해 편집부는 어떻게 변화했나요?

최초의 3년간은 그야말로 선언문에 발표한대로 만화연구회로 편집자를 단련하고, 내가 신인작가의 작품을 전부 살펴봤습니다. 다만 그래서는 내 몸이 못버티죠.(웃음) 처음 눈여겨본 세명의 편집자가 비교적 빠르게 성장해서 4년차에는 그들을 팀장으로 임명해서 편집부를 3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서 팀장을 중심으로 팀으로 만화를 만드는 체제를 만들었습니다.

Q.이치하라 씨 취임후의 신규 연재 중에서는 [아오자쿠라 방위대학교 이야기] [마왕성에서 잘자요] [코미 양은 커뮤증입니다] 등의 히트작이 탄생했습니다.

'소년지는 이런 만화를 실어야한다'는 가치관 나는 싫어해요. 장르의 제약은 없고, 여자가 주인공이어도 되죠. 내가 유일하게 호명해서 말했던 것은 '중학교 2학년 남녀가 재밌게 읽으면 소년만화다'라는 것 단 한가지. 참고로 중학교 2학년 남녀'만' 읽는 만화가 아닙니다.

Q.13세나 15세가 아니라 14세인 이유가 있나요?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14세 무렵이 가장 감성이 풍부했던 것 같아요. 다양한 것들에 예민하게 반응한 시기라서, 그 이전은 어린애. 14세가 사춘기의 입구로, 그후로는 소년이 되어가죠. 14세의 남녀가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든다는 방침은 겟산 창간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어요.

Q.독자는 완성원고를 읽기 때문에 그 작품이 재밌는지 어떤지 판단할 수 있지만 네임이나 신인작가의 투고작품은 어떤 점을 보고 판단하나요?

인간을 그릴 줄 아느냐 여부입니다. 결국은 인간을 그리는 거니까요. 표정, 몸짓, 손짓을 포함한 액션, 눈매, 행동, 그리고 대사. 잘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본능적으로 할줄 알죠.

'앞으로는 디지털의 시대다'라거나, '종의 잡지의 위기다'라고 말한들, 그건 매상의 얘기지 우리들 창작현장은 0차 산업. 어디까지나 '인간을 그린다'는 게 중요하죠. 과거에 휴대폰 소설이 유행했을 때 '앞으로는 소설의 방식이 달라진다'는 말이 있었지만, 바뀔리가 있나요. 읽는 사람이 인간인 이상, 그점은 변하지 않아요. 인간이 진화하면 또 다른 문제겠지만.

Q.인간을 그린다에 관해서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세요.

작가가 각 캐릭터의 인격을 이해하지 못하면 세명, 네명의 캐릭터를 움직일 때, 대사가 정형문이 되는 사람이 많아요. '해냈다'거나 '우오오오'라거나, 누가 말해도 똑같은 대사를 쓰게 됩니다. 그래서는 인간을 그렸다고는 못하죠. [철야의 노래]의 코토야마 선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정말 대사가 굉장해요. 누가봐도 인간이 정말로 대화하는 것 같은 대사를 씁니다.

[장송의 프리렌]은 이 표정을 주목해주세요. 나는 이걸 본 순간 전율했습니다. 인간의 감정은 희노애락이 있는데, 어느 하나가 100%인 상태는 없다고 봐요. 항상 무언가와 무언가가 뒤섞여 있는 상태. 100 중에 슬픔이 35, 조바심이 15, 불안이 20...다양한 감정이 항상 뒤섞여 있죠. 그 중간색의 감정을 그릴 줄 아는 사람은 대단합니다.

Q.그런 표정이면 '이 사람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걸까?'라고 독자의 해석에 맡기는 부분이 생겨나죠.

맞아요. 아다치 미츠루로 말할 것 같으면 그야말로 그 궁극입니다.

Q.[장송의 프리렌]은 2021년 만화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정말 경사죠. 그 작품은 팀장 제도를 도입해서 새로운 체제 2년차에 나온 작품인데, 팀장 혼자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연재획득까지 5년 정도 걸렸는데, 빠르게 출세했죠. 신생 선데이의 말하자면 신인작가 1기생 아닐까요?

Q.새로운 팀장 제도에서 신인작가의 히트작이 나오면 의미가 큰가요?

아주 중요하죠. 처음 [장송의 프리렌]의 네임을 읽었을 때, 나는 깜짝 놀랐거든요. 내가 개입하지 않아도 이런 기획이 나오는 현장이 됐구나하고요. 그런 반가운 마음이었습니다. 단 1컷도 나는 손을 대지 않았어요. '빨리 연재해' '주간연재가 아니면 안 돼'라는 말만 했어요. 소년 선데이의 출신 신인작가 중에서 데뷔작부터 영상화도 되지 않았는데 이정도 메가히트작을 내놓은 것은 아마 30년만의 쾌거. [오늘부터 우리는!!] 이래의 쾌거입니다.

Q.현재의 소년 선데이를 상징하는 작품인가요?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새로운 팀 선데이에 투고작을 가져오는 작가 분과 자립한 편집자가 이인삼각으로 함께 성장해서, 좋은 만화를 만들었어요. 이제 내가 고생하지 않아도 괜찮겠구나 안심하게 된 것이 가장 기쁜 일입니다.(웃음)

Q.과거에는 지하철 선반에는 점프, 라면가게에는 매거진, 만화 연구 동아리에는 선데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세심하게 읽는 소년 선데이의 분위기가 돌아온 것 같아요.

아무튼 좋은 만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다만 현재의 선데이를 비유하자면, 말도 안되는 큰병을 앓고 생명의 위기에 빠져서 두번 다시 달릴 수 없다고 선고를 당한 선수가 긴급수슬을 해서 어떻게든 다시 달릴 수 있는 상태로 돌아간 것에 불과합니다. 올림픽에 나가 라이벌을 제치고 금메달을 경쟁할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전력으로 애써도 앞으로 15년은 걸립니다. 편집부한테 방심하면 또 바로 폐간 위기라고만 말해두겠습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의 우선순위를 틀리면 안됩니다. 당초에는 10년은 걸릴거라고 생각한 개혁의 1장은 끝났지만, 결코 방심해선 안 됩니다.


그녀도 여친 히로유키가 말하는 팔리기 위한 분석과 어필 만화


히로유키 선생님은 요즘처럼 SNS가 활발하지 않았던 시절부터 개인 사이트를 운영하는 등, 적극적으로 작품을 어필하셨습니다. 상업 데뷔를 하기 전부터 작품을 알리기 위해서, 만화가가 되기 위해서 어떠한 연구나 노력을 하셨나요?

당시 개인 사이트에는 1페이지 씩 만화를 올렸는데 접속자 분석으로 어떤 작품을 많이 보고 있는지 반응을 체크했습니다. 그리고 인기가 있는 다른 만화 사이트를 연구해서 어떻게 차별화 시킬 것이냐, 어떻게 하면 돋보일까, 반응을 체크했습니다.

돋보이기 위한 차별화라 하시면?

요즘과 다르게 당시의 WEB만화는 러프 그림 그대로라서, 그렇게까지 작화 레벨이 높지 않았어요. 그래서 스크린톤을 붙여 깔끔하게 완성시킨다거나, '나라면 이렇게 할텐데'라는 생각이 드는 시도를 적극적으로 도입했습니다.

남은 것은 다양한 소재를 하나하나 시험삼아 그리고 공개하는 일의 반복. 그렇게 하니까 반응이 좋았던 것에 법칙성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저 계속해서 온갖 시도를 했고 하나 대박을 치면 '좋아 다음!'이라고 생각했죠. 그러는 동안 '나는 이런 만화를 재밌게 그릴 줄 아는구나'라며 내 작풍이나 방향성이 보였습니다.  

그렇게 PDCA(플랜, 두, 체크, 액션)을 하신 거군요. 방향성을 굳힌 계기가 된 작품이 있나요?

비주얼 노벨 게임 [월희]의 동인지 '그래서 나는 렌을 덮친다'입니다. 이 책이 지금의 작풍을 결정지은 하나의 터닝포인트인데, 블랙 유머나 변태같은 발언을 하는 남자 캐릭터를 통해 좋은 반응을 느꼈어요.


좋은 반응을 느꼈다는 것은 어떠한 점에서인가요?

캐릭터의 감정이 크게 움직이는 점입니다. 근데 이건 내 취향이라기보다는 온갖 만화에 다 해당되는 일이지만요. 캐릭터의 감정이 크게 반응하는 대목을 큰 컷으로 그리는 걸 의식하게 됐습니다.


말씀대로 히로유키 선생님의 특징이네요.

이 동인지의 평이 좋아서 이 임팩트를 다른 오리지널 만화에서 했던 게 데뷔작 [동인워크]입니다.

[동인워크]의 테이스트는 [월희] 이차창작에서 얻은 것이었군요.

[동인워크] [만화가랑 어시스턴트랑] [바보걸]로 계속해서, 내 스타일이 일단 완성됐습니다.

가장 알기 쉬운게 [바보걸] 네번째 컷에서 캐릭터의 큼지막한 얼굴로 리액션을 하는 마무리가 엄청 많아요.


만화는 무슨 일이 일어나면 그에 대한 동기가 생겨납니다. 그게 행동으로 이어지고, 누군가의 반응이 되돌아오죠. 그 반응이 돌아온 순간이 가장 기분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걸 로지컬하게 만들면 [바보걸]이 됐습니다.

스스로 만화가라는 점을, 혹은 자기 포트폴리오를 어필하기 위해서는 여러 수단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가령 지금 히로유키 선생님이 데뷔하기 전 신인이라면 어떻게 행동하실 건가요?

누군가의 눈에 들기 위해서는 우선 RT를 타야하기 때문에 아무튼 트위터에 4페이지 만화를 올려서 여러가지 해시태그를 달겁니다.

이차창작과 오리지널, 어느 쪽이건 상관없지만 나라면 처음에는 이차창작으로 봐주는 사람을 늘리지 않으려나? 우선은 좋아하는 작품의 일러스트나 만화를 그려서 팔로워를 늘립니다. 팔로워가 1000명 이상은 되지 않으면 싸워나가기 힘들테니까요. 재밌는 내용을 그리면 RT를 탈 정도의 팔로워 숫자를 갖춘 시점에서 오리지널 만화도 섞어 그리고...그런 식이겠죠.

근데 트위터에서 RT를 타는 건 어려운 일 아닌가요?

아뇨 RT를 타는 건 제일 간단해요.

'만화책으로 잘 팔릴 것'을 최종목표로 칩시다. 그 한단계 아래에 있는 게 '잡지에서 인기작이 되는 것'. 또 그 아래 단계에는 '잡지 연재를 따내는 것'. 그 아래에 '동인지가 잘 팔리는 것'. 그 아래에 '인터넷에서 RT딸 받는 것'.

과연 낮은 허들부터 하나씩 클리어하는 목표를 설치해야 한다고?

골을 생각해보면 RT를 받는 것은 제일 아래 단계라서 난이도도 낮다고 생각해요. 트위터에서 4P로 실험하는 건 엄청 편하잖아요? 그리고, 올리고, 반응이 별로면 바로 버리면 되죠. 그걸 반복해서 자기 안에 성공을 쌓아올리는 거죠.

앞서 말한 PDCA를 반복하는 것 말이군요.

트위터에서 RT를 받는 것과 비교하면 연재를 따내는 게 더 힘듭니다. 정말로 재밌는 만화인데 편집자 취향에 맞지 않으면 연재를 못한다는 불확정요소도 많죠. 근데 RT를 많이 받으면 그점을 돌파하기 쉽죠. '이 작품은 트위터에서 유명해요. 동인지도 잘 팔립니다'라고 말해두면 설득력이 늘어나죠.

RT를 많이 받은 작품을 바탕으로 동인지를 만들 수도 있지만, 출판사에서 제의가 온다거나 담당 편집자한테 원고를 가져가서 상업지에 단편으로 연재하는 것도 선택지로 있고 말이죠. 그점에 관해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단편을 상업지에 1편, 45P 연재하는 것은 빡셉니다. 인기를 얻을 수 있을지 어떨지 미지수인 만화를 잡자에 한편 그린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엄청 괴로운 일입니다. 그럴거라면 동인지로 만드는 편이 돈은 되죠. 그래도 돈보다 중요한 것은 '돈을 지불해서 읽을 가치가 있느냐 어떤가'하는 점을 동인지는 직접 볼 수 있죠. 그 이유가 아주 큽니다.

RT 너머에 그곳에 돈에 발생하느냐 여부를 확인하는 거군요.

[그녀도 여친]의 프로토타입 동인지도 똑같은 흐름이었어요. 상업지로 느닷없이 새연재를 시작하는 건 리스크가 커서 실패했을 때 수습을 할 수 없어요. 처음에는 트위터로 시험해보고, 동인지를 내서 '독자가 1000엔을 낼 가치가 있는 만화인지 아닌지'를 확인했습니다. 리스크 관리면에서 괜찮은 시도 아니었나 생각해요.

갑자기 연재를 시작해서 어시스턴트를 고용하고, 생활시간의 대부분을 만화에 쏟아붙는 것이 막대한 리스크라는 말씀이시군요.

네. 연재로 실패하는 것은 대미지가 크기 때문에 실패를 줄이기 위한 시책입니다. 연재를 시작하면 코스트가 엄청나게 올라가기 때문에 불투명한 부분은 가능한 줄여두고 싶습니다.

단편이 잡지 앙케이트에서 좋은 평판을 얻었더라도, 연재해서 단행본이 팔리느냐 어떤가 하는 점은 모르는 부분이 많아요.

코스트가 낮은 장소에서 실험을 하고 성공 패턴을 늘려나간다. 그렇게 점점 코스트를 들여서 연재를 히트시키는 거군요.

특히나 신인이 갑자기 연재를 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봐요. 연재를 하는 사이에 '이건 통할 것 같다'고 감각으로는 어렴풋이 알게 되지만, 처음 1화는 정말로 세상에 내놓기 전까지는 불투명하거든요.

몇 번이나 연재를 한 히로유키 선생님도 그러신가요?

몇 년을 그려도입니다. '이 새연재, 괜찮을 것 같긴 한데...어떠려나?'하고 불안한 상태로, 나는 연재를 시작하고 싶지 않아요. 불안을 자신감으로 바꾸기 위해서라도 먼저 WEB에 공개하고, 동인지를 내고, 자신감이 생긴 다음에 코스트를 지불하고 싶습니다.

그런 시험을 하지 않고, 한번에 연재해서 대히트를 하면 그야 엄청 멋있죠! 근데 나는 멋보다 실리를 취하기 때문에 허세는 부리지 않아도 됩니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만화보다는 누군가 읽어주는 촌스러운 만화를 선택하겠습니다.(웃음)

그 발언 멋있네요! 트위터는 만화가가 되는 지름길이군요.

확산되기 쉬움과 그림 4장으로도 재미를 전달할 수 있는 편리성이라는 점에서 트위터는 만화가와 상성이 좋습니다.

한편 유튜브는 만화가와 상성이 나빠요. 나도 일단은 하고 있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웃음) 상성이 좋은 만화가도 있겠지만 모든 생활을 걸고서 완전 진심으로 하지 않는다면 죽도 밥도 되지 않을 겁니다.

만화가와 유튜브의 상성...어째서일까요?

예를 들어 일러스트레이터인 사람이 일러스트 그리는 법에 관한 동영상을 올리면 나름대로 수요는 있을 겁니다.

같은 방식으로 만화 그리는 법을 스트리밍 방송해보면 좋지 않을까요?

아뇨 만화를 그리고 싶은 사람은 일러스트를 그리고 싶은 사람보다 압도적으로 소수입니다. 모교가 전혀 다르니까 죽도 밥도 안 될겁니다.

니즈가 적다는 말씀이군요.

만화는 스토리도 구상하고, 그림도 잔뜩 그려야 합니다. 배경처럼 그리고 싶지 않은 것도 그려야하고...즉 만화는 귀찮아!

귀찮으니까 만화를 그리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다.(웃음) 크림존 선생님이나 이토 라이프 선생님처럼 유튜브에서 성공한 사례는 극히 드문거군요.

만화 창작에 관한 얘기를 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토크로 보는 사람을 즐겁게 만드는 건 이미 만화를 그리는 재능과는 다른 영역입니다. 나는 말재주도 없고, 개그맨처럼 웃기는 경험담도 없어서 만화를 그리고 있는데, 그 전장에서 싸우는 건 불리하죠.(웃음)

선생님은 트위터 말고도 픽시브 팬박스나 틱톡 같은 다양한 플랫폼을 활용해서 자신의 작품에 관한 정보를 알리고 있습니다. 이같은 새로운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이유는 뭔가요?

단순하게 뭘 계기로 내 만화를 읽어주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입구를 늘리는 목적입니다. 작품을 만들면서 새삼 느끼는 점은 '내 작품을 알리는 것'은 무엇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어디에서 누가 독자가 되어줄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써먹을 수 있는 플랫폼은 뭐든 씁니다.

인지도의 향상이군요.

픽시브 팬박스는 내향적인 서비스라서 인지도는 그다지 오르지 않지만 틱톡은 작화를 배속으로 업로드하면 그럭저럭 많은 사람들이 봐줍니다. 그리고 젊은 사람이 엄청나게 많은 틱톡에는 독자적인 세계가 있어서, 트위터로는 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장소에 '만화를 그리는 사람이 여기에 있어'라고 어필하는 것은 효과가 제로는 아니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선전의 일환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 수고스러운 일도 아니라서 안하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어서요.

풋워크가 가볍네요.

풋워크의 가벼움으로 따지면 유튜브에서 같이 방송을 하고 있는 미야지마 레이지 선생이 최상급이라서, 그 친구한테 감화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만화만 그런 게 아니라, 뭔가를 어떤 툴로 프로모션을 하는데 있어서 한명이라도 팔로워를 늘리는 것보다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화가는 만화가 안팔리면 답이 없습니다. 나는 애니메이션도 만들어주셔서, 많은 사람의 힘을 빌리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주신 분들에게도 환원하고 싶기 때문에 그 보은의 의미에서도 여러가지 노출은 늘리고 싶습니다. 애니메이션 관계자가 '이 작품에 참여하길 잘했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싶어요.

히로유키 선생님은 상업 연재를 하면서 동인지도 내고 있죠. 상업과 동인을 병행할 때 어떤식으로 시간관리를 하시나요?

기합...기합입니다!

설마했던 정신론...!

상업연재의 마감이 끝난 직후에 동인 마감이 이틀후라고 칩시다. 그러면 이틀만에 완성시킬 수 있는 만화를 그린다. 단지 그뿐입니다.

마감일을 역산해서 내용을 정하는건가요? 이틀에 1권이라니 상당히 힘든 일이라고 보는데요...

그야 존나게 힘들죠! 그 이틀간은 지옥입니다.(웃음)

그렇게까지 해서 양립을 하게 만드는 동기는 뭔가요?

나는 1년에 적금하는 금액을 정해놨어요. 상업 연재를 하다보면 단행본이 XX부 팔렸으니까 올해는 이정도 부족하다...라고 바로 계산할 수 있어요. 그러면 여름과 겨울에 2권씩 신간을 내야지,라는 식으로 전체적인 결산을 맞추면 수입이 안정됩니다.

수입원이 많으면 머니 플랜을 세우기 쉬운 거군요.

맞습니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연재를 한편 더 늘리는 건 힘들기도 하고, 팔릴지 어떨지도 알 수 없습니다. 동인지는 전체적인 매상도 읽기 쉽습니다.

참고로 상업과 동인에서 '먹히는 만화'에 차이가 있나요?

동인지와 상업지의 가장 큰 차이가 가격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업지는 200페이지 만화가 500~800엔 정도에 팔립니다. 동인지는 300페이지로 500엔 정도 단가니까, 수익이 압도적으로 좋죠. 따라서 동인지가 적은 코스트로 돈이 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적은 페이지로 장사를 하는 만화의 내용은 범위가 좁거든요.

30페이지 정도에 500엔을 지불할 수 있는 내용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수집성이 있다거나, 야한 내용이라거나. 반대로 상업 연재는 다음 내용이 궁금한 장르...예를 들어 데스게임물을 동인지로 그려봤자 잘 팔릴 것 같지는 않네요.

동인지로 잘 팔리기 위해서는 수집성이 필요...확실히 저도 동인지를 구입할 때 그점을 보고 돈을 내고 있네요.

소녀가 귀엽거나 야한 내용은 페이지수와 관계 없으니까요. 상업 만화의 200페이지로 지갑을 열게 만드는 것과는 싸우는 법이 다릅니다.

'소녀가 귀엽다'가 됐건 뭐가 됐건 좋으니까 30P로 500엔을 지불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나. 그걸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상업연재에서도 활용할 수 있고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입 말고도 상업과 동인을 양립하는 메리트가 있나요?

상업도 동시에 하고 있으니까 모티베이션이 올라가는 일은 있죠.

말은 좀 그렇지만 동인지는 1000부나 2000부 팔리면, 장사로 성립해요. 근데 내 경우에는 그 환경은 '좀 더 위에 올라가고 싶다'는 의욕이 나지 않아요. 한편 상업 연재는 천장이 없으니까 '더 높이, 더 많이'하고 의욕이 생갑니다. 작품에 참여하는 사람도 많아서 '다같이 함께 힘내봅시다'라는 기분이 들죠.

선생님은 예전부터 만화가의 '돈버는 법'이나 '생존전략'에 대해서 동인지나 트위터, 인터뷰에서 때때로 열변을 하셨습니다. 이같은 노하우를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이유가 뭔가요?

가장 큰 이유는 만화가는 돈을 못번다고 여겨져서, 만화가를 꿈꾸는 사람이 줄어들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힘든 측면도 있지만 나는 만화가는 아주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밌고 보람도 있고 잘풀렸을 때의 리턴도 꽤 좋죠. 하지만 인터넷에 올라오는 건 꼭 '만화가를 했다가 잘 풀리지 않은 이야기'뿐이잖아요.

부정적인 정보가 퍼지기 쉬운 건 인터넷의 특성이니까 말이죠...

물론 만화가를 목표로 해도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건 이해합니다. 운빨겜을 하는 건 괴롭죠. 그래서 리스크를 줄여서 확률을 높히고 싸우면 좋은 직업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습니다.

앞서 말했던 SNS부터 단계를 밟아나가는 방식이군요.

정말로 재능이 넘쳐나서 '점프에 실렸더니 대히트!'라는 식의 초천재는 그런 짓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근데 그렇지 못한 사람은 만화업계는 어쩔 수 없는 운빨겜 요소가 강하기 때문에 리스크를 최대한 줄여서 싸우는 편이 낫죠.

살아남기 위한 확률을 올리는 방법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지만, 그걸 진지하게 생각해나가면 실패하는 확률은 줄일 수 있어요.

히로유키 선생님의 생존전략이나 노하우를 알려주고 계신 셈인데, 경합 상대나 라이벌을 늘리게 되는 것 아닌가요?

글쎄요? 나는 남들이 그리고 싶어하는 멋있는 만화는 그리지 않으니까 경쟁은 안 해요. 촌스러운 만화를 그리고 있으니까요.

[그녀도 여친]은 촌스럽지 않은데요?

아니 양다리를 걸치는 만화라구요? 누가 이런 걸 그리고 싶어합니까! 그래도 꼴사나운 만화도 읽어주는 사람들이 즐거워한다면 나는 그걸로 만족합니다.

그 XX를 그린 선생님이신가요!라는 식으로 작가가 존경과 동경의 눈으로 보지는 않는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런식으로 누군가 동경하고, 목표의 대상으로 삼는 만화가가 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나는 촌스러운 만화를 계속 그리면서 내가 즐거우니까요.(웃음)

예전에 다른 매체의 인터뷰에서 '잘팔리는 만화는 전부 1권을 체크한다'고 하셨습니다. 만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 작품을 접할 필요가 있나요?

나는 그렇게까지 많은 작품을 체크하지는 않아요. 근데 10만부 팔린 만화는 무언가 '일점돌파의 세일즈포인트'가 있기 때문에 그건 체크해서 분석합니다.

잘팔리는 만화의 팔리는 부분을 자기 작품에 반영한다는 뜻인가요?

아뇨 나는 타인의 만화를 참고해서 내 만화를 그리지는 않아요.

인기 작품을 체크하는 건 '그 만화가 10만부 팔렸다면 내 이 만화는 7만부 정도 팔리려나?'라며, 스카우트의 정밀도를 높히는 의미가 더 큽니다. 머리속에 그같은 기준을 만들기 위해서는 러브코미디에 편중되지 않고 다양한 장르를 읽을 필요가 있는데 전체적으로 히트작을 알아두면 정밀도가 올라갑니다.

오히려 100만부 이상 팔리는 만화는 척도가 기능하지 않아요. 그 경지까지 가버리면 일점돌파가 아니라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맞물려서 총합적으로 팔리고 있기 대문에 척도로 삼기 힘듭니다.

그래서 나는 10만부 정도의 만화를 읽을 때가 제일 '맞아맞아, 이해돼!'라고 느낍니다. 내 만화가 그 정도 부수가 되기 쉬운 것도 아마 그런 이유가 아닐까.(웃음)

영화나 드라마처럼 다른 엔터테이먼트의 히트작은 참고하시나요?

재밌게는 보지만 만화를 파는 관점의 최적해는 '만화를 읽는 것'이죠.

직접적인 힌트가 되기 어렵다?

애초에 만화와 영상작품은 미디어가 달라서 잘할 수 있는 일과 잘할 수 없는 일이 다르죠.

예를들어 영화의 총격전이나 카체이스는 그것만으로도 흥분되잖아요? 근데 만화는 그런 장면을 그려봤자 소리도 없거니와 그림도 멈춰있기 때문에 영화만큼의 박력을 전달하기는 힘들죠.

근데 만화는 '총격전을 하는 것으로 인해서, 캐릭터의 감정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느냐'를 그리는 건 잘할 수 있어요.

물론 영상에서 착상을 얻어서 만화에 녹여내는 것도 한가지 방법입니다. 근데 내 경우에는 '만화를 읽는 사람들이 뭘 잔뜩 읽었는가. 어떤 만화가 지금 많이 읽히느냐' 그게 정보원으로 가장 강하다는 게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자기 작품의 내용을 구상할 때 의식하는 게 있나요?

작업용 아이패드 거치대에 '그 내용으로 당신은 텐션이 오릅니까?'라는 포스트잇을 붙여놨어요. 내가 지금 신경쓰는 점입니다.

머리로 생각하고, 의식하는 것만으로는 안 되나요?

적어놓지 않으면 잊어버려요. 만화로 성립시키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기 때문에. 근데 '성립은 하는데 이게 재밌나?'라는 의문부호가 붙을 때가 있어요.

그냥 성립만 시키는 게 아니라 텐션이 올라가는 내용으로 성립시키는 게 가장 어렵죠. 그래도 그걸 최우선으로 치지 않으면 재밌는 만화는 못그립니다.

같은 내용을 계속 그리다보면 초기충동이 사라져서 '뭐가 재밌는지 모르겠다'는 상태가 된다는 창작자 사레로 종종 듣습니다.

러브코미디는...간단히 말해서 고간에 물어보면 알 수 있어요!

하반신에 오느냐 어떤가, 리비도에 물어보라?(웃음)

맞습니다. 그편이 신용할 수 있잖아요.(웃음) 성립하니까 OK가 아니라, 그 내용으로 나는 즐거운가 어떤가, 텐션이 오르느냐 어떤가. 내가 즐겁다는 생각이 들때까지 아이디어를 짜내는 게 힘든 점이죠.

히로유키 선생님은 자주 '페이스 다운하고 싶다'고 하시는데, 주간연재에 더해서 각 SNS 활동까지 오히려 워커홀릭처럼 보입니다.

이번에는 [그녀도 여친]의 애니화도 빨랐기 때문에 부산스럽게 여기까지 와버렸지만, 이제부터입니다. 이제 나는 무리하지 않겠다고 인생의 노선을 선회했거든요.(웃음)

[바보걸] 당시, 도중에 주간연재를 포기해버렸기 때문에, 똑같은 일을 두번이나 반복하고 싶지 않습니다. 주간연재를 의무감으로 하면 정말로 마음이 죽습니다. 그래서 [그녀도 여친]은 내가 괴롭지 않을 정도로 일하는 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어떤 방식인가요?

작화를 작업하지 않고, 열심히 좋은 그림을 그리려고 하고 있어요. 지금까지의 나는 완성시키는 걸 목표로 그렸거든요. 이제는 제대로 좋은 그림을 목표로 그리고 있습니다.

차이가 뭔가요...?

작업으로 그림을 끝마치는 걸 목표로 삼으면 시간이 많이 걸리지는 않지만 재미없어요. 그래서 괴롭죠.

'좋은 그림을 그리자!'고 정하는 편이 시간은 걸리지만 즐겁습니다. 좋은 그림을 목표로 삼는 편이 그림으로 즐거워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이보다 좋은 일이 없죠.


데뷔한 이래 드디어, 이제와서야 그곳에 도달한 느낌인가요?

그렇습니다. 엄청나게 빙빙 돌아왔습니다! 내가 즐기지 못하면, 특히 주간연재는 노동환경이 심각하게 블랙하니까요.(웃음)

만화는 '의무감'이나' '일이니까'라는 이유로는 계속할 수 없습니다. 일을 즐기는 법을 연구하는 게 중요합니다.

'청어 파이 싫은데'라는 대사에 담긴 하야오의 생각 ㄴ지브리


'나는 이 파이 싫은데.'

이 대사는 지브리 작품 중에서도 상당히 큰 임팩트를 남긴 대사 아닐까요?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 키키가 노부인의 배달 의뢰를 받고서, 청어 파이를 손녀에게 전해주었으나, 파이를 받은 소녀가 냉담하게 뱉은 말입니다.

영화에서는 기계 오븐이 고장난 탓에 장작을 지펴서 파이를 굽는 장면부터 묘사됩니다. 배달을 할 때는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흠뻑 젖어가면서도 배송품을 필사적으로 지켜내고, 간신히 배달을 끝낸 순간 소녀가 '나는 이 파이 싫은데'라고 말하며 쌀쌀맞은 태도로 수령 사인을 한다는 인상적인 장면입니다.


보통은 성격 나쁜 아이구나, 못된 애구나 하고 느낄 사람도 많겠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이 장면에 어떤 의도를 담았을까요?
그 대답은 [출발점]과 [바람이 돌아오는 장소]의 인터뷰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출발점] 인터뷰

미야자키 하야오

노부인의 파이를 배달했을 때 소녀가 차갑게 응대하는데요, 배달 일을 한다는 것은 그런 꼴을 겪기 마련이니까요. 특별히 지독한 일을 당한 것은 아니고요, 그런 일을 경험하는 게 일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키키는 그 순간에 자신의 생각이 안이했음을 알게 되는 겁니다. 만약 거기서 착한 사람을 만났다면 그건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딱히 영화에서는 그 부분까지는 말하지 않았지만요.(웃음)

우리도 택배 아저씨가 왔을 때 '고생하시네요, 들어오셔서 차라도 한잔 하세요'라고 일일히 말하지는 않잖아요?(웃음) 도장을 건네고, 수고하십니다 그걸로 끝이죠.

그래도 소녀가 배달일을 하면 반응이 다를거라고 생각하는데요.

미야자키 하야오

아니 마찬가집니다. 그래서 나는 그 파티를 하던 소녀가 나왔을 때의 말하는 방식이 마음에 듭니다. 그건 거짓말을 하지 않는, 솔직한 표현입니다. 정말로 싫은 겁니다. 필요없다고 했는데도 또 할머니가 요리를 보내줬다는 식으로. 그런 일은 세간에 흔히 있는 일이잖아요?

그런 경우가 키키한테는 충격적이고 아주 상처가 되는 일일지도 모르겠으나, 그렇게 삼켜내야만 하는 일들도 이 세상에는 가득 있으니까요.

[바람이 돌아오는 장소] 인터뷰

미야자키 하야오

나는 말이죠 뭐라고 해야할까, 어릴적부터 내가 편하게 자랐다는 자책의 념(念)을 계속 갖고 있었어요. 전쟁 중에도 전쟁 이후에도 말이죠. 정말로 먹을 게 없을 때도 내 주변에는 그런대로 먹거리가 있었어요. 뭐 여러 이유도 있었지만, 나는 그런 불공평함이라는 것을 견디기 힘들었죠. 

그래서 그러는 건 아니지만, 예를 들어 하청을 하는 사람이 작업물을 갖고 와줬을 때는 인사를 하고 싶어요. 여유가 있으면 차도 대접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왜냐면 노동조건, 그 사람들이 더 안 좋으니까. 그런데 의외로 다들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하거든. 내 알바 아니라는 표정을 하고 있어요. 그런 게 싫거든. 지금도 싫어합니다만.

배달 일을 하는 사람이 물건을 가져다주면 '고생했어!'라고 무심코 나는 말을 합니다. 역시 힘든 일이겠구나 싶어서. 그...아이들한테 잘난척 할 수 있는 부모는 아니지만요.(웃음) 다만 직업에 따라 사람 대접을 바꾸는 일만큼은 절대 하지 않을 마음가짐입니다.

(중략)

아마도 가장 괴로운 점은 그 영화를 보고 키키가 배달한 파이가, 그런 취급을 받았을 때 화를 냈던 아이들은 잔뜩 있겠지만, 깨닫지도 못한 사이에 그렇게 남을 화나게 만드는 입장이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딱히 교훈을 내려주기 위해서 만든 것은 아니지만, 이런 일은 얼마든지 일어나는 일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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